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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을 위한 우산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5
빌헬름 게나치노 지음, 박교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당신에게 산책을 권합니다
당신은 아마 '다들 휴대전화만 본다'는 한탄과 경고가 지겨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되는 까닭은 그런 태도가 바깥 세상을 외면하려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대도시를 방랑하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가 끊임없이 걷는 이유는 구두 테스터이기 때문입니다. 수제화 공장에서 만든 구두를 신고 착화감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써주고 돈을 받지요. 그러나 이것이 그가 걷는 이유의 전부는 아닌 것 같네요. 그는 걸으면서 세상을 관찰합니다. 어쩌면 그가 이 일을 7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꾸준하게, 심지어 점점 더 훌륭하게 해올 수 있었던’ 까닭은 걸으면서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남자는 청소부 내외와 그들의 아이, 빨래를 너는 노무자의 아내를 보며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런 경험은 당신도 있겠지요. 종종 그의 생각이 조금 지나쳐 보이기도 합니다. 커다란 유리가 떨어져서 산산조각 나버리면 좋겠다거나, 말하고 싶은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이 표시된 침묵시간표를 만들고 싶다거나, 떠나버린 여자친구의 방을 나뭇잎으로 채우고 싶다고 생각하지요. 이상하게도 이런 관찰과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안을 줍니다.
그 까닭은 이 남자가 '나'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에서 한 번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 주인공은 스스로를 이렇게 진단합니다. '분열성 인격 장애와 정신병의 징후를 동반한 우울증적 불안 그리고 편집증적 피해망상.' 그런데 이런 증상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적 질서체계가 만들어내는 인간 소외의 증상들입니다. 독일에 사는 구두 테스터가 보는 세상은 현대 대도시에 사는 소외된 인간인 내가 보는 세상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 '나'는 떠들썩한 축제의 현장에서 평범한 주택의 4층 발코니에서 이불로 동굴을 만들고 노는 아이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불신에 차 있으면서도 안도하는 듯한 눈빛으로’ 군중을 보는 그 아이를 통해 구원받습니다(사실, 개인적으로 발코니 장면보다 더 좋았던 부분은 그다음날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소설의 맨 뒤에서 세번째 문장이요). 저도 마주친 아이 덕분에 구원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겨우 다닐 만한 좁은 길을 아내와 걷다가 마주 오는 그 아이에게 아내와 잡은 손을 위로 올려 터널을 만들어주었고, 아이는 그 아치를 통과하며 그것이 즐겁고 재밌다는 듯 꺄르르 웃었어요. 그 아이가 웃어준 덕분에 갖가지 이유로 참담하던 그 시절이, 그 거리가 추억이 될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어릴 때 어머니는 종종 곧 나갈 사람처럼 현관 옷걸이에 핸드백, 모자, 숄 그리고 양산을 준비해놓고 의자에 앉아 그것들을 보고만 있었다죠. 그것은 아마도 '세상이 볼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될 때 어머니가 느끼는 공포를 제어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하고 다 큰 주인공은 생각합니다.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을 때가 많은 세상에서 두 발로 걸어다니며 세상을 본다는 건 어쩌면 하기 싫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산책과 이 책을 권합니다. '자신의 삶이 하염없이 비만 내리는 날일 뿐이고 자신의 육체는 이런 날을 위한 우산일 뿐이라고 느끼는' 우리들에게 삶을 조금 더 견딜만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먼 미래의 거대한 목표가 아니라 내 몸이 느끼는 소소한 것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