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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거북이 ㅣ 지만지 고전선집 433
후안 마요르가 지음, 김재선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2009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처음 접했던 지만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지만지'는 '지식을 만드는 지식'을 줄인 말로 여기서 설명하는 것보다 그들의 블로그를 한번 훑어보는 게 빠를 것 같다. http://zmanz.blogi.kr/
지만지가 생각하는 고전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2009년에 막스 상을 받은 이 희곡 <다윈의 거북이>가 '세월의 검증'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고전으로 선택되었다면 그만큼 대단한 무엇이 있으리라. 그것이 아니라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이라는 수식 외에 '고전'이라는 말은 빼야할 것 같다. 안타깝게도, 작품을 접하고 난 내 느낌은 현재로서는 부정적인 쪽에 가깝다. 착상의 기발함은 마음에 들지만 헤리엇이라는 한 인물의 입을 통해 문제의식과 주제를 너무나 정직하게 말하고 있는 <다윈의 거북이>가 과연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
책의 만듦새부터 보자면 표지의 색부터 상당히 이채롭다. 이 시리즈를 위해서 개발한 고유의 색이라고 한다. 그 느낌은 '컬러차트에도 없는 고유의 색'이라고 자부한만큼 상당히 신선하다. 동시에 '고전'이라는 주제와도 잘 어울리는 것으로, 언뜻 대치될 것 같은 '새로운'과 '오래된'이라는 두 수사를 모두 아우르는 색이다. 판형 역시 마음에 쏙 드는 편이었다. 다음, 번역. 크게 실망스러운 부분은 없었으나 기본적인 어문규정을 지켜줬다면 조금 더 신뢰가 갔을 것 같다. 예를 들면 한국어 체계에서 말줄임표를 쓸 때는 점의 갯수를 여섯 개로 하는 것이 약속이다. 사소해보이지만 어떤 독자에게는 내용의 몰입을 방해하는(비록 순간적이나마) 요소, 출판사와 독자의 신뢰에 작은 금을 내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용에 있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책/eX libris] - 후안 마요르가, <다윈의 거북이> 중에서 여기에 옮겨두었다. 주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모든 것은 가능하다'라는 말에 대한 다윈의 거북이 엘리엇의 회상이었는데, 이 책에서 이 말은 히틀러가 했던 가상의 발언으로 둔갑되어 홀로코스트를 의미하고 있었다. '정말 모든 것은 가능한가?'하고 스스로 물어보게 되는 기막힌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다. 가능해서는 안 될 것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무심코 지나쳐버린다. 한편 유럽의 역사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겪은 헤리엇은 교수에게 인간이 무언가 배우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움베르토 에코가 관용에 대해 한 말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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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타자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욕구를 타인들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인류의 천년에 걸친 성장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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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유럽의 역사를 목격한 헤리엇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에코가 말하는 그 '결과'가 아직 보편적이지 않다는 건 우리의 역사, 아니 역사가 다 뭐냐, 그냥 현재 주변 사람들만 봐도 안다.
오늘 10월 9일부터 11월 1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프로그램 중 서울시극단이 <다윈의 거북이>를 무대에 올리는데 한번 보러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