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들에는 이 '그런데 갑자기'가 종종 나온다. 하지만 작가들이 이 말을 자주 쓸 수 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다. 인생은 예기치 못한 일들로 가득하니까!

-<어느 관리의 죽음> 중에서


 


2.
젊은 마부가 그렇게 물을 마시고 싶어했던 것처럼 그도 무척이나 말을 하고 싶었다. 아들이 죽은 지 곧 1주일이 되는데도 그는 아직 누구에게도 죽은 아들에 애해 말해 본 적이 없다. 자세히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싶다. 아들이 어떻게 병에 걸렸고, 얼마나 괴로워했으며, 죽기 전에는 무슨 말을 했고, 또 어떻게 죽어 갔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장례식이 어떠했는지, 고인의 옷을 가지러 병원에 어떻게 갔는지……. 말하고 싶다. 이제 시골에는 딸 아니시야만 남았다. 딸아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 그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듣는 사람은 기가 막혀 한숨을 내쉬며 슬프게 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자들과 이야기하면 더 좋을 것이다. 그 여자가 아무리 바보라 하더라도 그의 얘기를 두어 마디만 듣고도 통곡하고 말 것이다.

-<슬픔> 중에서



3.
그의 독서열은, 바다 위에 널린 난파선의 잔해들 속에서 헤엄치며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아무것에나 무턱대고 매달리는 한 인간을 연상시켰다!

-<내기> 중에서



4.
그들의 등장에 올가는 감동했다. 올가는 첫눈에, 이들이 점잖고 교양 있고 훌륭한 사람들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마리아는, 사람이 아니라 비켜서지 않으면 자신을 짓밟고 지나갈 괴물이라도 들어온 듯이 우울하고 불쾌하게 힐끔 쳐다볼 뿐이었다.


5.
가족들 가운데 병자가 있으면, 그것도 이미 오랫동안 희망도 없이 앓고 있는 병자가 있으면, 가까운 사람들일지라도 몰래 힐끔거리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가 죽기를 바라는 그런 힘든 순간들이 있다.
아이들만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두려워하며, 그런 생각만으로 무서움에 떤다.


6.
이 사람들의 생활이 돼지보다 못하며 이들과 지내는 것이 끔찍하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들은 거칠고 성실하지 못하고 더럽고 늘 술에 취해 있으며, 서로를 존중할 줄 모르고 꺼려하고 의심했기에 화합하지 못하고 언제나 다투기만 했다.
…(중략)…
그렇다. 그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끔찍했다. 그렇지만 그들도 모두 사람이고, 고통당하는 존재다. 그들의 삶에서 해명될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힘든 노동, 그로 인해 밤마다 아픈 몸, 혹독한 겨울, 부족한 수확, 협소한 집,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도움.
그들보다 더 부유하고 힘센 자들도 실은, 거칠고 성실하지 못하고 술에 취해 있으며 마찬가지로 혐오스럽게 욕지거리를 해 대기 때문에 그들의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다. 아주 하찮은 관리나 지주의 하인도 농부들을 마치 부랑자들처럼 취급하여, 심지어 마을의 노인들과 교회의 집사들을 하대하면서 자신들의 행동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모욕하고 강탈하고 위협하려고 마을에 마차를 타고 오는 탐욕스럽고 음탕하며 게으른 사람들에게서 무슨 도움이나 모범을 바라겠는가?
-이상, <농부들> 중에서 

 

 

 

 

 

1.
그는 지난 기억 속의 여러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중에는 사랑 때문에 즐거워하고 비록 짧았을망정 행복했다며 그에게 고마워하는 편안하고 선령한 여인들이 있는가 하면, 사랑에 진실하지 않은 여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수다스럽고 가식적이며 히스테릭했다. 이건 사랑이나 열정이 아닌 고상한 그 무엇이라도 되는 듯한 표정을 짓는, 그의 아내와 같은 여자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삶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얻어 내기 위해 탐욕스러운 표정과 집요한 욕구를 언뜻언뜻 드러내는 여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두세 명의 매우 아름답지만 차가운 여자들이었느데, 이제 나이가 들어 변덕스럽고 분별력도 없으며 억지나 부리는 천박한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이제 그들의 아름다움은 역겹게 느껴졌고, 심지어 그들의 속옷을 장식하고 있는 레이스조차 비늘 같았다.

2.
그녀는 항상 그를 선량하고 특별하며 고상하다고 말했으니, 분명히 그는 그녀에게 본래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무의식 중에 그녀를 속인 셈이다.

3.
그는 거리에서 여자들을 쳐다보며 그녀를 닮은 여자가 없나 찾곤 하였다.
그러다 그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추억을 털어놓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일을 집 안에서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웃주민들에게 이야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은행에 그럴 만한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말한단 말인가? 그가 그녀를 사랑한 거였나? 과연 그와 안나 세르게예브나 사이에 뭔가 아름다운 것, 시적인 것, 아니면 유익하거나 순수하게 관심을 끌 만한 무엇이 있기나 했나?


-이상,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중에서





4.
화를 그렇게 내던 사람이 내게 다가와서는 낮은 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거야. '여보게 마카르이치. 내가 어제 말한 것에 너무 성내지 말아주게. 내가 쓸데없는 말을 했다 해도 지금 나는 일급 상인이 아닌가. 그래도 내가 자네보다 훌륭하지 않나.자네는 그저 잠자코 있는 편이 좋을 것이야.' 하하하! 이렇게 으름장을 놓더군.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지. '그래요. 당신은 일급 상인이고 나는 목수예요.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죠. 하지만 성 요셉도 목수였지요. 이 목수라는 일은 하느님의 뜻에 맞는 옳은 일이요. 당신이 스스로 훌륭하다고 말해도 난 상관없소!' 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하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 코스추코프 말대로 일급 상인과 목수, 어느 쪽이 정말 훌륭한가 하고 말이지.


-<골짜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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