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처음에 나는, <이 궁전은 신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는 경내를 돌아보고 난 후 그러한 나의 생각을 수정했다. <이 건물을 세운 신들은 죽었다.> 그것이 가진 특성들을 살펴보고 난 후 나는 말했다. 「이것을 지은 신들은 미친 신들이다」



2.
그가 나를 쳐다보았는데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굴 입구 바닥에 엎드려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이 발육 부진의 혈거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내게는 너무도 거대한 안도의 기쁨이 몰려들었다(또는 너무도 거대하고 공포스러운 고독에 휩싸이고 말았다).



3.
나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도록 하기위해 원숭이들이 의도적으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게 에티오피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널리 퍼져 있는 사실이라는 것을 기억했다.



4.
불사의 존재가 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인간을 제외하고 모든 피조물들은 죽음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불사의 존재들이다.



5.
그러한 판단은 아마 내가 시인들에게서 배웠던, 모든 것을 허위로 오염시키는 정황 묘사, 즉 어떤 절차에 대한 지나친 맹종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그러한 정황이란 현실에서는 풍요하게 존재할지 모르나 그것에 대한 기억에서는 그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 <죽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6.
어처구니없게도, 그에 대한 따바레스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도록 만들었다. 아마 나는 사건들이 그런 식으로 일어나지 않았었기를 바랐던 것이리라. 아주 오래전 그 늙은 다미안을 보았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신화적인 운명의 주인공으로서 그를 연상했었다. 그런데 따바레스의 이야기가 그것을 산산조각 나도록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다미안이 왜 그렇게 과묵하고, 고집스레 고독을 지키며 살아갔었는지의 이유를 퍼뜩 깨닫게 되었다. 그가 그렇게 했던 것은 겸손함 때문이 아니라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나는 무조건 활기에 넘쳐 있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비겁한 행동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보다 미묘한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되풀이해 중얼거려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7.
보다 흥미로운 것은 울리케 폰 쿨만이 내세운 초자연적 추측이었다. 울리케가 말한 바에 다르면 뻬드로 다미안은 전투에서 죽었다. 그는 임종의 순간에 신에게 엔뜨레 리오스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청했다. 신은 그러한 은혜를 내려주기 전에 잠시동안 망설였다. 그 간청을 한 사람은 이미 죽었고, 몇몇 사람들은 그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신은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에 대한 영상들은 바꿀 수가 있다. 신은 그의 죽어 있는 모습을 기절해 있는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고, 그 엔뜨레 리오스인의 그림자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는 돌아갔다. 그러나 우리는 그림자인 그의 존재 조건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아내도, 친구들도 없이 고독 속에서 살았다.





-이상, <또 다른 죽음> 중에서





8.
비록 지옥이 우리가 거해야 하는 곳이라 할지라도 제발 천국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독일 진혼곡> 중에서





9.
첫째는, 만일 시의 목적이 읽는 자로 하여금 경이감을 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의 시간은 세기가 아닌 날이나 시간, 아니 아마 초로 측정되어야 할 거라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저명한 시인은 발명가라기보다는 발견자라는 것입니다. 이븐-샤라프 데 베르하를 칭송할 때 사람들은 오직 그만이 나무에서 잎사귀들이 떨어지듯 새벽의 별들이 천천히 진다는 상상을 할 수 있었다고 되풀이해 말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 이미지는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는 증명에 다름 아닐 겁니다. 단 한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미지라는 것은 그 누구의 마음도 움직일 수 없는 이미지임을 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베로에스의 추적> 중에서




10.
비야리는 기억 또는 기대 같은 것 없이 단순한 현재 속에서 살고자 했다.



-<기다림> 중에서





11.
내 눈이 보았던 것은 동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글로 옮기는 것은 연속적이다. 왜냐하면 언어의 성질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알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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