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눈을 뜨면 침대 위인데, 그게 바로 자네들 세상에서 말하는 탄생이라네! 그렇게 탄생을 해서 침대에서 일어나면 바로 글도 쓸 줄 알고, 미적분 계산도 할 줄 알고, 커뮤터 프로그램을 짤 줄도 안다네. 그뿐인 줄 아는가? 바로 출근을 해서 사업상 미팅을 하러 가고, 미팅 상대자와 비즈니스용 식사도 할 줄 안단 말일세. 거기서 뭔가 특별한 걸 배운 건 없지만, 우린 모든 일을 문제없이 해낼 줄 아는 걸세. 하지만 우리들도 완벽하진 않을지도 모르지. 왜냐하면 세월이 지나면 서서히 잊어가기 때문일세. 몸집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세상일에 대해서 많이 잊어버린다네.
게다가 사업상의 업무와 식사를 정상적으로 하지 못할 정도로 작아지게 되면, 그때는 회사에 갈 필요도 없어지게 되는 거지. 가봤자 아무런 쓸모도 없으니까 말일세. 그러면 집에 주로 있게 되고 세상 일에 대해 더 많이 잊어버려도 상관이 없단 말일세. 머리는 점점 텅 비어가고, 그러다 보면 머릿속에 공간이 생겨나지.
그런 다음엔, 이제 슬슬 여유를 갖고 다른 사람들이 해준 음식을 먹거나 심심하면 친구들을 찾아가서 놀다오는 걸세. 아니면 정원의 그림자들을 보며 유령이라고 상상하는 놀이를 즐기던가, 아니면 저 푸른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에 이름짓기 놀이를 하던가, 그도 아니면 아기 곰인형에게 호통을 치든 말을 걸든 수작을 걸며 놀아도 좋고, 또 그것도 아니라면...
2.
-그러니까, 말하자면 임금님네 나라에서는 어린 시절이 삶의 마지막에 온다는 거죠?
-생각 좀 해봐! 기뻐할 수 있는 뭔가를 내내 갖고 있는 거라고!
3.
아, 아무려면 어떠나, 인생은 그런 거야. 인생은 사람들이 잠드는 저녁에 시작해서 아침에 사람들이 깨어나면 잠깐 쉬지. 잠드는 것을 깨어나는 것이라고 하고 깨어나는 것을 잠드는 것이라고 불러야 마땅해.
4.
-지금 여기선 이렇게 큰 몸집의 자네가 저 멀리 하늘 위에 있는 별들을 보면 자신이 그토록 작게 느껴진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어두컴컴한 구석으로 튕기듯 굴러가도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는 조그만 바퀴가 된 느낌이죠.
-그럼, 나는 어떤지 아나? 난 엄청난 거인처럼 커지는 느낌이 들어. 내 몸이 늘어나 저 우주까지 뻗는 거지. 하지만 한순간 부풀엇다 언젠가는 팡 터지고 마는 풍선과는 차원이 달라. 어떤 껍질이 팽창하거나 팽팽해지는 것처럼 겉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그저 몸통 그대로 저절로 커지고 늘어나는 바로 그런 느낌이지. 마치 확 처져서 흩어지는 기체가 된 기분이라고 할까. 결국 나는 만물의 일부일 뿐 아니라 우주 자체이고, 별들은 내 안에 있어. 자네, 그게 어떤 느낌인지 상상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