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잡이들의 이야기 보르헤스 전집 4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외 옮김 / 민음사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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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카토풍의 농밀한 현기증>




결국 나는 다시 보르헤스를 잡았다. 계기는 2박 3일간의 예비군 동원 훈련. <픽션들>의 매력에 열광하면서 <알렙>과 이 책<칼잡이들의 이야기>를 덥석 사버렸지만 그것이 언제인지조차 기억이 희미할 정도로 나는 이 책들에 선뜻 손을 대기 주저했다. 보르헤스의 이야기들은 대체로 다 짧지만(보다 심원한 이유들이야 많겠지만 현실적인 이유로는 40세 이후 완전히 상실된 시력과 그로인한 퇴고의 편이성 때문이라고 한다.) 그 속에 녹아들어있는 세계의 밀도가 너무나 높음을 이미 한 번 맛봐서 알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계기와 유혹이 맞아떨어졌다.




민음사에서 나온 보르헤스 전집의 표지는 상당히 촌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고 표지를 들여다보면 이상하게도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석의 무한함. 다만 5권 모두가 같은 그림에 제목만 달라진다는 것은 조금 유감이다. 같은 화풍으로 권마다 달리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고 1부 ‘작가’에는 미니소설들이 있고, 2부 ‘칼잡이들의 이야기’에는 그보다는 약간 더 긴 단편들이 있다. 1부에 있는 미니소설들은 내용의 심원함으로 보나 짧은 형식으로 보나 일본의 한 줄짜리 시 하이쿠에 비견할 수 있겠다. 물론 읽자마자 무릎을 치게 되는 하이쿠들보다야 복잡하다. 2부에 있는 소설들은 <픽션들>에 비해 그 환상적이고 마술적인 느낌이 약간은 덜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작가 자신이 서문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는 바다. 문장은 좀 더 단정적이고 작품은 리얼리즘에 근접해있다. <픽션들> 하나밖에 읽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당연한 결과지만 1부와 2부 모두 ‘새로운’ 느낌이었다.   




특히 1부의 글들은 흉내 내고 싶을 지경이었는데 발톱에 대한 단상인 ‘발톱’이나 <픽션들>에 있는 ‘바벨의 도서관’이 떠오른 ‘궁전의 우화’는 정말 인상적이었다.(내게는 ‘궁전의 우화’가 짧은 만큼 조금 더 강렬했다.) 에셔의 그림‘그리는 손’이 떠오르는 ‘보르헤스와 나’는 또 어떠한가. 

2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두 작품은 ‘만남’과 ‘마가복음’이었다. 두 작품 모두 보르헤스로서는 의외라고 할 수 있는‘의외의 결말’을 제시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대중적이라 하겠다. 반전영화를 보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알렙>은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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