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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 신화 1 - 동양의 마음과 상상력 읽기, 중국편
정재서 지음 / 황금부엉이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훌륭한 책이다. 아마 2권을 갖고 있었더라면 곧바로 2권을 펼쳤을 것이다. 동양신화를 공부한 학자의 시각을 충분히 담아내면서도 '옛이야기의 맛'을 놓치지 않고 있다.
저자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 이 책은 시간 순으로 짜여있지 않다. 신화라는 시간을 초월한 주제를 연대를 의식해서 짜 맞춘다는 것은 저자의 말대로 '난센스'다. 대신에 그는 '쉽게 읽어나갈 수 있도록' 책을 구성했다. 그래서 그런지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책장을 넘기는 힘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화와 전설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책의 후반부에 다루고 있는, 이미 역사적으로 그 실체가 입증된 은나라나 강태공 등 '역사'와 가까운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재밌게 읽으면서도 '이게 신화 책인가?'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거기에 서양신화와 동양신화의 중대한 차이가 있다. 더불어 이런 의문은 우리의 사고 자체가 얼마나 서구화되었는지를 입증한다. 동양신화에는 신과 인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양의 신화처럼 신, 인간, 요정 이런 엄격한 종족(?)의 구분이 없는 것이다. 동양의 상상력과 서양의 상상력을 비교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난센스지만 서양의 상상력에 길들여진 탓인지 동양의 상상력은 그 느낌이 자유분방하고 스케일은 더 크게 느껴진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접한 중국의 옛이야기가 주는 호방함과 거침없는 상상력에 동경의 눈빛을 보내던 내가 '재미있는 중국신화'가 잔뜩 있을 거라 기대하며 샀던 책은 민음사에서 나온 위앤커의 '중국신화전설' 1,2권이었다. 어찌나 책장이 안 넘어가던지, 그 답답함이란….
이 책을 읽고 가장 놀란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었는데 이 책에는 분명 재미있는 옛날이야기가 가득하다. (2권의 목차를 보니 2권이 내 구미에 더 맞는 듯하지만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가 아닌, 학문으로서의 동양신화도 접할 수 있다. 비판적 신화읽기라고 불러도 좋을 방법으로, 저자는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물음을 슬쩍 흘린다. 무겁지 않게.
저자의 비판적 신화읽기는 단지 서양신화에 익숙한 세태를 비판하는 차원이 아니라, 신화에 숨어있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그것도 그 의미를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고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이를테면 '선양'이라고 하는 왕위 계승 방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이 그렇다. 지금도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말로 자주 쓰는 '요순시대'의 주인공 요 임금과 순 임금. 태평성대였던 만큼 요에서 순으로 넘어가는 과정도 평화로워 보인다. '태평성대'라는데 피비린내 나는 권력 싸움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비극적인 순 임금의 죽음을 두고 저자는 슬쩍 이런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아무 생각 없이 서문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시작하며’를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동양신화 속으로 ‘확’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서문에서부터 이렇게 사람을 잡아당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쩐지 슬픈, 가슴이 뻥 뚫린 관흉국 사람들과 생각해볼수록 재미있는(동시에 그동안 왜 이런 생각은 못해봤는지 스스로도 의아한) 인어 아저씨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2권을 만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