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위에 대한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는 후세에 더욱 정교해져서 동아시아 전역에 확대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한양의 서쪽에는 감옥과 처형장 등 형벌 및 죽음과 관련된 기관을 배치하였다. 가령 한양의 서쪽에 있던 ‘고태골’이라는 곳은 처형장이었다. 그래서 “고태골로 간다”라는 말은 죽음을 의미하였고, 줄여서 “골로 간다”, “골로 보낸다”라는 등의 속어가 이 지역으로부터 유래했다.
2.
이때 주는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잔혹한 폭군의 모습을 인상 깊게 보여준다. 주는 인질로 도성에 와 있던 주문왕의 아들 백읍고를 끓는 물에 넣어 삶아 죽인 뒤 그 고기로 장조림을 만들어 주문왕에게 보냈다. 주문왕이 정녕 성인이라면 그것이 자식의 살인 것을 알고 안 먹을 것이니 죽여버리고, 만일 모른 채 먹는다면 평범한 인간이니까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주문왕에게 자식의 고기를 먹임으로써 그의 성인됨이 거짓임을 폭로하는 술책이기도 했다. 아들의 고기를 먹지 않으면 목숨을 빼앗고 먹는다면 그 명성에 먹칠을 하게 만드는 교묘한 시험이었던 것이다.
…(중략)…
마침내 주문왕이 고기를 먹자, 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제 아들을 잡아먹는 성인도 있다더냐. 도대체 어떤 놈이 희창을 성인이라고 했더란 말이냐, 하하.”
주는 통쾌해하며 주문왕의 명성을 무너뜨린 데 만족해서 그를 풀어주었다. 성인으로서의 정당성을 잃은 주문왕은 더 이상 결계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사실 주문왕은 고기가 자식의 살인 것을 알면서도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 눈물을 삼키며 먹은 것이었다. 이러한 주문왕의 행동은 훗날 오히려 그의 비범함과 명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