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순간에도 휘발유만 넣어주면 되죠. 잠이 부족하다거나,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거나, 정서적으로 불안하다거나 하는 문제들로 일을 그르친다면 곤란하죠. 그것은 결코 프로라고 볼 수 없어요. 그런 태도로는 현대사회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저희들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으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식단이 이런 문제점을 낳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빵과 고기만으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식단은 인간을 결국 신뢰할 수 없고 게으른 존재로 만들죠. 휘발유는 인류의 새로운 대안입니다. 주위를 보세요. 지금은 21세기입니다. 속도의 천국이죠. 그러니 언제라도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2.

나는 혜성의 충돌, 기상이변, 한 미치광이에 의해 잘못 눌러진 원자폭탄의 발사, 공기전염되는 치명적 바이러스의 출현, 인공지능과 기계문명의 가공할 발전 등등의 이유로 인해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인간 자신이 만들어낸 질서 때문에 스스로 종의 역사에서 물러날 것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것은 도대체 무얼 뜻하는 것일까? 마치 인류가 이백년 전에 만들어낸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인간사회의 이곳저것을 빨아먹고서 이제 인류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하는 괴물로 자라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3.

예를 들어 뱃속에서 강력한 메탄가스가 생성되는 사내가 있었다. 그가 트림을 할 때 입 앞에서 라이터를 켜면 화염방사기 수준의 엄청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어릴 때는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다가 가족들의 머리카락을 홀랑 태워버린 적도 있었다.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은 사람으로 성장한 이 사내는 자신의 부끄러운 비밀을 움켜쥔 채 오랫동안 방에서 혼자 지냈다. 이 사내가 오랜 고민과 방황 끝에 골방을 뛰쳐나와 의사를 찾아갔을 때 의사가 그에게 내려준 과학적 처방은 이런 것이었다.

“트림을 할 때 입 앞에 라이터를 갖다대는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마시오. 그리고 위험한 화기 앞에서는 절대 트림을 하지 마시오.”

우리들의 과학이란 이렇게 편리한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존재를 무시당한 이 남자의 슬픔과 분노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 남자의 끔찍한 두려움과 공포는 ‘나는 왜 입에서 불이 나가는 걸까?’가 아니다. 이 남자의 두려움과 공포는 ‘나는 왜 다른 사람들과 다를까?’이다.




4.

우리는 불안 때문에 삶을 규칙적으로 만든다. 면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삶을 맞춘다. 우리는 삶을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움직이게 해서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만든다. 습관과 규칙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 말이다. 하지만 효율적인 삶이라니 그런 삶이 세상에 있을까. 혹시 효율적인 삶이라는 건 늘 똑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죽기 전에 기억할 만한 멋진 날이 몇 개 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5.

이것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시간의 문제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가 ‘제멋대로의 시계’를 가지고 있는 우주의 본질적 질서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 우주적 질서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관점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바벨의 시계를 세우고 거기에 맞춰 하나의 파시즘적 질서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영혼이 이런 파시즘적 질서에 끝없이 투쟁하려 하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이런 멋있는 이유로 인류의 역사에 다시 파시즘이 나오지 않는다면 멋진 일이겠지만 나는 인간이 그렇게 근사한 존재라고 믿지 않는다. 이것은 모두가 제멋대로 시계를 차고 있기 때문이다. 바벨의 시계 밑에 얌전히 있다보면 몸이 근질근질해지고, 뭔가 아귀가 안 맞고, 인생이 자꾸 꼬여만 간다는 느낌이 들고, 자신도 모르게 멍청한 일을 자주 저지르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가 본질적으로 멍청해서라기보다는 서로 시간이 안 맞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큰맘 먹고 파시즘적 질서에 따라주려고 해도 질서는 결코 지켜지지 않는다.




6.

그런데 뚱딴지같이 웬 회오리바람 이야기냐고? 나는 열다섯 살에 평범하고 그저 그런 아이에 불과했지만 분명히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분노라는 것을 할 줄 알았다. 이 식사시간을 보라. 이것은 정말 13호 캐비닛만큼이나 비현실적이지 않는가? 단지 직장 상사하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저 돼지 같은 년 어떻게 안 보고 사는 방법 없나?” 따위의 말을 면전에다 할 수 있는가. 그건 솔직히 진짜 돼지한테도 해선 안 되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다. 아무도 분노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7.

“저는 심토머들이 여전히 인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같은 종  말입니다. 단지 심토머들은 조금 아픈 거죠. 정체 모를 병에 걸려서.”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아니기를 바라지만.”

“아니기를 바라세요?”

“자넨 인간이라는 종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나?”

“예,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반성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니까요.”

“반성하는 존재라. 웃기는 소리군. 내가 스무 살 때 전쟁이 있었지.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개울가에서 깔깔거리며 같이 고기를 잡던 사람들이 이데올로기 때문에 두 패로 나누어졌지. 끝없는 살육과 복수가 있었어. 어느 날 나는 한패가 다른 한패 모두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걸 봤어. 일렬로 줄을 세워놓고서. 한 사람이 한 명씩 찔렀지. 그리고 그들은 초등학교 뒤편에 구덩이를 파고 시체들을 거기에 밀어넣었어. 아이들이 뛰어노는 초등학교 뒤편에 말이야. 자네는 그것이 이데올로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나?”

“……”

“지난 오십 년간 인간에게 그 시대를 반성하는 역사가 있었나?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있지. 자신의 아파트 평수나 지키기 위한 하찮은 이유들로. 나는 인간이라는 종을 증오해. 치욕스러워. 인간은 그것보다 더한 짓도 할 만한 생물이지.”




8.

한센 브라운은 착한 사람이다. 그는 성실한 가장이고, 좋은 아버지며, 지역사회를 위해 보이스카우트 시절부터 쉰 살이 된 지금까지 이민자들과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해왔다. 자기 재산의 반을 털어 심장병에 걸린 이웃 흑인 소녀를 살려낸 일은 지역신문 일면에 ‘우리 마을의 장발장’이라는 기사로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한센 브라운은, 매일 아침, 모압을 제조하는 군수회사로 출근한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한센 브라운의 딸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사람들 말로는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큰 폭탄을 만든다는데 그게 사실이에요?”

한센 브라운은 창백한 얼굴로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래, 아빠는 날마다 거대한 불행을 제작하지. 하지만 아빠가 지구 반대편에서 터질 불행을 제작하지 않는다면 그 불행은 우리집 응접실이나 너의 예금통장 같은 데서 터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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