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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짐 콜린스 지음, 이무열 옮김 / 김영사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원제가 ‘굿 투 그레이트’인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스스로 선택한 책이 아닌 것들을 읽어야 할 때 으레 그렇듯 머릿속에는 ‘내가 이걸 왜 읽고 앉아 있지?’ 류의 생각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그런 시각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위대한 기업 따위 나랑 상관없잖아!’ 책을 읽어가면서 한편으로는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책의 두께에서 비롯된 완독의 욕심이 생겼다. 반드시 끝까지 읽고 말리라, 끝까지 읽었을 때도 내 시각은 여전히 삐딱함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결과는?
책을 조금 읽다보면, 저자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 이게 단지 ‘기업’에 국한된 내용들이 아님을 알게 된다. 기업이 아닌 조직에도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일뿐더러 구태여 조직일 필요도 없는, 개인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소개하고 있는 개념들은 평이한 것이 많았다.
책의 1장을 읽으면서 내가 메모한 것들을 보면, ‘Good to Great는 결국 성과중심?! 정도의 차이일 뿐인가, Great로 가야할 필연성은? 비기업의 경우 좋은 것에서 만족할 수는 없나?’ 이런 것들이다. 첫 장에서부터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내게 가장 어려운 문제는 ‘왜 위대해져야 하나?’라는 것이었으며(이 문제는 책의 마지막에 가서야 제시된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good과 great를 가르는 기준은 ‘성과’였다는 것이다.
2장은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런지 개인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의 11명의 리더들 중에 들어본 사람이 있는가하고 묻고 있다. 미국인들에게 물어볼 정도라면 그들은 위대한 기업을 이루고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게 분명하다. 우리는 ‘말해진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말해진 것들은 곧 들리는 것들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알지 못한다고, 듣지 못했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대단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관심분야에서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 위대한 리더들의 특징 중 하나는 ‘나’보다는 ‘조직’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보다는 우리’라는 말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우리나라에서 좀 생각해볼만한 사실이 아닌가 싶다.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비정상적으로 조직과 단체를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으므로 개인주의가(이기주의가 아닌) 좀 더 활개를 쳐야한다고. 글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고 조금 신선하게 느낀 것이 있다면 그건 ‘나’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생각의 한계’가 분명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만화 [보노보노]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난다. ‘생각하는 건 언제나 하나, 많을 땐 두 개, 세 개는 필요 없다. 세 번째는 분명 자신을 생각할 테니까’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 이건 만고의 진리인 ‘너 자신을 알라’와 배치되는 의미가 아니다.
‘창문과 거울’의 개념도 인상적이고 쓸 데가 많을 것 같다. 잘 될 때는 창문을(밖을) 보며 공을 외부로 돌리고, 일이 잘 안 될 때는 거울을(자신을) 보며 책임을 외부로 돌리지 않는 것이다. 모든 좋은 소리가 그렇듯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렵다.
2장의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영업일당 100만 달러의 손실을 내고 있던 패니 마이라는 회사의 CEO가 된 맥스웰이라는 사람이 이후 9년 동안 위대한 기업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 물러난다. 그 눈부신 실적을 근거로 2000만 달러라는 퇴직금이 맥스웰에게 돌아가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논쟁을 일으키자 맥스웰은 후계자에게 편지를 보내 잔액 550만 달러를 기부하라고 주문한다. 이 일화를 소개하는 소제목은 ‘회사에 바치는 야망: 성공을 겨냥한 후계자 세우기’이다. 하지만 이건 논쟁을 무마시키려는 시도 혹은 생색내기 아닌가? 어쩌면 이건 기업인들을 기본적으로 비윤리적으로 바라보는 한국적 시각에 길들여진 탓도 있겠다.
3장의 원제목은 first who, then what이고 이것이 모든 내용을 압축하고 있다. 사람이 먼저고 그 다음이 할 일이라는 것.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그 일에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내가 듣던 상식적 차원이었는데 이 책은 그걸 뒤집어 놓았다. 적합한 사람을 뽑아두면 그 사람을 관리한다거나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게 된다. 4장의 주 내용은 스톡데일 패러독스(현실을 직시하되 믿음은 잃지 않는 것)지만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리더가 일차적 현실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과 ‘붉은 깃발’이었다. 상사가 일차적 현실이 된다면 그의 눈치를 살피느라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들에 대해 내가 뭐 얼마나 알겠냐마는, 상사가 일차적 현실이 아닌 기업이 얼마나 될까.
‘붉은 깃발’ 이야기도 신선했다. ‘진실이 들리는 분위기’를 만든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정보가 윗사람에게 전달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붉은 깃발 장치는 이를테면 발언권과 같은 개념이다. “질문 있습니까?”라는 말 다음에 손을 들어 얻게 되는 그런 발언권이 아니라 ‘절대적’ 발언권이다. 이 깃발을 들게 되면 말하는 사람은 말을 멈춰야 하고 발언권을 얻은 사람은 무엇이든 말할 수 있다. 중간에 누군가를 거치지 않고 즉각적으로,(당사자와 직접 이야기를 해도 말이 통하기 힘든 것이 커뮤니케이션인데 중간에 누군가를 거치면 어떤 식으로든 왜곡이 일어나게 된다.) 무시당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위로 전달한다는 것. 이런 일이 어렵다는 증거는 우리네 정치판만 봐도 대번에 알 수 있다. 왜 ‘국민의 뜻’은 항상 당신들 마음인 걸까.
이 책에서 의아한 것은 ‘가치’에 대한 부분이었다. 핵심가치를 갖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특별히 ‘올바른’ 핵심 가치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 가치를 조직 속에 명확하게 불어넣는 것이 포인트라고 한다. 그건 이 프로젝트 자체가 귀납적 방법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과학적’ 연구 안에는 ‘위대한 담배회사’도 들어가는 것이다. 브라보!
내가 책을 펼치자마자 궁금해졌던 것, ‘왜 위대해져야 하나?’에 대해 저자가 주는 답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것이 평범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보다 어렵거나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 있는 일을 찾기 위함이다. 열정을 넘어선 애정이 있는 일이라면 저런 물음은 불필요하다. 결국 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은 좋다(good), 위대하다(great)의 차이가 아니라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어라’다.
전혀 읽고 싶게 생기진 않았지만 완독하고나니 완독 후의 뿌듯함 이외에 무엇인가를 더 얻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