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취향 - 문예중앙산문선
강정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시인의 산문을 읽는다는 것>

토할 것 같았다. 새빨간 표지에 새파란 띠지. ‘드물게 재미있고 유쾌한 문화잡설’이라는 표지의 부제와 ‘한국일보 화제의 연재물’이라는 띠지의 글은 이 책을 다 읽은 나에게는 모두 거짓말이다. 그렇다고 표지의 부제를 ‘드물게 재미없고 불쾌한’이라고 뒤집을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다거나 유쾌해서 웃은 적이 없다는 것뿐이다. 한국일보 연재물이라는 것도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알겠지만 ‘화제의’라는 수사에 ‘인기 있는’이라는 이성적으로 따지면 전혀 상관없는 의미를 무의식중에 갖다 붙인 나는 애먼 새파란 띠지를 노려본다.


350쪽 정도의 분량에 연재물이라고 하니 금방금방 읽히겠지 했던 내 기대는 완전히 무너졌다. 신문의 연재물을 모아놓은 에세이집이나 단편소설집의 경우 읽다보면 어느새 절반 이상 읽은 것을 확인하게 되는데 모두 43개의 글이 실려 있는 그닥 두껍다고 할 수 없는 이 빨간 책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토할 것 같았다. 누구는 보르헤스의 [픽션들]이 짧은 소설들의 밀도 때문에 한 번에 읽기가 힘들었다고도 하지만 그 기본이 되는 ‘이야기’가 주는 흥분 때문에 나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이 책에는 책을 손에 붙잡고 완독하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없다. 물론 그것은 일주일에 한번 읽어야 소화가 될까 말까한 글들을 다 모아놓은 탓이 크다.



거기다가 제목이 말해주듯 이것들은 ‘나쁜’ 취향이다. 작가는 이 ‘나쁜’이 ‘좋다, 올바르다’의 반대말이 아니라 ‘제 멋대로의’, ‘독단적인’의 의미와 더 잘 어울린다고 쓰고 있다. 나쁜 취향은 결코 친절하지도 않고 대중적이지도 않다. 평범한 일반인(그러니까 일간지의 독자층이라고 하자.) 중에 여기 소개된 43개의 취향(실제로는 그 이상이다.) 중에서 절반 이상에 익숙한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이건 이 책이 의도하는 바이니 존중해줘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이 책의 가치가 있다.


여기에 소화불량의 원인을 또 하나 보태자면 이 글을 쓴 사람은 시인이다.(나는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한 번도 강정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지만.) 시인의 산문을 읽는다는 것은 어쩐지 민망하다. 민망한데다가 고역이기까지 하다. 시인이 선택한 어휘라 뭐가 달라도 달랐다. 그 현학적이고 화려한 수사란. 본인은 무겁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글쎄다. 마크 해던의 소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 생각났다. 그 소설에는 자폐아 크리스토퍼가 어떤 문학 작품의 ‘화려한’ 문장을 보면서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통쾌했다. 진보 논쟁이 한창일 때 노무현 대통령이 최장집 교수를 비롯한 진보학자들의 말에 대해 ‘아무리 읽어봐도 어려워서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을 때도 일종의 통쾌함이 있었는데 그것과 유사하다.


그래서, 거의 끝부분에 이르러서는 정말 ‘악에 받쳐서’ (어지간해서는 다 읽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끝까지 다 읽었고 묘한 후련함과 승리감까지 느끼면서 새벽 3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나에게 굉장한 인상을 남겼다. ‘토할 것 같았다’거나 ‘소화불량’, ‘친절하지도 대중적이지도 않다’ 등의 표현으로 전체적으로 부정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이런 책이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 자체가 ‘문화’의 저변을 넓히는 시도라는 점에서 존중했다. ‘나쁜 취향’이라는 책은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비주류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취향이란 결국 ‘나쁜 취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 책은 나에게 창작욕을 일으켰다.(물론 ‘-욕’이 들어가는 것들이 그렇듯 잠깐이었지만.) 대중적인 코드를 맞출 필요도 없으며 대상에 대해 A부터 Z까지 꿰고 있는 전문성은커녕 A만 알고 있어도 연재를 하고 이렇게 책을 낸다면 출판의 자유는 한층 넓어질 것이다. 아마 당신도 같은 제목으로 30개쯤 혹은 그 이상 되는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써도 괜찮을 것이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분명 좋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장정일쯤 되니까 이런 잡설도 책으로 내주는 구나’하고 생각하며 읽었던 [생각]의 첫 장 ‘아무 뜻도 없어요.’가 생각났다. 물론 연재물인 만큼 그보다는 훨씬 균일한 글이었다. 독자가 모르는 것을 말하고 있는 이 책의 운명은 다루고 있는 내용들처럼 비주류로 남을 수밖에 없지만 바로 그 점에서 이 책은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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