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요조, 당신은 자살하거나 종교를 통해 구원받아야 했소. 당신의 수기는 백발이 성성한 27살 이후로는 아무것도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아서 정말로 자살했거나 종교를 통해 구원을 받았을지도 모르겠군. 아니, 어쩌면 당신은 자살하지도 않고, 종교도 없이 계속 그렇게 살면서, 당신을 보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저렇게 살면 인간으로서 실격이다.’라든가 ‘저렇게 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도록 태어난 것인지도 모르지.

 

당신이 수기의 앞부분에 쓴 여자에 대한 불가해함에 대해서는 나도 200퍼센트 동의하는 바요. 같은 인류인 듯 하면서도 남자와는 전혀 다른 생물,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들은 ‘외계인’이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소. 당신은 아마 여자에게 데었겠지. 그래서 ‘여자가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 거고. 당신은 잠깐 뇌병원에서(출판사 별로 당신의 수기를 번역하는 데 조금씩 차이가 있소. 민음사에서는 희극 단어와 비극 단어 놀이를 ‘희’나 ‘비’라고 번역한 데 반해, 웅진씽크빅이라는 출판사에서는 ‘코미’, ‘트래’라고 번역했지. ‘뇌병원’은 어느 쪽 같소? 웅진씽크빅이오. 민음사에서는 ‘정신병원’이라고 번역했지. 난 왠지 웅진 쪽 번역이 좀 더 맛이 있다고 생각되는군.) 당신의 소원을 이루었지. 그곳은 온통 남자들뿐이었으니. 하지만 수기의 마지막에 가서 당신은 또 다시 여자와 살고 있더군. 아마도 여자일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인간으로서 이미 실격된, 그 보잘 것 없는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 당신의 운명인가 보오.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소. 인간을 구제할 수는 있어도 구원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만들어낸 온갖 음악, 영화와 소설에서 구원의 대상뿐만 아니라 구원의 주체까지도 인간으로 그려지지. 그것도 여자로 말이오. 한때는 널 구원이라 생각했다는 토이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이라는 노래의 가사에서부터 카프카의 <심판>에 이르기까지 여자를 구원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인류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모티브일거요.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소.(내가 이렇게 강조하는 까닭은 당신처럼 될까봐 두려워서요.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한 것이오. 솔직히 말하면 심적으로는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고 싶소.) 만약 인간의 영역에 구원이 있다면 당신의 27살의 모습과 같은, 결국은 여성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그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 구원이라면 구원이랄까.

 

당신의 수기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소. 푹푹 찌는 한 여름의 땡볕에서 당신의 수기를 읽고 있자니 <이방인>의 뫼르소도 생각났고…. 남을 의심할 줄 몰랐던 당신의 요시코가 더럽혀졌듯 당신은 마담의 말처럼 ‘좋은 사람’이었지만 인간으로서 실격됐소. 인간 세상이란 그렇다오. 당신 같은 좋은 사람은 살 곳이 못되지. 절대 선은 이 더러운 세상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는 것이오. 당신이 절대 선인지는 논외로 하고 말이외다. 무엇하나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 없이 ‘싫은 것을 마다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도 전혀 즐기지 못하는’ 당신에게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 있는 말이 어울릴 듯하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런 당신이 유일하게 자신의 뜻으로 한 행동이 자살이었지. 결국 미수에 그치고 말았지만.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이래서는 안 되는데’하는 쪽으로 흘러가기가 얼마나 쉬운 지 이제 당신도 알겠지. 자기가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원하지 않는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시간은 ‘순간’이오. 매 순간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오. 누구하나 상처받는 사람 없이(사실은 모두가 모두에게 상처받으면서) 밝고 명랑하게 서로를 속이는, 인간이 인간을 밀어젖혀도 죄가 되지 않는 인간세상에서 살기 위해 말이오. 노래 말마따나 ‘너무 많은 이해심은 무관심’일 수도 있듯, 너무 많은 이타심이 오히려 극도의 이기심일 수도 있는 거요. 바로 당신의 경우처럼 말이지.

 

마담의 말처럼 당신의 아버지가 나쁜 것일지도 모르지. 당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는 내게 카프카가 가진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소. 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둔 사람은 많아. 당신이 그렇게 된 까닭은 어느 누구에게도 있지 않소. 바로 당신에게 있지. 인간이 만약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일 것이오. 행복조차도 두려워한 겁쟁이 요조. 당신이 한 말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말은 니체가 병원에 가기 전 말을 붙잡고 했을 법한 바로 이 말이오. “아아, 인간은 서로 아무것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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