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틀뢴의 한 학파는 시간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현재란 규정될 수가 없는 거고, 미래란 현실적 실체가 없는 마치 현재적 기다림과 같고, 과거란 현실적 실체가 없는 현재적 기억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2.

그러나 그는 단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그 작업은 사기꾼 예수 그리스도와 그 어떤 타협도 맺지 않아야 한다>는. 버클리는 신을 믿지 않았다.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인간도 우주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그 존재하지 않는 신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어했다.




3.

10년 전 그 어떤 대칭도-변증법적 유물론, 반유태주의, 나치즘-외형적 질서만 가지고 있으면 쉽게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있었다. 그 누가 질서정연한 혹성이라는 정밀하고 방대한 증거를 눈앞에 두고서도 틀뢴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인가? 현실 또한 질서정연하다고 반박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리라. 아마 현실 또한 그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질서정연하다는 것은 여태까지 우리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신적인 법-나는 비인간적법이라고 번역한다-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하다는 말이다.




-1,2,3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중에서..




4.

또 다른 텍스트는 예수 그리스도를 한 번화가에, 햄릿을 까나비에르 거리에, 또는 돈키호테를 미국의 월 스트리트에 가져다 놓고 있는 그런 기생충 같은 작품들 중의 하나였다. 뛰어난 품격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메나르는 그러한 헛되고 소란스러운 행태를 혐오했다. 그에 따르면 그러한 것들은 시대착오적인 망상에 따른 천박한 즐거움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거나, 또는 (보다 나쁜 것으로) 모든 시대가 동일하다거나, 또는 모든 시대가 서로 다르다는 그런 초보적인 지식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5.

그 어떤 지적인 활동도 종국에 가서는 쓸모없게 되기 마련이다. 하나의 철학적 원리는 시초의 세계에 대해 그럴 듯한 묘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은 철학사 속에서 단순히 한 장-만일 한 단락이나 명사로 되어버리지 않는다면-으로 남게 된다. 문학에 있어서 이러한 시간에 따른 쇠락현상은 더욱 치명적이다. 메나르는 내게 <돈키호테>가 무엇보다 우선 재미있는 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에 있어 그것은 애국주의적 취향, 문법적으로 오만함, 호화로운 장정으로 꾸민 각종 난잡한 판본들이 난무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될 뿐이다. 영광이란 일종의 몰이해에 불과하며, 아마 최악의 몰이해일는지도 모른다.




-4,5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중에서..




6.

나는 인류가 점차로 보다 대담한 일에 자신을 내던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곧 세상에는 전사들과 도적들밖에 없게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하고 싶다. <대담한 어떤 일을 수행하는 자는 자신이 이미 그것을 완수했다고 생각해야 하고, 마치 과거처럼 절대로 바꿔놓을 수 없는 미래를 자신에게 강요해야 한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중에서..




7.

그는 청회빛 말이 자신을 내동댕이쳤던, 그 비가 뿌리던 날의 오후 이전에는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일종의 소경, 귀머거리, 얼간이, 건망증 환자.




8.

그는 다형적이고 순간적이고 그리고 거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한 세계에 대한 고독하고 명증한 관찰자였다. 바빌로니아, 런던, 그리고 뉴욕은 자신들이 가진 잔혹한 현란함을 가지고 인류의 상상력을 압도해 왔다.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그곳들의 건물이나, 사람들이 바삐 지나가는 큰길에서는 아무도 남아메리카의 황량한 한 변두리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행한 이레네오 위로 수렴되는 것과 같은 전혀 지칠 줄 모르는 어떤 현실의 열기나 압박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잠을 잔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거두어들여 버리는 것과 같다.

...(중략)...

또한 그는 자신이 늘 물살에 흔들리고 휩쓸려가는 강바닥에 있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는 전혀 힘들이지 않고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라틴어를 습득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곤 했다. 사고를 한다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며, 또한 일반화를 시키고 개념화를 시키는 것이다.




-7,8 ‘기억의 천재 푸네스’ 중에서..




9.

그가 입을 열었다. 뢴로트는 그의 목소리에서 지친 승리의 감정, 우주의 크기만 한 증오심, 그 증오보다 결코 작지 않은 슬픔을 읽었다.




-‘죽음과 나침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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