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기 전 나의 이야기
카타리나 베스트레 지음, 린네아 베스트레 그림, 조은영 옮김 / 김영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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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거나 책 만드는 일을 종종 임신과 출산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사람이든 책이든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그 길고 지난한 과정에 초점을 맞춰 말하기도 하고, 결과물이 만든 사람의 뜻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면에서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저도 몇 권의 책을 만들어오면서 종종 감흥에 젖어 아, 정말 그렇지 하곤 했는데요, 심지어 제가 아이의 아빠가 된 후에도 그런 비유에 대해 다른 생각은 못 해봤습니다. 그런데 이 책 《내가 태어나기 전 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보니, 앞으로는 그런 말들, 그냥 흘려 들으려고요. 출간은 출간, 출산은 출산이니까요.

이 책은 맨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정자와 맨눈으로 보일까 말까한 난자가 만나 어떻게 사람이 되는지, 쉬운 말로 쓰여 있습니다. 아마 대충은 다 알 겁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이루어지고, 세포분열이 일어나서 배아가 되고, 배아가 태아가 되고, 어쩌고저쩌고. 중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우죠. 대충은 다 아는 이야기를 쉽게 써놨으면 무슨 매력이 있겠어요.

이 책의 매력은 우선 그림에 있습니다. 저자의 여동생이 직접 그림을 그렸는데, 사실적이면서도 간결하게, 선으로만 그려서, 태아를 있는 그대로 보기 좋았어요. 해외 다큐 같은 데서 보는 사실적인 컴퓨터 그래픽이나 특수촬영한 실제 태아 사진하고도 느낌이 다르고, 발생학 교재 같은 데서 보는 그림이나 임신 출산 책에서 보는 그림하고도 다릅니다. 감성이 있달까요?

또다른 매력은 태아를 대상화하지 않고 책을 읽는 독자와 직접 연결시켜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이 책에서는 태아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종종 스스로를 '나'라고 지칭합니다. 그래서 제목도 '내가 태어나기 전 나의 이야기'예요. 노르웨이어로 된 원제는 '최초의 신비: 너의 이야기, 태어나기 전'이라는 뜻이고, 영어판 제목은 'The Making of You: A Journey from Cell to Human'입니다. 보시다시피 여기서는 태아가 'you', 그러니까 독자입니다. 네가 태어나기 전에 어땠는지 말해줄게, 이런 느낌인 거죠. 본문에서도 이 인칭 문제로 꽤나 고민을 했는데요, 우리말로 너, 당신, 그대, 그쪽, 자네, 너님(...) 등 2인칭 대명사는 경어체 문제까지 엮여서 쉽게 쓸 수가 없었습니다. 팀원들을 비롯하여 번역을 마친 역자 선생님, 아내 등등 많은 이들을 귀찮게 하며 물어본 결과, 2인칭과 경어체는 이 '과학책'에는 아니다 싶어 과감히 버렸습니다.
1인칭이든 2인칭이든, 첫 세포에서 첫 호흡까지의 이야기는 나, 너,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텐데, 생물 시간에 저는 왜 그런 생각은 못 해봤을까요?

찬찬히 뜯어보면 사실 쉽지만은 않다는 점도 숨은 매력입니다. 이 책은 역자 선생님이, 어느 정도 생물학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외려 더 헷갈릴 수 있겠다며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정도의 용어는 괄호 치고 넣어주셨을 정도로, 쉬운 말로 쓰여 있습니다. 본문이 참 쉬운 말로 쓰여 있어서 그랬는지, 저는 참고문헌 대부분이 논문이라는 게 놀랍더라고요. 고등학교 생물 지식조차 희미해져가고, 인간발생학을 이렇게 쉽게 풀어쓴 과학교양서는 본 적이 없어서, 제게는 정말 듣도 보고 못한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내용적인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책소개나 표지 글에 두루 적어두었으니 여기서 반복하진 않을게요.

그리고 '경이'에 대해 잠시 생각했어요.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모두 속속들이 알아도 그 경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다 읽고 나니 이 책의 출발점이기도 한, 저자가 여섯 살 때 엄마 뱃속의 동생을 생각하며 품은 질문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는 이 문장 그대로 새롭게, 경이가 되더군요.

마지막으로, 꼭 역자후기까지 읽어주세요. 그래야 이 책을 다 읽었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 모두의 이야기(저자의 글)를 읽고, 다른 사람의 임신과 출산 이야기(옮긴이의 말)를 들었으면, 자연스레 내가 기억하기 전에 어땠는지 궁금해지실 겁니다. 그 시절 이야기 듣고, 사진도 꺼내 보고 하는 건 어떨까요? 임신을 준비 중이거나 뱃속에 이미 아기가 있는 분들께도 물론 색다른 독서가 되겠고요. 유전자 편집 아기가 태어나는 시대에, 인간이 만들어내는 가장 경이로운 창조물에 대해 읽어보시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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