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멍 없는 벽으로는 고기를 잡을 수 없는 법이지. 반대로 그물이 유효한 것은 수많은 구멍 때문이지. 적절한 구멍. 왜 나는, 그리고 수학자들은 그런 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일까?
2.
하나의 단일한 기초로 이 많은 수학들을 환원하거나 통일하려던 시도가 실패로 끝난 것이다. 이제 정관사를 붙인 수학, 대문자로 쓰여진 수학 the Mathemetics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수학, 저런 수학, 수많은 수학들이 존재할 뿐이다.
..(중략)..
그렇기에 수학의 기초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 수학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우스운 일일 것이다. 그것은 다만 수학을 하나의 틀, 하나의 기초에 가두려는 시도가 종말에 이른 것을 뜻할 뿐이다. 따라서 그 실패는 새로운 자유, 사실은 언제나 수학에 있었고, 언제나 수학과 함께했던 오래된 자유를 뜻할 뿐이다.
3.
이처럼 가진 게 적기에 잃을 것도 적은, 아니 잃는 게 두려워서 가진 것을 줄여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게 마련이다.
4.
이 결정 불가능한 명제는 주어진 공리계 안에서 참임을 증명할 수 없는 명제지만, 반대로 거짓임을 증명할 수도 없는 명제다. 다시말해 그 공리계 안에서 반드시 모순을 일으키지는 않는 명제다. 따라서 이런 명제를 공리로 채택한다면 그 공리계 안으로 포섭할 수 있다. 모순을 일으키지 않으니 차라리 쉬운 셈이다.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를 앞의 네 공리로 증명하는 데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거짓으로 증명된 것도 아니기에, 공리로 채택하면 되었던 것처럼, 이런 의미에서 평행성 공리는 앞의 네 공리로 이루어진 기하학 공리계에 대해 결정 불가능한 명제였던 셈이다. 반명 그 명제를 부정한 다른 명제를 공리로 채택해도 된다. 거기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새로운 공리계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앞서 보았다.
5.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주인공이나 어머니나 모두 20만 원을 주고 20만 원을 받았으니, 두 사람 모두 이득도 손해도 없는 교환이었던 셈이다. 가장 확실한 수학인 산수는 이를 정확하게 계산해준다.
어머니:20만 원-20만 원=0원
아들:20만 원-20만 원=0원
그러나 케스트너는 이런 '경제 방정식'과 다른 '윤리 방정식'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어머니를 위해 20만 원을 썼고, 20만 원이 새로 생겼으니 40만 원의 이득이 있었다. 어머니 역시 아들을 위해 20만 원을 썼고, 아들이 준 20만 원이 생겼으니 40만 원의 이득이 있었다. 그러니 도합 80만 원의 순이득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할 때, 경제방정식으로 나타나지 않는 순이득이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