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면서부터 지구는 공 모양이다.
2.
그러나 바로 가장 간단한 일이 언제나 가장 힘든 법이다.
3.
그는 지금 아흔 살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중국까지 가기 전에 그것을 깨닫고 자기의 여행을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르고.
그러나 때때로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면 나는 서쪽을 바라본다. 어느 날인가 그가 지쳐서 천천히, 그래도 미소를 지으며 숲속에서 걸어 나온다면, 그리하여 내게로 와서 '이제야 나는 믿게 되었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하고 말한다면 나는 참으로 기뻐할 것이다.
-이상 '지구는 둥글다' 중..
4.
주지육림에 묻혀 살든, 가난하게 살든,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에 살든, 다른 곳에 살든, 결국 매일같이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권태롭게 되고 만다. 그래서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은 바르셀로나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바르셀로나에 사는 사람들은 어딘가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왕처럼 사는 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왕이 믿는 것을 괴로와한다.
..(중략)..
그의 침대는 호화찬란하지만 그래봤자 그 속에서 잠자는 것 밖에는 별로 할 일이 없다.
5.
누군가 "덤벼라, 콜롬빈, 나와 한번 싸워보자"라고 말하면, 콜롬빈은 "나는 너보다 약해"하고 말했다.
누군가 "둘에다 일곱을 곱하면 얼마가 되지?"하고 말하면, 콜롬빈은 "나는 너보다 머리가 나빠"하고 말했다.
누군가 "너는 저 냇물을 건너 뛸 자신이 있니?"하고 말하면, 콜롬빈은 "아니, 나는 그럴 자신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왕이 "콜롬빈, 너는 뭐가 되고 싶으냐?"하고 물으면, 콜롬빈은 "나는 아무 것도 되고 싶지 않아요. 나는 벌써 무엇인가 되어 있어요. 나는 콜롬빈이니까요"라고 대답했다.
-이상 '아메리카는 없다' 중..
6.
사람이 생각없이 걸으면 박자에 맞추어 걷게 된다. 그러나 생각을 하면 박자에 어긋난다.
-'칼' 중..
7.
"주여, 나에게 술 주정꾼과 창녀와 도둑을 보내시어 내가 저들을 당신께 인도하도록 하옵소서" 이것이 신학교에서의 기도였었다. 이제 그의 기도는 "주여" 뿐이었다. 청중 가운데 그보다 덜 경건한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여러분들은 참으로 경건합니다. 정말 경건한 선남선녀들이십니다"하고 말하기 위하여 거기 있었던 것이다.
-'기곤씨' 중..
8.
그 까닭은 우리가 언제나 어떤 사람의 개인적 의사표현을 개인적 의사표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다. 우리는 언제나 민족성과 결부시켜 본다. 친절한 독일인들을 만나면 우리는 "그들은 전형적 독일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또 불쾌한 불란서인들을 만나면 우리는 "그들은 전형적 불란서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중략)..
스위스인의 모든 행동을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전형적 또는 비전형적으로 분류한다.
이런 이유로 어중간한 사람은 스위스인이 아니다.(신병훈련소가 스위스인에게는 훌륜한 역할을 하니까)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은 스위스인이 아니다.(그런 사람들은 이곳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동구 공산진영으로 가서 살면 되니까) 병역 복무를 거부하는 사람은 스위스인이 아니다. 일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스위스인이 아니다. "나는 스위스인이다."하고 언제나 자랑스럽게 말하지 않는 사람은 스위스인이 아니다. 그리고 '진짜' 스위스인들은 이 모든 스위스인답지 못한 스위스인들이 시민권을 갖고 있고 전형적 스위스의 존속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한다.
..(중략)..
비전형적으로 될까봐 우리는 불안해 한다.
..(중략)..
20년 뒤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보이는 스위스 속에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소름이 끼친다.
..(중략)..
이리하여 그들은 국민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왜냐하면 온건한 사회주의 정책은 중산층 스위스인을 유산계급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유산계급이 된 중산층은 자기의 꽃밭을 지키기 위해서 토지 투기업자를 옹호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것을 사람들은 관용이라고 부른다.
..(중략)..
우리의 언론기관은 이미 토론의 광장이 아니다. 토론이 없는 민주주의는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것이다.
-'스위스인의 스위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