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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의 즐거움
허균 외 / 솔출판사 / 1998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는 우리에게 홍길동 전으로 잘 알려진 허 균입니다. 홍길동 전은 문학사적으로 보면 최초의 한글소설이란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죠. 이젠 한글이 우리 시대의 주류문자가 됐지만 당시엔 한문문학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 한글소설을 발표했다는 것은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닙니다. 이말은 허균이 당시 비주류에 속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남들이 사는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란 대개 어떤 커다란 물살이 있으면 그 물살에 휩싸여 삶의 안정을 찾으려 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드물지만 이런 물살과 부딪히면서 자기 흐름으로 자기 삶을 살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살려다보면 주위와 갈등하게 되고 삶이 평탄하게 흘러가지 않지요. 허 균은 바로 이런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남들이 사는 주류의 흐름을 벗어나 자기 물살을 일으키며 자기 언어로 살려는 비주류의 인물, 허 균이 포착한 선인들의 지혜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먼저 이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소나무에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시냇물이 흘러가는 소리, 산새가 우는 소리, 들에 벌레 우는 소리, 학이 우는 소리, 거문고 소리, 바둑돌 놓는 소리, 비가 층계에 떨어지는 소리, 눈이 창밖을 스치는 소리, 차를 끓이는 소리, 이런 소리들은 매우 맑은 소리들이다...' 정말 우리 주위에 이렇게 아름답고 신비한 소리들이 많았던가 새삼 놀라게 되는 대목이죠. 그런데 지금 우리 귀를 울리는 소리들은 무엇입니까.. 자동차 소리, 시장의 소란한 소리, 귀를 찌르는 음악소리.. 정말 우리들의 심상에 떠오르는 소리들은 어지럽기 짝이 없습니다. 가라앉지 않는 욕망들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옛 선인들은 가난과 은둔 속에 찾아드는 평화를 추구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이란 소극적으로 덮쳐오는 것이 아니죠.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추구하는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몇 구절을 더 소개해보겠습니다. '한 푼의 욕심을 덜면 한 푼의 하늘의 이치를 얻는다', '입 속에는 말이 적게 마음 속에는 일이 적게, 밥통 속에는 밥이 적게 밤이면 잠을 적게.. 이대로 네 가지만 적게 하면 신선도 될 수 있다', '사람의 정신은 맑은 것을 좋아하는 데도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은 고요함을 좋아하는데도 욕심이 유인한다. 언제나 욕심만 버릴 수 있다면 마음은 저절로 고요해지고 마음만 맑게 갖는다면 정신은 저절로 맑아지는 것이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동양 선현들의 가르침과 성경의 가르침이 참으로 닮은 꼴을 이루고 있다 하는 탄복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덮을 때쯤 돼서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한 말씀이 자연스럽게 마음 속에 떠올랐습니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은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5: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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