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불났어
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한기욱 옮김 / 창비 / 1998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인 아리엘 도르프만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냅니다. 그러다가 칠레로 가서 대학을 졸업하고 칠레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는데요. 피노체트가 쿠테타로 아엔데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하자 미국으로 망명해 듀크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 창작활동을 벌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시고니 위버의 진실'이란 영화로 소개된 희곡 '죽음과 소녀'의 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집에 불났어'에는 모두 11편의 단편소설이 들어있는데요, 칠레 피노체트 독재정권 하의 암울한 정치상황이 소설의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칠레는 국토의 길이가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로 잘 알려져 있죠. 칠레라는 말은 '대지가 끝나는 곳'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의 배경을 이루는 칠레의 정치상황을 조금 말씀드리면요. 1970년 살바드로 아옌데는 역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한 사회주의 정권을 출범시킵니다. 그러나 이 정권은 3년 만에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의 군부 쿠테타로 무너지고 맙니다. 이 쿠테타는 최소 5천 명에서 만 5천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장 잔혹한 쿠테타였습니다. 이후 17년 동안 피노체트에 의한 군부독재정권이 지속됐는데요. 이 기간 동안 살해된 사람은 2천 2백여 명, 실종자는 천여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피노체트 군사정부는 지난 89년에 민간정부로 권력이 이양됐지만 피노체트의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합니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11편의 단편소설은 노조 지도자 출신의 아버지와 징집된 아들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이 가족 간의 사랑으로 화해되는 '식구'라는 작품, 독재정권의 냉혹한 검열관이 마치 자신의 모습을 주인공으로 한 듯한 소설을 검열하는 과정에서 가치관이 변모해가는 모습을 탁월하게 그려낸 '독자', 피노체트 군사정권의 특징을 세 명의 장교후보생을 통해 드러내보이는 '뿌따마드레', 피노체트 정권과 아옌데 정권의 모습을 서로 다른 지지자를 갖는 부부를 통해 묘사한 '외로운 이들의 투고란', 고문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세밀하게 그려낸 '상담',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눈을 통해 냉혹한 정치현실을 바라보는 '우리 집에 불났어' 등인데요. 탄력을 잃지않는 문장 속에 긴장과 따뜻함, 비장함과 유머가 깃들어 있어서 독자들은 글 읽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문민정부,  국민정부,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에 우리에게 익숙했던 인권, 독재, 민주, 검열, 고문 같은 단어들과 멀어지게 됐다는 것이죠. 인권적 가치보다는 경제적 가치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듯한 물신숭배사상이 더욱 강렬해지고 있는 느낌마저 갖게 되는데요. 역사가 분절된 것이 아니라면, 어제 우리가 기도하고 추구했던 가치는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죠. 그러나 우리 시대는 오히려 군사정권, 독재정권이 기승을 부릴 때보다도 오히려 더 인권적 가치가 무시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제도적으로는 개선됐을지 모르지만 우리 마음 속의 인식 수준은 퇴보했을 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게 되는 것이죠.
  남미의 대표적인 작가 도르프만의 저서 '우리 집에 불났어'는 우리에게 바로 이런 질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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