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수명이 짧은 나라
야마모토 토시하루 지음, 문종현 옮김 / 달과소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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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교사들의 묘지가 있는 양화진을 찾을 때마다 묘한 느낌에 젖는다. 이들은 어떤 인연으로 낯선 땅 한국에 들어와서 일생을 바치고 심지어는 자신의 주검까지 이역 땅에 묻어버릴 수 있을까... 그냥 사랑이나 동정심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일본인 의사 야마모토 토시하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간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서 파리떼로 까맣게 뒤덮인 수박을 아무런 꺼리낌 없이 우적우적 씹어먹는 아이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그후 의사가 된 그는 심각한 고민 끝에 '국경없는 의사회'(Medicins Sans Frontieres : MSF)에 가입한다. 그리고 시에라리온이라는 나라에 파견돼 인술을 펼치는데....

아프리카 서안에 위치한 450만 인구의 작은 나라 시에라리온(Sierra Leone)은 어떤 나라인가? 세계에서 가장 짧은 수명, 유아 사망률 최악, 임산부 사망률 최악.... 그뿐인가? 이곳에서 채굴되는 다이아몬드를 둘러싸고 끊임없는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 이 전쟁에 다섯 살 난 소년소녀가 끌려가 살인을 배운다. '시에라리온 소년병'이란 말은 국제사회에서도 널리 알려진 상징적인 단어가 아닌가? 이 난장판의 나라에서 동양에서 날아온 의사 토시하루가 펼치는 인술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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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 손이 되어줄 수 있나요? - 흡족한 캐어를 받기 위하여
오사나이 미치코 지음, 변은숙 옮김 / 깊은자유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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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나이 미치코 씨는 중년의 중증 뇌성마비장애인이다. 그녀는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 없고 용변처리도 할 수 없다. 그녀의 24시간은 누군가의 캐어(care)가 없이는 영위되지 않는다. 일어날 때도, 옷을 입을 때도, 약을 먹을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손톱을 깎고 목욕을 할 때도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뿐인가? 한밤 중에 갑자기 고독이 밀려올 때는 대화할 사람이 필요하고, 성을 나눌 배우자도 필요하다. 그녀는 '장애인'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애인을 기다리는 현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화장실에 가면 도우미와 커튼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변을 보기 위해 힘을 주어야 한다. 어느 시설에서는 기저귀를 갈아줄 때마다 '물 좀 먹지마'라며 엉덩이를 꼬집기도 한다. 그녀는 어릴 적에 의사와 훈련사, 간호사와 보모, 선생님들에 의해 키워졌는데 다섯 명 모두의 의견이 다를 때도 있었다. 대부분의 장애인은 이런 현실 속에서 혹, 캐어복지사의 심기를 거스를까 걱정하면서 제공되는 캐어를 감지덕지 받는다.

그런데 오사나이 미치코 씨는 캐어복지사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얘기한다. '엉덩이를 좀 더 깨끗하게 닦아주세오'라면서. 그녀는 캐어복지사와 장애인이 서로 동등하게 도움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당히 자신이 원하는 도움을 요구할 수 있어야 장애인도 인간으로서 떳떳하게 대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이제 발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됐고 수예를 하면서 돈을 벌어 자립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한다. 결혼해서 애도 낳았고 '안비샤스'라는 자립생활훈련센터를 만들어 운영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엔 지난한 험로가 있었다.

<당신은 내 손이 되어줄 수 있나요?>는 그녀의 이런 주장과 인생역정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일본에서 이 책은 복지사들의 교과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캐어복지사들만 읽어야 할 책이 아니다. 장애인을 이웃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어느 책보다 장애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해주는 책이다.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이제 그 누구도 혼자 만의 힘으로는 살 수 없는 약자들의 세상이 다가온 것이다. 설령 지금은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다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그 자신이 노년이 되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사나이 미치코의 주장은 오늘의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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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 - 수의사 헤리엇이 만난 사람과 동물 이야기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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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헤리엇은 평생을 영국 요크셔 마을에서 수의사로 지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항생제가 발달하지 않아 동물의 치료는 대개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수행되었다. 암소한테 장난을 치다 탈골된 양치기 개, 팬티를 삼킨 산양 도로시, 어미에게 버림 받은 새끼양 허버트, 비스킷을 좋아하는 암퇘지 프루던스, 퓨마를 닮은 집고양이 보리스, 덫에 걸린 개 셰터 등은 헤리엇의 기억 속에 새겨진 동물 고객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대개는 제 이름이 있다. 사람들은 가축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친구처럼 불러주었다. 동물은 사람들의 힘든 노동을 대신해주는 의미 이상의 존재였다. '...나는 너를 따라 수천 킬로미터를 걸었고, 너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 하지만 너한테 그렇게 많은 말을 할 필요는 없었어. 너는 내 몸짓만 보고도 내 속마음을 다 알고 있었으니까..(p146)'

수의사 헤리엇에게 두려운 것은 말 못하는 동물들의 고통이다. '..가장 가슴아픈 것은 두려움과 당혹감에 가득 찬 눈,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이었다. 말 못하는 동물의 고통을 바라볼 때 가장 견딜 수없는 것이 바로 그 눈이다..(p187)'

이 책엔 동물들의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낙농업을 위해 '1년 365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젖 짜고 먹이 주고 쇠똥을 치우는(p119)' 농민들의 고달픈 이야기가 담담하게 펼쳐지고, '그 넓은 땅을 온종일 걸어다니다보면 두발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지던(p139)' 노동자의 힘든 노동도 담겨져 있다. 그러나 헤리엇에 비친 시골 농부의 모습은 '...깊이 새겨진 주름살, 비바람에 거칠어진 피부, 쾌활하고 평온하게 반짝이는 맑은 눈...(p157)'을 지닌 아름다운 존재다.

제임스 헤리엇은 50세가 된 1966년부터 그가 만난 동물과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글로 적기 시작했다. 그가 소중히 여긴 것은 과학 기술의 효율성이 아니라 사람들과 동물들 사이에 맺어진 아름다운 관계였다. . '..내가 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지만, 내가 젊은 시절에는 특히 이 일이 재미있었다. 항생제는 아예 없었고, 약도 거의 없었다. 암소가 아프면 목구멍으로 약을 흘려 넣느라 진땀을 빼곤 했다. 모두 우스운 일뿐이었다. 지금은 과학이 진보했지만, 옛날만큼 웃을 일은 거의 없다...(p360)”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에 헤리엇은 문득 충만한 은총을 느끼며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발 밑에서 뽀드득거리는 눈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교회종이 울려 퍼지고 살을 에는 듯한 공기가 콧구멍을 따갑게 찔렀다. 크리스마스의 경이와 신비가 거대한 물결처럼 밀려와 나를 감쌌다. 땅에는 평화, 인류에게는 자비를. 전에는 무의미했던 이 말이 의미를 갖게 되었다. 갑자기 내가 거대한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는 작은 조각이 된 기분이었다. 대러비, 농부들, 짐승들과 내가 처음으로 따뜻하고 편안한 하나의 존재처럼 느껴졌다...(p148)'

제임스 헤리엇 (James Herriot)은 1916년 영국 잉글랜드의 선더랜드에서 출생하여 수의과 대학을 졸업한 후부터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공군으로 복무한 것을 제외하곤 평생을 요크셔 푸른 초원에서 순박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다. 그의 얘기를 글로 적은 책은 모두 4부작으로 정리되어 나왔는데 첫번째 책은 1972년에 나온 이고 두 번 째 책은 , 세 번째 책은 , 그리고 마지막 책은 이다.

<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는 이 중 두 번 째 책을 번역한 것이고, 세 번 째 책은 이미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사람과 동물에 관한 헤리엇의 재미있고 감동어린 이야기는 26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30년 동안 전세계의 사랑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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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야생초 편지 2
황대권 지음 / 도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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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의 공원을 거닐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들어 주변의 나무들을 둘러본다. 플라타나스, 소나무, 은행, 자귀, 목련, 산수유....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숙여 발 밑의 이름 모를 풀들을 바라본다. 사람의 정다운 손길을 받지 못한 생명들이다. 스스로 자라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아 사람들이 잡초(雜草)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한 잡초학자는 가장 이상적인 잡초를 이렇게 정의했다고 한다. '...쓸데없이 크고, 생장속도가 빠르고, 못생겼고, 쓸모가 없고, 꿀이 없고, 야생적인 가치가 없고, 숫자가 많고, 쉽게 번식하고, 맛이 없고, 가시가 많고,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독성이 있고, 역겨운 냄새를 내고, 잎이 금방 무성해지고, 재배하기 까다롭고, 제초제에 내성이 강하고, 뿌리가 울퉁불퉁하다...' 이렇게 사람들은 저 스스로 가만히 있는 이름 모를 풀들에게 온갖 나쁜 말을 다 갖다 붙였다. 과연 잡초는 쓸모 없고 뽑아버려야 할 생명인가?

1985년 미국에서 유학하던 중 학원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98년 마흔 네 살이 될 때까지 13년 2개월 동안 감옥에서 청춘을 보냈던 황대권 씨는 한평의 작은 공간에서 잡초와 만난 얘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지구상에 지금까지 알려진 식물의 종류는 약 36만 여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 중 인간이 재배해서 먹고 있는 것은 약 3천 종 가량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35만에서 3천을 빼면 숫자가 어떻게 됩니까? 이것들을 전부 잡초라고 없애버리는 그런 우를 지금 인류가 범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째서 잡초입니까? 그래서 저는 잡초라는 말을 안 씁니다. 대신에 저는 야초(野草)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이 책의 제목-<야생초 편지>-에는 저자의 이런 깨달음이 담겨 있다. 저자는 수감생활에서 얻은 병(만성 기관지염)을 고치기 위해 야초들과 처음 만났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야초에 대한 인식은 점차 확장되었다. 도감을 통해서 이름을 익히기 시작했고 어렵게 씨를 구해 야생화들을 키웠다. 사회참관(장기수들을 교도소 담밖으로 데리고 나가 세상 구경을 시켜주는 것)이 있는 날이면 교도소 담 밖에서 자라는 들풀의 씨를 구해 키웠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교도소 담 안에는 황대권 씨가 정성껏 가꾸는 'Kwon Field'가 형성되기에 이르렀고 여기엔 백여 종의 야생초가 제 존재를 뽐내며 자라게 되었다.

저자에겐 야초는 쓸모없는 풀이 아니었다. 음식으로도 훌륭한 것들이었다. 명아주, 쇠비름, 쇠별꽃, 뽀리뱅이, 부추, 제비꽃, 조뱅이, 민들레, 씀바귀, 질경이, 방가지똥 등 온갖 풀을 뜯어모아 된장에 무쳐먹는 '들품모듬'과 '모듬풀 물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십전대보잼이란 것도 있다. 이것은 민들레 뿌리에 냉이, 도라지, 시금치 뿌리를 푹 고은 뒤 고구마, 호박, 마늘, 사과, 인삼가루 등을 함께 졸여서 만든 특별음식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즐거움은 저자가 야생초를 그린 그림들이다. 도감을 보고 그린 그림이 아니라 수감생활 중 운동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화단 곁에 쭈구리고 앉아 꼼꼼이 그린 그림들이다. 저자의 야생초 그림은 한때 미술대학 입학을 생각해보았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의 갖춘 저자의 작품이다. 게다가 거미와 사마귀, 청개구리의 관찰을 통해 깨달아진 저자의 통찰력 있는 사색도 이 책이 독자에게 주는 즐거움이다.

<야생초 편지>는 저자가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작은 엽서를 통해 세상에 전달한 옥중일기이며 구도의 기록이다. <야생초 편지>는 생태주의를 가르치는 21세기의 뜻깊은 옥중기이다. 이제 우리도 발 밑 풀들에 대한 명상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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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주의자의 꿈 - 어느 헌책수집가의 세상 건너는 법
조희봉 지음 / 함께읽는책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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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이 청계천에서 시작되던 때가 있었다. 칠, 팔십 년대만 해도 교과서 값이 만만치 않게 비싸던 때라 가난한 학생들은 새학기가 되면 학교에서 정해준 책 목록을 쪽지에 적어 청계천에 늘어선 헌책방을 순례해야했다. 그럴때면 청계천은 잠자던 모든 것이 깨어났다. 겨울 내내 묵어있던 헌책들은 봄볕을 쪼이며 노오란 종이색을 펼쳐보였고, 가득 쌓인 책더미 한가운데 자리를 지키던 책방 주인은 학생들이 부르던 책을 쪽집게처럼 집어서 건네주곤 했다. 헌책방은 이제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헌책방을 뒤지며 헌책의 역사를 탐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은밀한 즐거움을 담아 전하는 책이 있어서 느림을 찾는 사람들에게 묵은 된장 같은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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