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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 손이 되어줄 수 있나요? - 흡족한 캐어를 받기 위하여
오사나이 미치코 지음, 변은숙 옮김 / 깊은자유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오사나이 미치코 씨는 중년의 중증 뇌성마비장애인이다. 그녀는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 없고 용변처리도 할 수 없다. 그녀의 24시간은 누군가의 캐어(care)가 없이는 영위되지 않는다. 일어날 때도, 옷을 입을 때도, 약을 먹을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손톱을 깎고 목욕을 할 때도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뿐인가? 한밤 중에 갑자기 고독이 밀려올 때는 대화할 사람이 필요하고, 성을 나눌 배우자도 필요하다. 그녀는 '장애인'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애인을 기다리는 현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화장실에 가면 도우미와 커튼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변을 보기 위해 힘을 주어야 한다. 어느 시설에서는 기저귀를 갈아줄 때마다 '물 좀 먹지마'라며 엉덩이를 꼬집기도 한다. 그녀는 어릴 적에 의사와 훈련사, 간호사와 보모, 선생님들에 의해 키워졌는데 다섯 명 모두의 의견이 다를 때도 있었다. 대부분의 장애인은 이런 현실 속에서 혹, 캐어복지사의 심기를 거스를까 걱정하면서 제공되는 캐어를 감지덕지 받는다.
그런데 오사나이 미치코 씨는 캐어복지사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얘기한다. '엉덩이를 좀 더 깨끗하게 닦아주세오'라면서. 그녀는 캐어복지사와 장애인이 서로 동등하게 도움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당히 자신이 원하는 도움을 요구할 수 있어야 장애인도 인간으로서 떳떳하게 대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이제 발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됐고 수예를 하면서 돈을 벌어 자립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한다. 결혼해서 애도 낳았고 '안비샤스'라는 자립생활훈련센터를 만들어 운영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엔 지난한 험로가 있었다.
<당신은 내 손이 되어줄 수 있나요?>는 그녀의 이런 주장과 인생역정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일본에서 이 책은 복지사들의 교과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캐어복지사들만 읽어야 할 책이 아니다. 장애인을 이웃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어느 책보다 장애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해주는 책이다.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이제 그 누구도 혼자 만의 힘으로는 살 수 없는 약자들의 세상이 다가온 것이다. 설령 지금은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다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그 자신이 노년이 되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사나이 미치코의 주장은 오늘의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