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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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 가면 뒷골목으로만 다니고 싶고,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시골 사람 곁에 서있고 싶고 다른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으면 자신은 땅바닥에 앉아 있고 싶다던 종지기 동화작가 권정생의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책의 제목은 '우리들의 하느님'.

산골짜기를 가로질러 난 고속도로 때문에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동물 식구들을 걱정하고, 하룻밤 회의를 다녀와서는 집에 두고온 강아지 걱정에 잠 못 이루던 저자는 결국 새끼를 퍼뜨리기 위해 억지로 인공수정을 당하는 태기네 집 암소의 눈물을 지켜보면서 심한 좌절에 빠지고 만다.

'...종교는 하느님의 섭리를 따르려는 의지이지, 하느님의 섭리를 바꾸는 게 아니다....',

'...이땅의 천재들은 머리로 살아가지만 바보는 몸으로 산다. 앗시시의 프란치스코도 모로카이섬의 다미안도, 마더 데레사도 그랬다... ',

'...이 세상에서 정당한 부자는 없다. 결국 이웃돕기는 같은 가난한 사람들끼리 아껴쓰며 나누는 길 뿐이다...'

전신결핵을 앓고 있으면서 꺼져가는 삶을 붙들고 창작활동에 매달리는 저자의 글은 결코 모리로 짜낸 것이 아니다. '강아지 똥'처럼 자기의 몸을 녹여서 '민들레 꽃'을 피워내는 심정으로 뽑아올린 글들이다. 그래서 저자의 글에는 다른 글에서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울림이 있다. 권정생의 독자들은 그의 글이 슬프며 아름답다고 얘기한다. 그의 글에는 오늘날 이땅 농촌의 정서가 온전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슬픔은 우리 농촌의 슬픔이며 우리네 고향의 상처이다.

'정말 똥짐 지는 목회자는 없을까'라며 탄식하는 그의 보석(寶石)같고 보약(補藥)같은 글들을 이제는 한국교회가 비록 입에 쓰더라도 달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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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가능성이다
안병무 지음 / 사계절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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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 씨는 '1996년 가을은 무척 싫은 가을이다. 한국의 현인(賢人)인 안병무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라고 탄식한다. 이 한국의 현인이란 지난 10월 19일 지병인 심장병으로 소천한 민중신학의 태두 안병무 박사를 일컫는 말이다.

안병무 박사의 생각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산문집이 '너는 가능성이다' 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편집 도중 작가의 타계로 결국 저자 서문이 생략된 책 출간된 이 책은 그러나 안병무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여러 모로 의미 있게 다가올 것 같다. 그 이유는 첫째는 이 책이 결국 그의 유고집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 때문이고 둘째는 70년대 '현존(現存)'지를 통해 지성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던 저자의 발언이 상당량 수록되어 있다는 반가움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 '너는 가능성이다'는 특히 청년들과 늘 젊게 살려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충고를 담고 있고, 2부 '사람으로 살기 위해'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3부 '맺힌 것은 풀어야지'는 대화(對話)와 언로(言路)를 화두로 현 사회의 부조리를 다루고 있고, 마지막 4부 '안(內) 사람의 辯'에서는 저자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소소한 얘기들을 통해 자신의 심경을 펼쳐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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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걷는 길
이순원 지음 / 해냄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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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순원씨는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는 그의 아들과 대관령을 걸어서 넘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한 편의 동화처럼 아름다운 소설을 발표했다. 제목은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이 책에서 저자는 아들과 대화하며 자신의 가족사, 성장의 고통, 작가가 되기까지의 길, 그리고 아버지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이르기까지 가슴에 담아두었던 얘기를 담담하게 펼쳐보인다. 저자는 후일담에서 '아버지는 없고 아빠만 있는 시대'에서 '아버지의 얘기'를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다.

대관령을 아들과 넘으면서 저자는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조부), 그리고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 오랜 뿌리만큼보다 더 깊은 아들에 대한 부정(父情)을 드러내 보여준다.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저자 이순원은 그동안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에덴에 그를 보낸다', '수색, 그 물빛 무늬'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왔는데 특히 90년대 중반부터 조심스럽게 가족의 이야기를 펼쳐보이고 있어서 독자들의 시선을 모아왔다.

노을이 번져오는 대관령의 아름다운 풍경과 푸른 나무숲을 배경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체로 구성된 이 소설은 독자에게 아버지다운 아버지, 아름다운 아들의 모습을 다시한번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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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진 저 나무 푸르기도 하여라
유경 지음 / 서해문집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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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입구를 나설 때 잠시 동안이지만 잘 자란 한 그루의 라일락(수수꽃다리)은 아름다운 꽃과 진한 향기로 나를 즐겁게 해준다. 그러나 꽃도 지고 향도 사라졌지만 라일락은 이제 마알간 초록잎으로 하늘 볕을 가리며 녹음을 드리운다. 키 작은 풀과 작은 벌레들과 사람에게 그만큼의 휴식을 주려는 것이다.

{꽃 진 저 나무...}는 노년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다. 영화와 책에 나타난 다양한 노년의 모습을 저자의 목소리로 한번 걸러서 독자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이렇게 걸러지는 과정에서 잘 숙성되었다. 노년은 이러이러한 것이니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미리 이렇게 준비해야 한다고 윽박지르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노년에 대해서 그저 한번쯤 생각해보라고 힌트만 던져주는 것이다.

임신한 여성에겐 유난히 동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잘 들린다고 하지 않던가... 노년에 대해서도 나의 미래라고 생각한다면 그저 스쳐지나가던 주변의 노인들이 훨씬 더 구체적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우리의 노년은 그들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저 멀리 산에 있는 돌 하나에서도 가르침을 발견하지 않던가...

우리 출판계엔 그동안 노년에 대한 가르침만 있었지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할 담론은 빈약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탁월하다. 이 책이 우리 사회에 노년에 대한 담론을 풍요롭게 할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노년에 대한 담론이 풍성해진다며 우리의 중년과 청년의 삶도 훨씬 풍요로워지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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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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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진실이라고 금과옥조처럼 믿어오던 상식들이 어느날 갑자기 배신당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박정희 대통령은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낸 민족의 구세주가 아니라 사실은 혹독한 독재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엄청난 배신감을 우리는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뿐인가 야인시대의 영웅 김두한은 한국의 남성상을 대표하는 협객이라는 드라마의 서술은 정당한 것인지...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사령관은 과연 우리 민족의 은인인지...

아니 더 뭉뚱거려서 말하면 한국사회는 제대로 진보하고 있는 것인지... 젊은 역사학자 한홍구(성공회대)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상식에 질문을 던진다. 그의 질문 때문에 독자는 상식이 무너지는 황당함과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당할 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알 것은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게 우리 민족이 살아온 역사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진정한 앎에서 싹트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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