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 문성현 - 창비소설집
윤영수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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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의 기성세대가 어린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의 하나는 '커서 착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이다. 그러나 착한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은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세상을 알아갈수록 점차 희미해진다. 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느새 세상을 사는데 적지 않은 애로를 동반하게 된다는 뜻으로 등치되고 유년시절의 동화처럼 아득한 먼 옛날의 얘기로 퇴색돼버린다. 오늘날 착한 사람의 꿈은 이렇게 상실되고 말았다.

그런데 반갑게도 요즘 착한 사람의 얘기가 문학 속에서 다시 살아오고 있다. 공지영의 장편소설 '착한 여자', 윤영수의 중편소설 '착한 사람 문성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들의 저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것도 단순한 우연의 일치는 아닌 듯하다. 이 지면에는 사정상 '착한 사람 문성현'에 대한 얘기만을 하려한다.

이 작품은 50년대 후반 서울의 한 양반가에 태어난 문성현이란 뇌성마비 장애인의 짧은 인생을 소재로 전개된다. 주인공의 일생은 뇌성마비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가시밭길의 연속이다. 그러나 작가는 주인공의 숨가뿐 생애에 무작정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한발자국 떨어져서 상황에 반응하는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침착하게 관찰하고 있다. 이런 시선은 상투적인 비관에서도 넉넉히 벗어나있다.

장애인 아들을 무한정의 사랑으로 보살피는 어머니, 동생과 제수의 살뜰한 보살핌, 주변의 수군거림을 일갈하며 주인공을 두둔하는 양품점 과수댁, 문성현을 보살피는 성당의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마침내는 주위의 사람들까지 사랑으로 품어앉는 주인공.... 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상처 가운데서도 여전히 우리 사회를 긍정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음을 알려준다.

결국 작가가 포착한 '착한 사람 문성현'의 얘기는 우리 시대가 내포(內包)한 결핍의 또다른 모습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먼지 속을 헤치고 다시 살아오는 이 '착한 사람들'의 얘기에 우리는 유난한 관심으로 귀기울여야 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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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죽음에 관한 사색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켈스 엮음 / 실천문학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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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생애 두번의 자살을 시도했으나 85세까지 장수(長壽)하였다. '아름다운 죽음에 관한 사색'(原題 Mit der Reife wird man immer junger)은 헤르만 헤세가 40대 중반부터 써왔던 시와 단상(斷想)을 모아놓은 글모음집이다. 이 글들은 애초에 한 권의 책으로 엮을 것을 예정하고 쓴 것은 아니지만 노년에 대한 헤세의 풍부한 성찰(省察)이 일관되게 잘 드러나고 있다.

'가을경험'이란 소제목으로 나온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헤세가 75세 되던 해 어느날, 그와 동갑내기 친구인 오토가 오랜만에 헤세를 찾아온다. 오토는 젊은 시절부터 그랬듯이 여전히 정력적이었고 반면에 헤세는 쓰러질 듯이 연약했다. 두 노인은 세월의 먼지를 걷어내고 유년시절로 되돌아가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달콤한 시간이 흐르고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겠지' 하는 마음 속의 말을 접어놓은 채 두 노인은 작별의 인사를 나눈다.

새날이 밝자 헤세는 마을 포도밭을 산책하며 지난 밤 친구와의 만남을 음미한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 헤세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간 오토는 곧바로 숨을 거둔다. 헤세는 뒤늦게 오토의 부고(訃告)를 듣고 이렇게 얘기한다. '...영면하기 전에 잠시나마 나와 함께 식탁에 앉아 고향의 안부를 전해주고 내게 여러가지 물건들을 전해주며 삶의 얘기를 나눴던 마지막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것, 그리고 다시 한번 우정과 친밀감을 전해주고 평안함을 주며 따뜻한 마음과 유쾌한 기분을 선사해주었던 것은 그야말로 크나큰 은총이었다.' '

노년은 이렇게 늘 죽음의 문고리를 잡고 서있지만 성숙한 인격에게 노년은 두려움으로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헤세는 노년을 성숙함으로 맞이하라고 충고한다. 성숙함을 통해 인생은 늘 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인이 젊어보이려고만 하면 노년은 한낱 하찮은 것이 되고 만다...'

'...우리는 모두 행복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다. 어쨋든 그것이 우리가 쏟은 노력의 목표는 아니었다...'

삶이 시간이 흐를수록 소멸되는 촛불 같은 것이라면 노년은 무(無)를 앞둔 두려움의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나이테처럼 쌓이고 축적(蓄積)되는 것이라면 인생의 황금기는 당연히 노년의 세월일 것이다. 그러나 노년에 대한 우리의 사색은 얼마나 빈곤한가? 이 빈곤함을 잠시나마 헤세의 풍부한 잠언으로 메꾸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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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개정증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태언 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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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

요즘 우리 사회에는 미래에 대한 각종 전망이 횡행하고 있다. 왜 유독 '미래'라는 주제가 우리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을까? 인간이 드디어 미래를 차분하게 준비할만큼 성숙했단 말인가, 아니면 현재에 대한 극심한 불안이 현대인을 좌불안석(坐不安席)하게 만든 것인가... 그런데 미래라는 타이틀을 가진, 그러나 미래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는 불화(不和)하는 책 한 권이 있다. 책 제목은 '오래된 미래'.

오래된 미래라니... 오래 전에 존재했던 미래가 있을까? 과거와 미래라는 두개의 서로 다른 시간을 하나로 묶은 책의 제목은 우리의 상식적인 시간관을 비웃는 듯하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의 상식을 비웃으려는 게 아니다.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直線을 그으며 앞으로만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圓形으로 돌아 또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올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라다크(Ladakh)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라다크는 서부 히말라야 고원에 위치한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다. 그리고 적어도 저자인 노르베리-호지가 도착했을 때까지는 이른바 '서구화(西歐化)'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고유한 전통을 지켜왔다.

라다크 마을의 삶의 방식은 철저히 자급자족이다. 부족한 물건은 물물교환으로 충당해서 쓴다. 물자가 부족한 고원지대라 사람들에게는 검약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 모든 물자는 철저히 재활용하기 때문에 쓰레기로 버리는 것은 거의 없다. 이들에게 검약정신이란 소비의 인색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 더 많이 얻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고산지대의 기후 탓으로 실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1년에 고작 4개월 뿐, 나머지 8개월은 음식을 만들거나 짐승들을 먹이는데 보낸다.

그러나 이때 해야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나마 바쁜 추수철에도 모든 일이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여든 살의 노인이나 어린 아이도 자기 속도로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자신과 관련된 대부분의 일은 국가나 다른 기관의 간섭 없이 자기 스스로 결정한다. 범죄는 물론 없고 마을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라다크에서 사람들이 목청을 돋구어 싸우는 것을 보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혹심한 추위 때문에 영아의 사망률이 높지만 스트레스를 경험하지 않기 때문에 육신의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산다. 이런 덕에 사람들의 얼굴에 감도는 환한 미소를 보는 것은 라다크에서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다.

개발(Development)

그러나 라다크 마을에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한다. 1974년 인도 정부가 라다크 마을을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대대적인 개발 정책을 편 것이다. 라다크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고 근대식 병원이 세워지며 할리우드의 문법으로 제작된 영화가 사람들의 정신을 사로잡게 되었다. 필요한 물건은 화폐가 있어야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라다크의 전통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돈을 벌기 위해 라다크를 떠났다. 사람들은 돈 때문에 이웃을 속이게 되었고 공동체는 분열되기 시작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라다크는 자신의 독특한 모습을 잃고 서구의 규격화된 문명 속으로 편입된 것이다. 개발은 과연 선(善)인가? 아니 이런 이분법적인 질문은 너무 거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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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양심 양심의 역사 - 스파르타쿠스에서 알버츠까지
채수일 지음 / 다산글방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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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맑은 물 속에 담가놓으면 가장 밑바닥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연코 양심일 것이다. 양심은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부단히 소리쳐 인간을 깨우고 역사의 정의를 지켜왔다. 양심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엄청난 굴절을 경험했을 것이다.

저자는 역사의 양심을 지켜온 인물 열 두명을 골라 양심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노예들의 반란을 주도한 스파르타쿠스, 우매한 대중들에 의해 주도되는 속물적 민주주의와 죽음으로 맞서싸운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양심, 과학적 진리에 눈을 감은 어리석은 교권 아래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린 갈릴레오 갈릴레이, 영국 성공회의 탄생에 침묵으로 저항한 토마스 모어, 스페인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핍박받는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을 위해 삶을 바친 라스 카자스 신부, 마녀사냥이 절정을 이루던 중세 암흑의 시대에 붓으로 의로운 싸움을 벌인 후리드리히 폰 슈페, 무고한 형을 받게 된 드레퓌스 대위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망명을 감행하면서까지 프랑스 정부와 맞선 에밀 졸라, 나치 정부에 저항하다가 꽃다운 나이에 사형을 당한 백장미 소피 숄, 독일 고백교회를 세운 니묄러 목사, 나치 정권의 죄악을 화개하기 위해 폴란드 땅에서 무릎을 꾼 브란트 수상, 이상을 향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다 벽에 부딪혀 좌절한 독일 녹색당의 페트라 켈리, 기독교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정치가가 된 하인리히 알버츠 목사...

양심의 대로(大路)를 개척하기 위해 개인의 가시밭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양심가들의 외침은 현실의 역사에 좌절한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외침으로 다가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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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 - 입시문화의 정치 경제학
조한혜정 지음 / 또하나의문화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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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우리 교육현장에선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들이 21세기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반해 교육현실은 낡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학생들은 이제 더 이상 학교의 낡은 질서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제 갈 길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학교와 사회는 학교를 떠나 방황하는 학생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유연하지 못한 우리의 교육 현실은 학생은 물론이고 사회와도 불화 중이다.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와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는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

방송과 신문을 장식하는 요란스러운 교육개혁의 수사와 해마다 바뀌는 입시제도... 그러나 교육의 중심은 허술해지고 주체인 학생은 주변인으로 밀려나는 공허한 교육현장. 21세기를 눈앞에 둔 오늘, 우리 교육현실은 이렇게 여전히 빈곤하고 그래서 불안하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조혜정 교수는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라는 책을 통해 학교와 학생과 사회의 화해를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그동안 '또 하나의 문화'의 교육 소모임 활동 등을 통해 실천적 대안모색을 해온 조혜정 교수는 이 책에서 실험교육 현장, 학업 중퇴자, 청소년 문화, 성역할 교육과 남녀 공학, 영화 등 다양한 텍스트를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우리교육을 비판하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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