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죽음에 관한 사색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켈스 엮음 / 실천문학사 / 1996년 11월
평점 :
절판


헤르만 헤세는 생애 두번의 자살을 시도했으나 85세까지 장수(長壽)하였다. '아름다운 죽음에 관한 사색'(原題 Mit der Reife wird man immer junger)은 헤르만 헤세가 40대 중반부터 써왔던 시와 단상(斷想)을 모아놓은 글모음집이다. 이 글들은 애초에 한 권의 책으로 엮을 것을 예정하고 쓴 것은 아니지만 노년에 대한 헤세의 풍부한 성찰(省察)이 일관되게 잘 드러나고 있다.

'가을경험'이란 소제목으로 나온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헤세가 75세 되던 해 어느날, 그와 동갑내기 친구인 오토가 오랜만에 헤세를 찾아온다. 오토는 젊은 시절부터 그랬듯이 여전히 정력적이었고 반면에 헤세는 쓰러질 듯이 연약했다. 두 노인은 세월의 먼지를 걷어내고 유년시절로 되돌아가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달콤한 시간이 흐르고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겠지' 하는 마음 속의 말을 접어놓은 채 두 노인은 작별의 인사를 나눈다.

새날이 밝자 헤세는 마을 포도밭을 산책하며 지난 밤 친구와의 만남을 음미한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 헤세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간 오토는 곧바로 숨을 거둔다. 헤세는 뒤늦게 오토의 부고(訃告)를 듣고 이렇게 얘기한다. '...영면하기 전에 잠시나마 나와 함께 식탁에 앉아 고향의 안부를 전해주고 내게 여러가지 물건들을 전해주며 삶의 얘기를 나눴던 마지막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것, 그리고 다시 한번 우정과 친밀감을 전해주고 평안함을 주며 따뜻한 마음과 유쾌한 기분을 선사해주었던 것은 그야말로 크나큰 은총이었다.' '

노년은 이렇게 늘 죽음의 문고리를 잡고 서있지만 성숙한 인격에게 노년은 두려움으로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헤세는 노년을 성숙함으로 맞이하라고 충고한다. 성숙함을 통해 인생은 늘 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인이 젊어보이려고만 하면 노년은 한낱 하찮은 것이 되고 만다...'

'...우리는 모두 행복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다. 어쨋든 그것이 우리가 쏟은 노력의 목표는 아니었다...'

삶이 시간이 흐를수록 소멸되는 촛불 같은 것이라면 노년은 무(無)를 앞둔 두려움의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나이테처럼 쌓이고 축적(蓄積)되는 것이라면 인생의 황금기는 당연히 노년의 세월일 것이다. 그러나 노년에 대한 우리의 사색은 얼마나 빈곤한가? 이 빈곤함을 잠시나마 헤세의 풍부한 잠언으로 메꾸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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