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개정증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태언 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

요즘 우리 사회에는 미래에 대한 각종 전망이 횡행하고 있다. 왜 유독 '미래'라는 주제가 우리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을까? 인간이 드디어 미래를 차분하게 준비할만큼 성숙했단 말인가, 아니면 현재에 대한 극심한 불안이 현대인을 좌불안석(坐不安席)하게 만든 것인가... 그런데 미래라는 타이틀을 가진, 그러나 미래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는 불화(不和)하는 책 한 권이 있다. 책 제목은 '오래된 미래'.

오래된 미래라니... 오래 전에 존재했던 미래가 있을까? 과거와 미래라는 두개의 서로 다른 시간을 하나로 묶은 책의 제목은 우리의 상식적인 시간관을 비웃는 듯하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의 상식을 비웃으려는 게 아니다.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直線을 그으며 앞으로만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圓形으로 돌아 또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올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라다크(Ladakh)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라다크는 서부 히말라야 고원에 위치한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다. 그리고 적어도 저자인 노르베리-호지가 도착했을 때까지는 이른바 '서구화(西歐化)'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고유한 전통을 지켜왔다.

라다크 마을의 삶의 방식은 철저히 자급자족이다. 부족한 물건은 물물교환으로 충당해서 쓴다. 물자가 부족한 고원지대라 사람들에게는 검약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 모든 물자는 철저히 재활용하기 때문에 쓰레기로 버리는 것은 거의 없다. 이들에게 검약정신이란 소비의 인색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 더 많이 얻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고산지대의 기후 탓으로 실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1년에 고작 4개월 뿐, 나머지 8개월은 음식을 만들거나 짐승들을 먹이는데 보낸다.

그러나 이때 해야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나마 바쁜 추수철에도 모든 일이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여든 살의 노인이나 어린 아이도 자기 속도로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자신과 관련된 대부분의 일은 국가나 다른 기관의 간섭 없이 자기 스스로 결정한다. 범죄는 물론 없고 마을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라다크에서 사람들이 목청을 돋구어 싸우는 것을 보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혹심한 추위 때문에 영아의 사망률이 높지만 스트레스를 경험하지 않기 때문에 육신의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산다. 이런 덕에 사람들의 얼굴에 감도는 환한 미소를 보는 것은 라다크에서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다.

개발(Development)

그러나 라다크 마을에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한다. 1974년 인도 정부가 라다크 마을을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대대적인 개발 정책을 편 것이다. 라다크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고 근대식 병원이 세워지며 할리우드의 문법으로 제작된 영화가 사람들의 정신을 사로잡게 되었다. 필요한 물건은 화폐가 있어야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라다크의 전통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돈을 벌기 위해 라다크를 떠났다. 사람들은 돈 때문에 이웃을 속이게 되었고 공동체는 분열되기 시작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라다크는 자신의 독특한 모습을 잃고 서구의 규격화된 문명 속으로 편입된 것이다. 개발은 과연 선(善)인가? 아니 이런 이분법적인 질문은 너무 거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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