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끌어라 못하겠으면 떠나라!
롭 넬슨 외 / 길벗 / 1995년 6월
평점 :
절판


'Lead...or leave!(이끌어라... 못하겠으면 떠나라)'

이것은 미국 50개주 전역에 100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 최대의 청년 정치단체의 이름이다. 이 단체는 1960년 이후에 태어난 16세 이상의 '이른바 X세대'에게만 가입자격이 주어지며 PC통신망을 통해서 조직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단체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이들은 1992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투표에 냉소적이었던 당시 4천만 명의 청년 유권자들을 향해 '냉소를 그만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우리 미래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자'고 호소해 미국 청년층의 광범한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고 이를 통해 '학생은 투표하지 않는다'던 정치권의 통념을 붕괴시켰다.

미국 X세대의 눈에 비친 미국의 미래는 암담하고 불확실하다. 막대한 부채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세금, 부랑아들과 AIDS 문제,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이란 콘트라 등 뿌리깊은 정치와 정부의 부패,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 이렇게 미국의 전성기는 저물었다. 그리고 미국의 x세대들을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기성세대가 향락하다가 남긴 쓰레기 더미같은 현실 뿐. 기성세대는 더이상 미국의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 나서려 하지 않는다.

'Lead or leave'는 기성세대들을 향해서 미국의 미래(X세대의 미래)를 파멸시키는 각종 정책을 수정하라고 외치는 동시에 무기력하고 목적의식 없는 세대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동세대들을 향해서는 냉소의 벽을 깨고 미국의 미래를 위해 진지한 고민에 동참하자고 독려한다. 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하여 어느 곳에서건 토론하자고 제안한다. 또 불행한 사람을 위해서는 기꺼이 도와주고 필요하다면 모임을 만들라고 충고한다. 일간지에는 편지를, 토크쇼에는 전화를 하고 집회가 있다면 시간을 내 참석하며 선거 때는 당신의 한표에 담긴 소중한 의미를 되새길 것을 요청한다. 이 책은 미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청년세대들의 이런 주장과 모색이 잘 담겨있다.

이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자. 곤두박질하는 경제, 사회곳곳에 만연한 부정과 부조리, 정책대결은 사라지고 저질의 폭로전이 난무하는 대통령 선거... 이것이 새로운 천 년을 눈 앞에 둔 한반도의 자화상이다. 이 힘겨운 현실 앞에서 우리의 x세대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도 미래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X세대들의 외침을 듣고 싶지 않은가. Lead... or leave!(기성세대들이여 오늘의 현실에 책임을 져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나설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지음 / 해냄 / 199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부터인가 희망(希望)이란 말이 우리 시대의 중심단어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이는 노동에 대한 가치가 정당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정치, 경제, 교육, 언론에서 종교에 이르기까지 사회 구석구석에 총체적인 부조리의 만연으로 공동체 구성원이 집단적 절망에 사로잡혔다는 반증일 것이다. 개인에게 절망은 우울증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시인 최영미의 표현처럼 '시대의 우울'을 앓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희망찾기에 나선 이가 있다. 그는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을 결성해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구속돼 1991년부터 무기징역혁을 선고받고 7년째 수감 중인 노동자 시인' 박노해다. 그가 1.5평의 좁은 감방 안에서 끌어올린 희망의 언어는 무엇인가. '사람만이 희망이다'에 실린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당신이 무감동하게 듣는 새소리를 듣고 '저게 새소리라는 건가요. 참 듣기 좋으네요. 저는 오늘 새소리를 처음 들어요'라고 감동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40세가 되도록 가난한 집 골방에 누워있다가 장애인 물놀이에 나온 분이었어요...' ('감동을 위하여' 중에서)

'우리 시대에 가장 암울한 말이 있다면 남 하는 대로, 나 하나쯤이야, 세상이 그런데, 그러나 우리 시대에 남은 희망의 말이 있다면 나 하나만이라도, 내가 있음으로, 내가 먼저'('꽃 피는 말' 중에서)

'9시 뉴스를 진행하는 장애우 앵커를 보고 싶어요. 노동하는 삶의 철학을 강의하는 노동자 교수님을 보고 싶어요... 서울역에서 상경하는 농사꾼에게 정중히 경례하는 경찰들이 보고 싶어요.....'('내가 보고 싶은 것들' 중에서)

시인은 '내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세상과 인간에 대한 또다른 사랑의 방식을 깨달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우리 시대의 희망찾기는 이렇게 새로운 감성을 요구한다. 이제 희망은 보려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끝까지 찾고 애쓰는 사람에게만 제모습의 끝자락을 살며시 내비칠 뿐이다.

그러나 감옥 안에 갖힌 시인의 실존은 고통스럽다. 그래서 그의 희망찾기는 더 간절한 것인지 모른다.

'...좌정한 다리를 풀고 산책길을 나섭니다. 눈을 감고 천천히 걸었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반이면 이마에 섬뜩한 철문 뒤로 돌아 한 걸음, 두걸음 반이면 코 앞에 쇠창살, 다시 한걸음, 두걸음 반 돌아서다 문득 터져나온 참을 수 없는 내안의 부르짖음. 아 나는 걷고 싶다. 끝도 없이 걷고 싶다. 걷다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쓰러져 영영 잠들지라도 아 나는 미친 듯 걷고 싶다!'('나는 미친 듯 걷고 싶다'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동차 문명의 이기인가 파괴자인가 따님 환경신서 10
스기타 사토시 지음 / 따님 / 1996년 9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의 차량 대수는 1천만 대를 넘어섰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신동우 화백이 소득 1천 불, 수출 백억 불 시대의 상징을 사람들이 저마다 갖게될 마이카로 그렸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이제 그 꿈이 이루어져 우리나라 삼천리 방방곡곡은 자동차의 엔진소리로 가득하다. 그러나 거리는 주객이 전도(顚倒)되어 자동차가 주인 노릇을 하게 되었고 사람은 자동차를 피해다녀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환경도서 전문출판사인 도서출판 따님은 일본 오비히로 대학교 스기타 사토시 교수의 저서 '자동차, 문명의 이기인가 파괴자인가(원제 : 인간에 있어 자동차란 무엇인가)'를 번역 출간하였다. 이 책의 저자인 사토시 교수는 인간에게 두가지 속성이 있다고 전제한다. 하나는 자기의 이익을 만족시키며 살려는 경향이고 또 하나는 타인의 이익을 배려하려는 자세인데 자동차는 그 속성상 전자의 경향을 만족시키는 쪽으로 일방적인 작용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해마다 자동차로 인해 발생되는 엄청난 수의 인명사고, 대기를 오염시키는 배기가스, 수면방해와 정서불안을 야기시키는 차량소음, 노인과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의 이동권 박탈 등을 들고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한 대안도 제시한다. 우선 자동차의 속도를 늦추고, 차가 다닐 수 있는 곳을 제한해서 사람들이 안심하고 보행할 수 있는 도로를 확보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또 운전자의 자격을 제한해서 부주의한 운전으로 인한 인명사고의 위험을 줄이고 자동차의 구조를 개선해서 각종 오염 등 공해요인을 감소시켜야 한다고 얘기한다. 저자의 이런 주장은 이제는 사람들이 불편함과 친해져야 한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더위와 추위를 무릅쓰고 걸어다니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이런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자동차도 문명의 이기(利器)로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문명의 발전을 통하여 삶의 편리를 얻게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번 획득한 편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암암리에 형성된 것이 '편리한 것은 선(善)이고 불편한 것은 악(惡)'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문명사회의 건강함을 해치는 치명적인 독(毒)이다. 이제 현대를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불편함과 친해지려는 용기가 요구된다. '더디 가도 제대로 가는 법'에 대한 깊은 묵상이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낙골연가
김흥겸 / 바다출판사 / 1997년 6월
평점 :
품절


김흥겸은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대학 3학년 때인 1983년부터 파주 백석교회, 신림동 낙골교회 등의 교회를 섬긴 전도사다. 김 전도사는 1987년부터 사당동, 돈암동, 신대방동 등 철거지역에서 도시 빈민 활동을 벌이며 본격적으로 '운동권'에 뛰어들었다. 영등포에서 수레를 끌고 노점상을 차렸고 철거 반대 투쟁을 하다가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또 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하는가 하면 작곡능력을 살려 음반 만드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 없이 바쁘던 그에게 치명적인 선고가 떨어졌다. 95년 위암 말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는 이후 2년 간 투병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1월 21일 죽음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36년 간의 짧은 이생을 마감하였다. '낙골연가'는 이렇게 짧은 생을 살다간 한 젊은 전도사가 자신에게 허락된 생의 마지막 시간 동안 써내려간 글 모음집이다. 표지에는 암과 투병 중인 저자의 삭발한 머리와 유난히 커보이는 안경, 그리고 헬쑥한 김전도사의 단색 얼굴 사진이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 전도사 생의 중심 주제는 '이 시대의 예수는 누구인가?'와 '이 시대의 참된 그리스도인은 누구를 따라 무엇을 따라 살다 죽어야 할까?'였다. 그래서 대학 후배인 소설가 김인숙이 기억하는 대로 '벌거벗은 몸으로 십자가를 등에 지고 교정을 행진하던 예수님'이 되어보기도 하고 또 예수의 제자들처럼 우리 시대의 갈릴리인 사당동, 돈암동 등의 달동네를 우직하게 지켜왔다.

그러나 그는 자주 흔들리고 회의에 빠져든다. 이런 탓인지 그의 글을 읽는 것도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다. 죽음 앞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요동의 폭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필자는 김 전도사의 이런 흔들림 속에서 아름다운 진실을 발견한다. 술 마시는 전도사, 옥중에서 만난 박노해 시인을 향해 이 시대의 예수라고 고백하는 그를 향해 곧바로 비판의 칼을 들이대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그는 흔들림을 통해 오히려 견고한 것들에게 발언한다. 그 견고함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 시대의 견고한 것들은 진실의 불변성 때문인가... 아니면 편견과 아집의 견고함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게으름의 찬양 분도소책 35
러끌레르끄 지음, 장익 옮김 / 분도출판사 / 1986년 1월
평점 :
절판


밀란 쿤데라는 소설 '느림'에서 이렇게 탄식한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버렸는가?...'

그렇다. 이제 음풍농월(吟風弄月)하던 시대는 우리를 떠나갔다. 통신과 교통수단의 획기적인 발달은 20세기 말의 현대인을 광기 어린 속도세계 속에 떨어뜨렸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식산업, 지구촌을 네티즌으로 묶는 컴퓨터 통신망의 빠른 확장, 도시화로 인한 과밀경쟁사회... 현대인은 이 엄청난 속도사회에서 심한 피로를 느낀다. 이제 우리는 과학기술이 창출한 이 놀랄만한 속도사회가 인류에게 축복인가 아니면 재앙인가를 진지하게 따져볼 때가 왔다.

벨기에의 철학자이며 사회학자요, 또 법학자이며 신학자인 쟈끄 러끌레르끄는 '게으름의 찬양'이라는 아주 짧은 책에서 현대의 속도사회를 향하여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우리 시대는 치열한 생활을 자랑하고 있는데, 치열한 생활이란 실상 소동의 생활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의 상징 또한 경쟁이고 보면, 뛰어났다고 과시하는 온갖 발명 역시 슬기의 발명이라기보다는 모두 속도의 발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이 제대로 인간적이라면 거기에는 느림이 있어야 합니다. .. 일이나 힘씀은 역시 쉼에서 비롯되고 쉼에서 그쳐야 하는 법이고, 위대한 업적이나 크나큰 기쁨은 뛰면서는 이루어질 수도 음미되는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러끌레르끄는 계속 이야기한다.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보다는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이 여러 곳을 다녔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 되어버린 여행, 안내인의 소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정해진 작품을 보고 공식처럼 따라다니는 설명만 듣고오면 그것이 곧 감상이 되고 마는 현대인의 미술관 관람.... 그러나 글을 쓸 때도 뭔가 생각할 만한 내용을 써내려갈 때는 자판을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겨야 한다. 이것이 인간다운 속도이다.

이제 여름휴가철이다. 우리는 또 어디서 무엇을 하며 이 휴가를 보낼 것인가. 또다시 차로 열 몇시간을 달려서 바글바글한 사람들 속에 뒤섞여 약간의 쾌락에 몸을 맡기려는가... 아서라! 이번 여름휴가 만은 느릿느릿 몸을 움직이며 음풍농월로 지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