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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지음 / 해냄 / 199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부터인가 희망(希望)이란 말이 우리 시대의 중심단어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이는 노동에 대한 가치가 정당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정치, 경제, 교육, 언론에서 종교에 이르기까지 사회 구석구석에 총체적인 부조리의 만연으로 공동체 구성원이 집단적 절망에 사로잡혔다는 반증일 것이다. 개인에게 절망은 우울증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시인 최영미의 표현처럼 '시대의 우울'을 앓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희망찾기에 나선 이가 있다. 그는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을 결성해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구속돼 1991년부터 무기징역혁을 선고받고 7년째 수감 중인 노동자 시인' 박노해다. 그가 1.5평의 좁은 감방 안에서 끌어올린 희망의 언어는 무엇인가. '사람만이 희망이다'에 실린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당신이 무감동하게 듣는 새소리를 듣고 '저게 새소리라는 건가요. 참 듣기 좋으네요. 저는 오늘 새소리를 처음 들어요'라고 감동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40세가 되도록 가난한 집 골방에 누워있다가 장애인 물놀이에 나온 분이었어요...' ('감동을 위하여' 중에서)
'우리 시대에 가장 암울한 말이 있다면 남 하는 대로, 나 하나쯤이야, 세상이 그런데, 그러나 우리 시대에 남은 희망의 말이 있다면 나 하나만이라도, 내가 있음으로, 내가 먼저'('꽃 피는 말' 중에서)
'9시 뉴스를 진행하는 장애우 앵커를 보고 싶어요. 노동하는 삶의 철학을 강의하는 노동자 교수님을 보고 싶어요... 서울역에서 상경하는 농사꾼에게 정중히 경례하는 경찰들이 보고 싶어요.....'('내가 보고 싶은 것들' 중에서)
시인은 '내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세상과 인간에 대한 또다른 사랑의 방식을 깨달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우리 시대의 희망찾기는 이렇게 새로운 감성을 요구한다. 이제 희망은 보려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끝까지 찾고 애쓰는 사람에게만 제모습의 끝자락을 살며시 내비칠 뿐이다.
그러나 감옥 안에 갖힌 시인의 실존은 고통스럽다. 그래서 그의 희망찾기는 더 간절한 것인지 모른다.
'...좌정한 다리를 풀고 산책길을 나섭니다. 눈을 감고 천천히 걸었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반이면 이마에 섬뜩한 철문 뒤로 돌아 한 걸음, 두걸음 반이면 코 앞에 쇠창살, 다시 한걸음, 두걸음 반 돌아서다 문득 터져나온 참을 수 없는 내안의 부르짖음. 아 나는 걷고 싶다. 끝도 없이 걷고 싶다. 걷다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쓰러져 영영 잠들지라도 아 나는 미친 듯 걷고 싶다!'('나는 미친 듯 걷고 싶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