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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골연가
김흥겸 / 바다출판사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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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흥겸은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대학 3학년 때인 1983년부터 파주 백석교회, 신림동 낙골교회 등의 교회를 섬긴 전도사다. 김 전도사는 1987년부터 사당동, 돈암동, 신대방동 등 철거지역에서 도시 빈민 활동을 벌이며 본격적으로 '운동권'에 뛰어들었다. 영등포에서 수레를 끌고 노점상을 차렸고 철거 반대 투쟁을 하다가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또 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하는가 하면 작곡능력을 살려 음반 만드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 없이 바쁘던 그에게 치명적인 선고가 떨어졌다. 95년 위암 말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는 이후 2년 간 투병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1월 21일 죽음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36년 간의 짧은 이생을 마감하였다. '낙골연가'는 이렇게 짧은 생을 살다간 한 젊은 전도사가 자신에게 허락된 생의 마지막 시간 동안 써내려간 글 모음집이다. 표지에는 암과 투병 중인 저자의 삭발한 머리와 유난히 커보이는 안경, 그리고 헬쑥한 김전도사의 단색 얼굴 사진이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 전도사 생의 중심 주제는 '이 시대의 예수는 누구인가?'와 '이 시대의 참된 그리스도인은 누구를 따라 무엇을 따라 살다 죽어야 할까?'였다. 그래서 대학 후배인 소설가 김인숙이 기억하는 대로 '벌거벗은 몸으로 십자가를 등에 지고 교정을 행진하던 예수님'이 되어보기도 하고 또 예수의 제자들처럼 우리 시대의 갈릴리인 사당동, 돈암동 등의 달동네를 우직하게 지켜왔다.
그러나 그는 자주 흔들리고 회의에 빠져든다. 이런 탓인지 그의 글을 읽는 것도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다. 죽음 앞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요동의 폭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필자는 김 전도사의 이런 흔들림 속에서 아름다운 진실을 발견한다. 술 마시는 전도사, 옥중에서 만난 박노해 시인을 향해 이 시대의 예수라고 고백하는 그를 향해 곧바로 비판의 칼을 들이대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그는 흔들림을 통해 오히려 견고한 것들에게 발언한다. 그 견고함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 시대의 견고한 것들은 진실의 불변성 때문인가... 아니면 편견과 아집의 견고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