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시모쓰키 아오이 지음, 김은모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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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전설이자 거장인 애거사 크리스티를 현대적 관점에서 돌아본 흥미로운 책입니다. 작품마다 남긴 한줄평과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3-4페이지로 녹여낸 것이 꽤 설득력도 있고 재미있네요. 다 읽고 본격적으로 서평을 남겨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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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8 1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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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9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8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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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무덥고 습한 올해 여름이다. 잠시나마 더위를 잊고자 집 앞 카페에서 김애란 작가의 신작을 펼쳐보았다. 책 표지를 보면서 화사함과 함께 시원한 청량감을 느낄수 있었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이 소설집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소설은 '입동'이다. 바깥은 찬란한 여름인데 소설 속 주인공들은 왜 가슴으로 겨울을 겪어내고 있는 것일까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상실의 경험을 겪거나 현실에서 결핍을 느끼고 있다. 소중한 아이를 잃은 '입동'의 부부가 그렇고, 유일한 벗인 강아지와 이별한 '노찬성과 에반'의 찬성이 그렇다. 또한 특정 시공간을 같이 겪어낸 연인과 이별을 하는 '건너편'과 남편과의 사별을 다룬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도 같은 주제를 다룬다. '풍경의 쓸모'에서는 소설집의 제목이 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하기도 한다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입동'의 부부처럼 욕실 유리컵에 꽂힌 세 개의 칫솔과 빨래 건조대에 널린 각기 다른 크기의 양말, 앙증맞은 유아용 변기커버를 보며 그렇게 평범한 사물과 풍경이 기적이고 사건임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하루가 모여 한해가 되고, 그런 한해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런 하루 하루가 존재하였기에 쓸모와 필요만으로 이루어진 '기능적 생활'을 벗어나 여유를 풍경으로 두는 ''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실' '결핍'의 경험은 그들의 삶의 온도를 변화시킨다. 이러한 온도 변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공간 감각을 둔화시킨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명지와 같이 내 앞의 '청명'이 남의 집에서 뗀다 붙인 커튼처럼 느껴지고, 눈앞에서 아름답게 펄럭이는 '현재'가 좋았던 과거 같기도 다가올 미래 같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현재의 내 것 같지는 않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소설들을 관통하고 있는 '상실' '결핍'이라는 주제도 그렇지만 이들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사건 이후 남겨진 이들이라는 점에서 소설은 더 어둡게 다가온다. 김애란 작가의 전작 '두근두근 내인생'에서 선천적 조로증에 걸린 아름이는 삶의 시련에 대해 성숙하면서도 생기발랄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삶에 대한 긍정성은 세상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있는 스스로를 위한 다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겨질 부모에게 전하는 위로이기도 하다. 이와 달리 '바깥은 여름'의 인물들은 세상에 남겨진 이들이기 때문에 긍정적 태도 보다는 현실을 바라보는 냉혹한 시선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남겨진 이들은 결코 없던 일이 될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일들을 품에 안은채 고통속에서 삶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상실과 결핍을 대면하게 될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은 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가리는 손'의 재이 엄마의 말처럼 인간이란 각자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잘잘못 때문이 아닌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헤어짐을 겪게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복을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이해'이다. 이해는 자신이 처하게 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될 수도 있고, 이미 사건을 겪었거나 체험중인 타인에 대한 이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재이 엄마의 말처럼 '이해'란 자리에 누울 때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되는 품이 드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는 몰이해의 꽃매의 형태로, 잘 포장된 예쁜 합리성의 형태로 변질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스마트폰의 음성인식 프로그램도 갖추고 있는 예의를 생략하거나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다기오기도 한다. ‘이해란 타인과의 온도를 맞춰가는 과정이며 이는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찬성과 에반'에서 찬성이가 에반의 얼굴 군데군데를 공들여 바라보며 차라리 죽는게 낫다는 아픔의 크기를 가늠해본 것처럼 이 여름 제철의 싱그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겨울의 냉혹함만을 느끼고 있을 그 누군가의 고통을 생각해보았다.

 

 

책을 덮고 다시 표지를 바라보았다. 처음에 화사하게만 느껴졌던 표지에서 벽지의 푸른색과 여인이 입고 있는 원피스의 노란색이 대비되어 눈에 들어온다. 괴테는 세계적인 대문호이지만 빛과 색채를 연구한 과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저술한 '색채론'에서 색의 근원을 노랑과 파랑 두가지로 규정한다. 노랑은 빛에 가장 가까운 색이고 파랑은 어둠을 대표하는 색이기 때문에 이 두가지 색의 조화는 빛과 그림자, 힘과 나약함, 포용과 분리를 상징하며 두가지 색의 공존은 역동적인 의미를 생성하는 근원이라는 것이다. 괴테가 쓴 첫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노란색 조끼와 푸른 연미복을 입고 있다.

 

 

나는 푸른색 벽지와 노란색 원피스에서 '겨울' '여름'으로 대표되는 것들을 떠올렸다. 어두운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가고 있는 여인에게서 다른 이들과 다른 온도를 지닌채 세상을 다른 시공간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그 누군가를 떠올렸다. 베르테르의 열정적 사랑이 금빛 물결이 되어 흘러가다가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여 저 푸른 심연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우리는 삶 속에서 빛과 어둠, 기쁨과 슬픔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이러한 삶의 거대한 순환 속에서 어둠을 빛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은 무엇일까?

 

 

그 희망적인 해답의 실마리는 소설집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명지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소설에서 명지의 남편이 목숨을 걸고 구하고자 했던 아이의 누나에게서 온 편지는 명지가 두 손으로 식탁 모서리를 잡고 어딘가에 기대서라도 앞으로의 삶을 지속해나가야겠다는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결국 상실과 결핍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수 있는 것은 사람의 온기였다.

 

 

", 내가 아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으니, 유일하게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이 마음 뿐이라네."

 

 

샤롯데를 향한 마음의 열정과 진심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베르테르의 진정성, 그것이 상실과 결핍의 고통을 딛고 하나의 삶이 또 다른 삶에게 닿을 수 있는, 삶의 온도와 시차를 좁힐 수 있는 이해의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여름의 열기를 흡수해 공기중으로 기화한 수증기가 주문한 더치 커피잔의 표면에서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김애란,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입동, #노찬성과 에반, #건너편, #침묵의 미래, #풍경의 쓸모, #가리는 손,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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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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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11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는 그의 신작 소설 <시대의 소음 (The Noise of Time)>에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다루고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소련 최고의 작곡가였지만, 형식주의 (formalism)와 사회적 리얼리즘 (social realism)이라는 경직된 이념으로서 예술과 문화의 영역을 재단하려는 공산주의 체제에서하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다. 반스는 쇼스타코비치의 삶 안에서 예술과 권력의 충돌로 빚어지는 시대의 소음을 세가지 결정적 장면으로 표현하고 있다. 절묘하게도 그 시점은 1936, 1948, 1960년으로 12년을 주기로 되풀이되고 있으며, 소설도 크게 3 Chapter로 구성되었다.

 

쇼스타코비치의 첫번째 최악의 시기는 Chapter1 <층계참에서>에 묘사되어 있다. 그가 작곡한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관람하던 스탈린이 공연 도중에 자리를 뜨게 되면서 당기관지 <프리우다>가 그의 오페라를 음악이 아닌 혼돈 (Chaos intead of music)’이라고 논평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쇼스타코비치는 하루아침에 형식주의자로 낙인이 찍혔고 설상가상 그의 후원자가 반스탈린 쿠데타를 주도한 혐의로 처형당하면서 그에게도 위기가 닥친다. 언제 어떻게 들이닥칠지 모르는 비밀경찰로 인해 불안에 떨면서 가족들에게 비참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아파트 승강기 옆 층계참에서 대기하는 그의 모습은 극도의 불안 그 자체였다.

 

 

두번째 최악의 시기는 Chapter2 <비행기에서>이다. 쇼스타고비치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문화과학 세계평화회의에 자국의 대표단으로 참석하게 된다. 그는 소비에트 정부의 정당성을 공표하고 홍보하기 위해 자신이 쓰지도 않은 연설문을 낭독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한 음악가들을 비판하게 된다. 쇼스타코비치가 그가 존경하는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를 자본주의의 하수인이라고 비판하며 부정해야만 했던 기억은 그의 삶 자체에 많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마지막 최악의 시기는Chapter3 <차 안에서>에 표현되어 있다. 포스트 스탈린 시대 흐루쇼프가 정권을 잡게 되면서 스탈린 시대와 달리 어느 정도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는 해빙무드가 조성되지만 권력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옥죄어 온다. 달라진 시대 분위기에 대한 상징과 작곡가의 자유를 증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당국은 쇼스타코비치를 연방 작곡가 조합 의장 자리에 임명하게 되고 이를 위해 비 당원이었던 그에게 공산당 입당을 강요하게 된다. 사람을 죽이는 공상당원이 되지 않겠다는 신념을 지켜왔던 그는 결국 볼셰비키 최고위원이 되게 된다.

 

 

예술가는 그 어떤 한계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여야 한다. 음악가들은 누구나 자신의 음악이 시대의 소음에 맞서는 역사의 속삭임이길 바랄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생존의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국가와 권력의 폭력 앞에서 쇼스타코비치의 타협과 고뇌는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쇼스타코비치가 존경한 스트라빈스키는 혁명후의 러시아에 등을 지고 서방세계에 건너와 미국시민으로 죽었다. 그의 동료 프로코피에프는 서방세계에서 살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탄압과 굴욕 속에서 죽었다.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러시아를 떠나지 않고 러시아에서 성장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당신이 예술가라면 예술과 권력의 불협화음을 통한 시대의 소음 앞에서 어떠한 선택을 내릴 것인가? 당신은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비판하고 지적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그럴 자격이 있을까?

#쇼스타코비치, #시대의소음, #줄리언반스, #스트라빈스키, #예술과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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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다니구치 지로 지음, 신준용 옮김 / 애니북스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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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오랜시간 기다리던 딸이 세상에 나왔다. 새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과 부모가 된다는 막중한 책임감 속에서 우리 부부는 새로운 식구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였고, 온 가족과 친척, 지인들도 딸의 출생을 축하해주었다. 쏟아지는 축하 속에서도 초등학교 2학년의 조카를 두고 있는 친 누나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정말 신기하고 예쁘다. 우리 아들도 이렇게 눈만 떠줘도 이쁘고 고마운 때가 있었는데신생아 조카를 보고 있으면 우리 아들의 신생아 시절이 떠오르면서 괜히 마음이 짠해지네.”

 

리는 누군가의 아들 또는 딸로 세상에 태어난다. 또 가족의 보살핌 아래 성장하고 마침내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또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 가정이란 단어를 정의한다면 한 가족이 함께 살아가며 생활하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가정은 인간이 태어나 하나의 인격체로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회적 동물로 진화하기 위한 최소 단위의 생활 공동체인 것이다. 가정은 정형화할 수 없기 때문에 형태와 구성은 제각각이자만 하나의 가정은 저마다의 사연과 추억으로 하나의 우주적 세계를 이룬다.

 

내가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어떤 법칙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어느 봄날 오후, 나는 아버지의 이발소 마룻바닥에 앉아 놀고 있다.” - P. 6 -

 

따뜻한 봄 햇살의 온기가 한가득 머문 마루, 아마도 그건 어린 시절 중 내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한 한때였으리라.” - P. 7 -

 

다니구치 지로의 『 아버지 』를 읽으며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것, , 가정을 이루어나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주인공 요이치는 왜곡된 기억으로 아버지와 고향을 외면하고 살았지만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15년만에 고향으로 향한다. 거주지인 도쿄에서 고향 돗토리현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이지만 요이치가 아버지와 고향에 대해 느끼는 심리적 거리는 15년이란 세월만큼이나 아득하게 멀리 벌어져 있었다. 하지만 요이치는 고향에 도착해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미치 몰랐거나 잘못 기억하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정보를 들으며 비로소 자신이 아버지를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일생을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살아온 매 순간순간의 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일생은 생명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지난한 시간과 역사를 거치며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세계관의 형성과정에서 개인은 가정, 집단, 조직, 국가라는 사회적 관계 안에서 수많은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며, 이 같은 경험들은 개인의 잠재의식 속에 어떠한 형태로 저장되었다가 추후에 재생, 재구성, 재해석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기억 (記憶, Memory)이라고 한다.

 

기억은 과거의 경험이 재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저장된 것을 재생하기 위한 동기가 필요하다. 요이치의 사례에서는 아버지의 부고와 이를 통해 모이게 된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동기에 해당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어떤 일을 겪고 경험을 하든지간에 그것을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재생하고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기억으로 혹은 뼈아픈 추억으로 받아들일수 있다. 아버지에 대한 특정 시점, 특정 장면 등에서 느꼈던 왜곡된 기억으로 아버지를 자신의 삶에서 밀어내기만 했던 요이치가 오해를 풀고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과정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 (His own Historian)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마법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고동치는 두번째 심장이기 때문이다. 요이치가 고향을 떠올릴때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이발소에서 봄 햇살의 온기가 가득한 행복했던 한때를 연상하듯이 우리는 가정 안에서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들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이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행복한 기억들을 화석화하여 영원과 불멸의 세계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고향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고향이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돌아오는 것이라고.” - p. 274 -

 

내 아이가 눈을 뜨고 나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친 순간, 처음으로 지은 미소, 첫 걸음마, 처음으로 말을 한 순간... 이는 내가 자식으로서 부모님과 공유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부모로서 앞으로 내 딸과 공유해갈 기억들이기도 하다. 앞으로 나와 내 가족은 삶의 어떤 순간순간들을 공유하며 추억을 만들어나갈까? 다니구치 지로의 『 아버지 』를 읽으며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느끼는 죄송한 마음과 아직은 낯선 부모로서 자식과 함께 살아갈 앞날에 대한 벅찬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고향이 우리 마음속에 돌아오는 것이라는 책 속의 대사처럼 나도 내가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변함 없는 한결같음으로 내 자식에게 전하는 아버지가 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다니구치지로, #아버지, #애니북스, #신준용, #돗토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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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유고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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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일생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일생을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한사람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살아온 매 순간순간의 누적 (accumulation of every single moment)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일생은 생명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지난한 시간과 역사를 거치며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세계관의 형성과정에서 개인은 집단, 조직, 국가라는 사회적 관계 (Social Relation) 안에서 수많은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며, 이 같은 경험들은 개인의 잠재의식 속에 어떠한 형태로 저장되었다가 추후에 재생, 재구성, 재해석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기억 (記憶, Memory)이라고 한다.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 (Retrospective Memory)은 마치 동식물이 퇴적, 암석화의 과정을 거쳐 화석이 되듯이 사건의 잔상과 흔적, 진실의 파편 속에서 원형만이 살아남아 개인의 의식속에 퇴적되고 암석화된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경험을 하든지간에 그것을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재생되고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기억이 될 수도 뼈아픈 추억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 (His own Historian)라고 할 수 있다.

 

 

피에르 보나르는 현실이 아닌 기억을 그린 화가였다. 특히, 정감 있고 소박한 일생생활을 묘사하여 행복한 내면의식을 표현한 앵티미스트 (Intimiste)였다. 일상속에서 포착한 즐거웠던 순간들을 내재화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세월속에서 화석화된 일상의 단면들을 캠버스에 표출하였다. 현실의 한 장면을 보면서 그리는 대신 '기억'으로 재구성한 행복한 일상의 순간들은 '진실'은 아닐 수도 있지만 오히려 불완전한 기억 덕분에 창조와 감동의 원천이 된다.

 

 

 

 

역사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주체간의 동시다발적인 삶의 교차와 수렴이 일어나는 입체적이고 공감각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는 기본적으로 사라지고 소멸되는 것들에 대해 다루는 것이다. 사라지고 소멸된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 개별 주체들의 삶과 세계관에 미치는 영향이 서로 상이하다는 것이며, 이를 서술하고 평가함으로서 역사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은 역사가의 역할이다.

 

 

 

기억과 역사는 모두 과거를 현재화하는 수단이지만 역사가 객관성, 합리성, 실증 가능성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기억은 주관적, 직관적, 감성적이라는 면에서 그 차이가 존재한다. 역사는 객관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그 성격으로 인해 과거 사건에 대해가능한 유일한 것을 지향한다. 하지만 기억은 개인이나 집단의 경험에 근거하지만 오히려열린 행위라는 성격으로 인해 역사가 추구하는 진리와 객관성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따라서, 기억과 역사는 상호보완적인 것으로서 동시에 활용되어야 한다. 기억은 역사의 외연을 확장시킬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과거를 검증하고 역사를 평가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불멸을 꿈꿀수 있다. 기억은 우리의 삶 속에서 고동치는 존재이자 동시에 미래의 삶에 대한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관계와 소통, 연대를 통해서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역사는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역사는 끊임없이 평가되어야 하는 대상이고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왜곡되고 의혹이 제기되는 사건은 다시기억으로 회귀하여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재검증해야하기 때문이다.

 

 

 

 

흐르는 냇물은 당신에게 묻는다. 빛을 반짝이며 흘러가는 물결처럼 과거와 현재라는 당신만의 역사 속에서, , 유년의 기억과 현실의 존재 사이에서, 당신은 어떤 모습이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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