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다니구치 지로 지음, 신준용 옮김 / 애니북스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오랜시간 기다리던 딸이 세상에 나왔다. 새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과 부모가 된다는 막중한 책임감 속에서 우리 부부는 새로운 식구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였고, 온 가족과 친척, 지인들도 딸의 출생을 축하해주었다. 쏟아지는 축하 속에서도 초등학교 2학년의 조카를 두고 있는 친 누나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정말 신기하고 예쁘다. 우리 아들도 이렇게 눈만 떠줘도 이쁘고 고마운 때가 있었는데신생아 조카를 보고 있으면 우리 아들의 신생아 시절이 떠오르면서 괜히 마음이 짠해지네.”

 

리는 누군가의 아들 또는 딸로 세상에 태어난다. 또 가족의 보살핌 아래 성장하고 마침내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또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 가정이란 단어를 정의한다면 한 가족이 함께 살아가며 생활하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가정은 인간이 태어나 하나의 인격체로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회적 동물로 진화하기 위한 최소 단위의 생활 공동체인 것이다. 가정은 정형화할 수 없기 때문에 형태와 구성은 제각각이자만 하나의 가정은 저마다의 사연과 추억으로 하나의 우주적 세계를 이룬다.

 

내가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어떤 법칙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어느 봄날 오후, 나는 아버지의 이발소 마룻바닥에 앉아 놀고 있다.” - P. 6 -

 

따뜻한 봄 햇살의 온기가 한가득 머문 마루, 아마도 그건 어린 시절 중 내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한 한때였으리라.” - P. 7 -

 

다니구치 지로의 『 아버지 』를 읽으며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것, , 가정을 이루어나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주인공 요이치는 왜곡된 기억으로 아버지와 고향을 외면하고 살았지만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15년만에 고향으로 향한다. 거주지인 도쿄에서 고향 돗토리현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이지만 요이치가 아버지와 고향에 대해 느끼는 심리적 거리는 15년이란 세월만큼이나 아득하게 멀리 벌어져 있었다. 하지만 요이치는 고향에 도착해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미치 몰랐거나 잘못 기억하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정보를 들으며 비로소 자신이 아버지를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일생을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살아온 매 순간순간의 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일생은 생명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지난한 시간과 역사를 거치며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세계관의 형성과정에서 개인은 가정, 집단, 조직, 국가라는 사회적 관계 안에서 수많은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며, 이 같은 경험들은 개인의 잠재의식 속에 어떠한 형태로 저장되었다가 추후에 재생, 재구성, 재해석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기억 (記憶, Memory)이라고 한다.

 

기억은 과거의 경험이 재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저장된 것을 재생하기 위한 동기가 필요하다. 요이치의 사례에서는 아버지의 부고와 이를 통해 모이게 된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동기에 해당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어떤 일을 겪고 경험을 하든지간에 그것을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재생하고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기억으로 혹은 뼈아픈 추억으로 받아들일수 있다. 아버지에 대한 특정 시점, 특정 장면 등에서 느꼈던 왜곡된 기억으로 아버지를 자신의 삶에서 밀어내기만 했던 요이치가 오해를 풀고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과정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 (His own Historian)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마법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고동치는 두번째 심장이기 때문이다. 요이치가 고향을 떠올릴때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이발소에서 봄 햇살의 온기가 가득한 행복했던 한때를 연상하듯이 우리는 가정 안에서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들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이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행복한 기억들을 화석화하여 영원과 불멸의 세계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고향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고향이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돌아오는 것이라고.” - p. 274 -

 

내 아이가 눈을 뜨고 나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친 순간, 처음으로 지은 미소, 첫 걸음마, 처음으로 말을 한 순간... 이는 내가 자식으로서 부모님과 공유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부모로서 앞으로 내 딸과 공유해갈 기억들이기도 하다. 앞으로 나와 내 가족은 삶의 어떤 순간순간들을 공유하며 추억을 만들어나갈까? 다니구치 지로의 『 아버지 』를 읽으며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느끼는 죄송한 마음과 아직은 낯선 부모로서 자식과 함께 살아갈 앞날에 대한 벅찬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고향이 우리 마음속에 돌아오는 것이라는 책 속의 대사처럼 나도 내가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변함 없는 한결같음으로 내 자식에게 전하는 아버지가 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다니구치지로, #아버지, #애니북스, #신준용, #돗토리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