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 1 - 마음이 속상할 때는 몸으로 가라 참선 1
테오도르 준 박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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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하나의 여정으로 본다면 우리는 모두 이 세계를 여행하는 방랑자라 할 수 있다. 이 여행은 언제 어떤 목적을 가지고시작된 것일까? 그 시작점은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여행은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서 또,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묘한 이끌림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나긴 여정이 지속되면서 어느 순간 우리의 여행은 내면을 향해 침잠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이 여행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타인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내면을 향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은 말 없이 이어지는 사건과 행동의 연속일 뿐 절대로 우리가 어떻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다고 말하는 건 우리 자신이다.” (참선 2권, p. 12)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반응과 태도를 내세우며 세상을 살아간다. 또, 기억 속에 저장된 결코 보편적이지 않은 과거의 체험들을 현재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되짚어 보고, 이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 또 그에 대한 변명들이 적절한 것인지 반성적으로 성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서도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적, 신체적, 심리적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그 사건을 대하는 삶의 방식과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건을 경험하면서 개인은 자신만의 철학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우리가 겪은 경험은 사건의 잔상과 흔적, 진실의 파편 속에서 원형만이살아남아 저마다의 삶의 방식을 구성한다.
 
“자기 내면의 가장 깊은 곳으로 시선을 돌릴 때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는 것.”(참선 2권, p. 246)
 
본서 <참선>의 저자 테오도르 준박은 참선을 통해 발견한 멋지고 아름다우면서도 모순적인 진실은 바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정신적 통찰을 맑고 잔잔한 마음에 비친 세상의 모습을 왜곡하지 않고 깨끗하게 인식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를 위해서 먼저 세상을 투명하게 비출 수 있는 마음을 단련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정신적 통찰이란 명확한 인식을 의미하며, 이는 탁월함이나재능이 아닌 내면의 평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면을 탐구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데카르트식 회의론과 파스칼식 두려움 사이‘ (참선 1권, p. 132)라는 재밌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학문적인 용어가 아니라 저자와 학부시절 절친한 친구이자 본 도서에 추천사를 쓰기도 한 ’세바스찬 승‘ 프린스턴대 교수와 저자 둘이서 만들어내고 교감한 개념이다. 데카르트식 회의론은 우주에 진리가 존재하겠지만 인간에게 과연 그 진리를 이해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보는 철학적 입장이다. 반대로 파스칼식 두려움은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확신하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이 우주가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간주하는 철학적 견해를 의미한다. 즉, 진리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주장과 반대로 존재하지 않는 의미를 찾으려 하는 데서 고통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과연 진리란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 우리가 그토록 헤메는 진리는 인간의 인지능력의 한계를 지적하는 데카르트식 회의론과 거대한무(無)의 공허감을 의미하는 파스칼식 두려움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있지 않을까?
 
“참선은 진짜 인간이 되는 길이지. 진정한 인간의 삶을 사는 방식이기도 하고 또 우리가 마음을 다스리고 단속하는 방법이지.” (참선 1권, p. 158)
“참선은 삶을 긍정하는 즐거운 가르침이자 수행법이다.”(참선 2권 p.125)
 
저자인 테오도르 준박은 사실 ’환산스님‘이라는 법명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인 재미교포로 태어나 성장하면서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22살의 어린 나이에 한국에 건너와 출가한 후 30년간 불교의 전통적 방식으로수행한 승려였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엘리트 지식인으로 그릴 수 있었던 빛나는 미래를 포기하고 언어도, 문화도, 생활방식도 생소한 한국의 절에서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참선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그가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데에는 그의 스승인 ’송담 스님‘의 존재 때문이었다. 불교에 귀의하여 수행한 30년 뿐만 아니라 환속하여 도시수행자가 된 지금도 그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믿음을 잃지 않고 있다. 저자는 환속의 이유에 대해 명확히 밝히고 있진 않지만 어쩌면 그 이유 중 하나는 늘 깊은 산사가 아닌 일상 속에서 수행을 강조했던 스승의 가르침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거대한 진리 앞에서는 보잘것 없는 존재들이고, 진리의 진리의실마리를 찾기 위해 정진하는 수도자라는 점에서는 무엇을하고 어디에 있든 모두가 같은 입장에 놓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사의 고통 한가운데서 그 생사의 고통을 초월해야 한다.” (참선 1권, p. 317)
“우리의 불완전한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영원한 삶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 (참선 2권, p. 283)

<참선>을 읽으며 놀라웠던 것 중의 하나는 저자의 진솔하고 겸손한 태도였다. 저자는 선각자로서의 자존심이나 권위를내세우지 않고, 독자들과 같은 도반의 입장에서 함께 깨달음의 길을 걷고자 하고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나는 정말로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그리고 그냥 믿는 것에 관해 가능한 한 정직한 것이 좋다고 늘 믿어왔다.” (참선 1권, p. 173)는 표현이나, “깨달음이라는 뭔가 모호하고 이상적인 것을 기다리느니 지금 참선을 하면서 살아있고, 깨어 있고, 행복하다는것을 좀 더 생생하게 느끼는 편이 훨씬 더 건강에 좋고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다.“ (참선 2권, p. 124) 같은 문장에 잘드러나 있다. 또한 저자는 진리를 구하는 수행으로서 참선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자세, 호흡, 화두‘라는 참선의 3대 요소중에서 몸이 이완되는 자세를 이해하고, 더 정확한 호흡법을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요가 수련을 적극 권장하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리 수행과 같은 마음 치유법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이는 형식과 권위에 얽매이지않고 초심을 잃지않은 영락 없는구도자의 모습이다.
 
“우리는 당신을 ‘마음 기술 전문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물질과 정보에 관한 전문가인 것처럼요.” (참선 2권, p. 187)
 “나는 물질적인 대상을 사용해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능력을 높이고 강화하는 것이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참선 2권, p. 192)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와 같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과 다름없다.”는 말을 남겼다. 그가 이러한 말을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1950년대 비트 제너레이션 (Beat Generation)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산업화되어가는 미국의 현실 속에서 소외되어 가는 개인을 대변하여 동양철학, 성 해방, 환경운동 등을 주장하며 등장했다. 그 뒤를 이은1960년대 히피(Hippie) 운동은 소비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기성의 사회 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 자연에의 귀의를 주장했다. 이들은 자연으로의 회귀와 평화를 외쳤고, 도덕보다는 자연스러운 감성, 이성보다는 자유로운감성과 즐거움을 추구했다.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의 정신적 지주였던 ’앨런 긴즈버그‘는 히피운동을 더 큰의식과 더 큰 개인을 향한 생각의 변화라고 평가하였다.

“히피 무브먼트는 더 큰 의식과 더 큰 개인을 향한 생각의 변화다. 그 포용력과 배려심이 미래에도 시적이고 예술적으로확산되기를 바란다.” ? 앨런 긴즈버그 (Allen Ginsberg) -

오늘날의 우리는 히피운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히피운동은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 속에서 현실을 거부하고 이상을 추구했던 젊은이들의 치기 어린 반항에서 비롯된 실패한 혁명에 불과한 것일까? 히피들은 현실적 제약에서 벗어나더 나은 세상을 갈망했고,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추구해나갔다. 세계 각지로 또 자신의 내면으로 여행을 떠난 이들도 있었지만, 반권위주의와 사회변혁의 분위기는 받아들이면서 정치와 환경운동 보다는 테크놀로지에 주목했던 이들도 있었다. 자유와 공생, 공유와 개방의 히피문화는 이들의 존재로 인해 오늘날의 PC와 인터넷, SNS로 구체화될 수 있었고, 애플과구글, 페이스북과 트위터라는 글로벌 혁신기업들도 탄생할 수 있었다.
 
히피들은 산업화 이면의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 소외되어 가는 개인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두 가지 방식으로 해결책을찾았다. 그것은 자아를 찾기 위한 정신을 수련하는 것과 테크놀로지로서 사회를 변혁하는 것이었다. 테크놀로지는 현대사회를 이룩하는데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발달된 과학기술에의 지나친 의존은 물질적인 것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불균형은 현대사회가 안고있는 부조리와 병폐의 원인이 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모든 종류의진정한 종교 수행에서는 어떤 특정한 정신적 신체적 작용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의식에 내재된, 현실을 바꾸는 양자적 힘을 향상시키기 위해 기술을 사용해왔고, 이러한 기술과 참선의 결합과 균형이 미래를 여는 큰 지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과 사에 관한 중요한 질문인 화두는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삶의 혼란스러움을  종식시켜줄 지혜에 대한  갈망이나 상실과 결핍으로 인해 슬퍼했던 기억, 또 잃어버린 것을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답답함 등은 우리가 일상에서흔히 경험하는 것들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두고 온 것들은 무엇일까? 개개인이 켜켜이 쌓아 올린 저마다의 사연들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을 머금은 채 조용히 빛난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서 혹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알수 없기 때문에 서로를 끝없이 갈구하고 또, 자신의 내면 속으로 침잠해들어간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각자가 겪은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의 가장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서로에게 빛을 비춰주는 능력이다. 전 역사에 걸쳐 이 능력은 우리 인간 종을 계속 구원해왔다. 만약 우리가 참선을 통해 우리 내면의 빛을 발견하는 법을 배웠거나 배우기 시작한다면 의식적으로 많이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가 가는 곳마다 우리의 사랑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빛날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랑을 느낄 것이다.” (참선 1권, p. 334)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의 흔적, 슬픔을 매개로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를 건넨다. 인간은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 즉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면서 진리를 구하고자 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원칙 (Principle)을 지키며, 진실과 정의, 인간 고유의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 타인을 향해, 또우리의 내면을 향해 작지만 흔들림 없는 발걸음을 묵묵히 내딛는 것뿐 아닐까? 2020년 한 해의 시작을 <참선>이라는 책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적절한 자기 조절 방법을 배우고, 열심히, 정직하게, 용기를 갖고 실천하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보자. 자신의 가장 멋진 모습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법만 배우면 된다.” (참선1권,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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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페미니스트 - 개정판
서한영교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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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그 공포혼란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


이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홍보문구였다소설의 내용은 82년생 여성 중 가장 흔한 이름을 가진 주인공 '김지영씨'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3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법한 사건들을 겪는 이야기이다소설의 주인공이 '김지영'이 아닌 '김지영씨'인 이유는 '김지영씨'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에코세대 여성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각종 통계자료와 기사들을 근거로 객관적으로 재현해낸 지극히 평범한 그녀의 평균적인 삶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보편적 체험이자 삶으로 인식하게 만든다그럼으로써 그 보편적인 일상이 얼마나 차별적이고 불합리한지 깨닫게 해준다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은 이유는 우리 주위에 보편적인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아픔과 상처를 겪고 있는 수많은 ‘김지영’들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하지만 '김지영씨'의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30대 여성들의 이야기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삶일 수도 있다왜냐하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느 누구에게는 결코 경험하지 못한 또 공감하지 못하는 삶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역사학자 거다 러너는 “남성은 새로 시작할 필요가 없다‘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인류의 지적 전통을 자연스레 전수 받으며 세계를 조망하기 때문이다.”고 했다세계는 아버지의 이름에 의해 호명되고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남성은 세계를 잘 익히기만 하면 된다이에 반해 여성은 끊임 없이 자신을 단속해야 하며 아버지의 어깨 위로 올라가 세상을 조망하지 못한다. (P. 22)


우리 주변의 수많은 김지영들은 일상의 부조리 앞에서 눈을 감고 입을 닫고 살아왔다기득권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를 잃을까 전전긍긍할 때 피해자인 여성들은 삶의 전부를 잃을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또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로와 보복무력감 속에서 괴로워해야했기 때문이다. <두번째 페미니스트>의 저자 서한영교는 남성 중심의 역사와 신화로부터 추방당한 자들의 곁에서 ‘두번째 사람’으로서 폭풍 속에서 폭풍이 멈추기 전까지 모든 걸 걸수 밖에 없는 ‘첫 번째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자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저자는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세계를 조망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또무의식적으로 혜택을 받아온 남성으로서의 한계를 인식하고동시에 사회적 약자들에게 권리와 기회의 평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미약한 힘을 보태고 있다이것이 <두번째 페미니스트>란 책 제목의 의미이다.


“진정한 탐험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P. 59)


소설 <82년생 김지영>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그 공포혼란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라고 한다면, <두번째 페미니스트>는 “생활도일도꿈도심지어 자신의 정체성 마저 혼란을 겪는 첫번째 사람을 곁에서 지켜본 두번째 사람의 인생 성찰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육아휴직을 신청하면서 겪게 된 불합리한 사회의 이면을 경험하고친구에게 육아의 기쁨에 대해 털어 놓는 자리에서도 '맘충'이라 비난을 받게 되면서 저자는 평범한 남자들은 결코 알지 못할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하나하나 깨달아가고 있었다.


“내가 무슨 페미니즘 공부 한다고... 자기 성찰 모드로 진입하여 잡초 솎듯 내 안에서 자란 못난 남자 하나를 뽑아낸다얼마쯤 뽑아내야 할까아마 죽기 전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길고 긴 여정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P. 222)


저자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겸손하게 ‘두번째 페미니스트’를 자처하고 있지만나는 ‘두번째’라는 포지션도‘페미니스트’라는 사상도 감히 주장하고 자처할 수 없는 평범한 남자에 불과하다다만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육아를 하면서 나도 저자가 겪은 상황과 피력하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는 걸 고백하고자 한다.


"당신 정말 육아휴직 갈꺼니?"


세상에 태어난 딸에 대한 축하인사 다음으로 회사의 경영지원부문 임원이 내게 건넨 말이다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해 회사는 남성육아휴직을 의무화하기로 하였지만 아직 안정적으로 정착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이런 상황에서 회사의 인사와 복지정책을 총괄하는 경영지원부문 임원의 농담인 듯 진담인 듯 건넨 말 한마디는 내게 항거할 수 없는 압박이었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다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약속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는 걸 일상에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또한 이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평범한 남자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아내로엄마로 살아가는 것의 고충을 느끼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가시화되고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누적된 결과가 아닐까?


“아버지라는 이름은 꽃과 같아서 매일같이 물을 주고 돌봐야한다물을 주지도 않고 돌보지도 않았는데 아버지라는 이름의 꽃이 살아 있다면 그것은 조화에 불과하다. (P. 206)


페미니즘으로 가는 길은 하나일수는 없다고 생각한다사람마다 살아온 배경과 삶이 다르므로 각자의 삶에 말을 걸고 삶의 사소한 부분부터 변화에 대한 의지를 불어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삶의 작은 순간들이 누적되어 한 사람의 일생을 구성하듯 세상의 변화도 생각보다 작은 부분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나는 고민 끝에 회사에 남성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이는 물론 태어난 아이를 위해 앞으로 일정부분 여성이 아닌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아내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또 다른 여성으로서 살아갈 내 딸을 위한 것이었다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이 조직 구성원들의 부정적 인식을 전환시켜 육아휴직제도가 안정화되고 나아가 조직문화가 개선되는데 미약하나마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시인 브레히트는 자신의 서재 대들보에 “진리는 구체적이다.” 라고 크게 써놓았다고 한다구체적이지 않은 진리는 인간을 모호한 주관적 확신으로 이끈다때문에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이어야 한다생동하는 저 세계를 구체적으로 겪어나가야 한다나 역시 “가부장 체제를 박살내야 합니다.”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살아갈 뿐이다구체적이지 않고서는 관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P. 227)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아내와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삶이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차별과 질책에 굴하지 않고 지금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첫번째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그리고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작지만 끊이지 않는 두번째 목소리들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것을 믿어 의침치 않는다누군가의 딸누군가의 엄마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여성들의 삶에 행복이 깃들길 그리고 그들의 곁에서 같이 행복을 만들어가는 두번째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마음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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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1 -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함지은 북디자이너 / 열린책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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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죽음>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은 가브리엘 웰즈로 추리소설 작가다그가 소설 상에서 직면한 상황은 조금 특별하다어느 날 아침 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그 동안 고민해오던 신작 소설의 첫 문장에 대한 영감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극중 작가인 가브리엘 소설의 첫 문장이자 동시에 이번 베르베르 소설의 첫 문장이기도 한 그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누가 나를 죽였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브리엘은 자신은 죽었고누가 자신을 죽였는지 조차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이렇게 그가 선택한 첫 문장은 그 자신이 풀어내야 하는 질문으로 바뀌게 된다가브리엘은 추리소설 작가로서 수많은 트릭을 설계해왔지만이제 희생자인 동시에 수사의 주체로서 과거 자신의 삶을 토대로 범인을 추리하여 자신이 던진 질문에 답해야 한다가브리엘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영매(靈媒) ‘뤼시 필리피니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죽인 사람을 찾고자 한다용의선상에 오른 것은 4명이다그에게 재결합을 요구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해 앙심을 품었을지 모를 옛 연인 사브리나’, 자라면서 서로를 밀어내게 된 쌍둥이 형 토마 웰즈’, 그의 죽음으로 이득을 얻을 편집자 알렉상드르’, 그의 작품을 쓰레기로 치부하며 증오심을 드러냈던 비평가 장 무아지가 그들이다.


소설은 누가 날 죽였지?’라는 첫 문장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서 범인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범죄의 희생양이 되어 저승에 있는 영혼이 이승에 있는 영매의 도움을 받아 직접 자신을 죽인 범인을 찾는다는 독특한 설정과 용의자들에 대한 검증을 통해 점차 진실에 다가가는 추리소설의 형식은 소설에의 몰입도를 높이는 요소들이다하지만 작가 베르베르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세계 속에서 추리에 집중하던 독자들은 이 소설이 전형적인 추리소설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퀴블러 로스의 이론대로 처음에는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고 분노를 표출했던 가브리엘이 타협과 수용의 과정에 다다른 것처럼 범인이 누구인지와 살인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집중했던 독자들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점차 작가 베르베르가 던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으로 눈을 돌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원제는 <Depuis l'au-dela>로 프랑스어로 저승으로부터라는 의미이고영문판 제목 ‘From Beyond’는 저 너머로부터로 해석된다그에 반해 한국어판은 다소 직설적으로 죽음을 제목으로 선택하였다베르베르가 사후세계와 영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타나토노트>, <나무>, <등 그의 전작들을 지켜봐 온 팬들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사후세계나 영혼은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로 많이 다뤄졌던 만큼 신선한 소재는 아니지만베르베르는 남들이 터부시되는 주제를 피하지 않고 응시하면서 빛나는 상상력으로 미지의 세계를 탐구해왔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이번 소설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중학교 중간고사 기간에 <개미>를 처음 접한 이래로 나는 베르베르가 쌓아올린 세계를 즐겁게 탐험하는 베르베르 키즈였기 때문이다.


"죽음 뒤에 또 다른 삶이 이어지는지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확실한 것은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며 그것을 이용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르베르의 신작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참석했던 강연에서 나는 그의 죽음에 대한 철학을 들을 수 있었다. ‘신은 존재할까영혼이란 무엇이고사후세계는 존재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누구나 쉽게 떠올리지만 그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는아직 인류가 탐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생에서 우리가 지각하는 삶은 한번뿐이라는 사실이다누구에게나 단 한번 주어지고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이기에 삶은 소중한 것이다삶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은 생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에 대해 성찰하면서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삶의 마지막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살아있는 순간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책은 <죽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이를 통해 베르베르는 우리에게 삶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삶이 내포하고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되면서 '누가 나를 죽였지?'로 시작했던 가브리엘의 질문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지? (1권 57)’와 마지막 순간에 얻은 깨달음을 가지고 죽은 자들이 더 살 수 있다면... (1권 58)’을 거쳐 나는 왜 태어났지? (2권 313)’로 진화한다가브리엘의 첫 질문 '누가 나를 죽였지?'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나는 어떠한 형태로 죽음을 맞이했고왜 그러한 마지막을 맞이했던 것이지?’일 것이다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그가 돌아본 것은 자신의 삶이었다결국 어떻게 죽었는지 혹은 죽어야 하는지의 문제는 어떻게 살아 왔는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문제로 귀결된다이와 관련하여 베르베르는 연명치료로 대표되는 현대의학으로 변질되는 삶의 의미에 대해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멈추는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지도 못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1권 212)

나는 살아 있고 당신들은 죽었다.” 필립 K. 유빅』 -


삶을 하나의 여정으로 본다면 죽음은 스토리를 매듭 짓는 마지막 종착지라고 할 수 있다나만이 할 수 있는 나레이션으로 내가 마침표를 찍는 것인데현대의학은 나레이션의 주체를 의사와 가족으로 바꾸어 놓았다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인지본인의 선택은 고려되지도 않은 채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연명의료를 통해 삶을 물리적으로 연장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베르베르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우리는 과연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우리 삶의 주체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 죽음을 통해 을 제시하고자 하는 베르베르가 우리에게 전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가브리엘은 가장 근원적이면서 신비로운 질문 나는 왜 태어났지?’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이는 떠돌이 영혼이 된 가브리엘이 새롭게 쓰려는 소설의 첫 문장이자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다또 베르베르의 차기작 <판도라의 상자>가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본 소설을 통해 삶의 종착지인 죽음에 대해 논했던 베르베르가 출생에 대해서는 어떤 통찰력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죽음>은 베르베르의 자전적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다베르베르처럼 프랑스의 장르문학 작가로 묘사되고 있는 가브리엘은 베르베르가 자신을 소설 속에 투영시킨 존재로 보이기 때문이다가브리엘의 소설 제목 <죽은 자들>이 베르베르의 소설 <>의 제목을 불어의 문자적 유사성에 기반한 패러디라는 것만 봐도 베르베르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가브리엘은 대중에게는 호평을 받는 반면에 주류 문학계에서는 저평가되고 있는 베르베르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하다. ‘장 무아지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문단은 순문학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장르문학의 존재가치를 폄하한다가브리엘의 독자가 많은 건 대중이 좋은 문학에 대한 안목이 없기 때문이며장르문학은 상상의 소산일 뿐 진짜 문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맞서 문체 중심의 문학과 상상력 중심의 문학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닌 상호보완적인 것이라는 가브리엘의 주장은 폐쇄적인 문단을 향한 베르베르의 외침이다베르베르는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시도되는 모든 노력들은 존중받아야하고 오히려 문학을 획일화하려는 어떠한 관점이나 시도도 허용 되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이러한 베르베르의 문학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는 자신의 죽음을 자각한 가브리엘 웰즈가 이제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고이후 환생과 영혼으로 남는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영혼으로 남아 글쓰기를 계속 하는 선택을 내리는 대목에 잘 나타나 있다.


글쓰기가 나를 구원한다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진정한 나로써 존재하는 유일한 순간이다오직 이 공간에서 만큼은 사건을 뒤따라가는 게 아니라내가 그것들을 창조해낸다.” (2권 185)


베르베르는 자기반성도 빼놓지 않는다아이디어는 훌륭하지만 엄격함섬세한 심리 묘사가 부족하다'는 코난 도일의 지적 (2권 96~97)과 '건조한 문체직설적인 본론과 반전 없는 결말'을 언급한 메트라톤의 지적 (2권 282)은 베르베르가 냉철한 자기평가를 통해 드러낸 자신의 치부인 동시에 문학적 발전을 위한 그의 의지표명이다좋은 문학이란 무엇일까? 삶에 대한 아포리즘을 기반으로 시간의 선택을 받아 세기를 뛰어넘는 고전이 된 책? 상상력을 통해 동시대인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는 책?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가브리엘은 영혼이 되어 깨달은 여섯 가지에 대해 회상한다그것은 인간의 삶은 짧으며 선택은 결국 우리 스스로 내리는 것이라는 것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것만물의 변화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것 등이었다변화하고 움직이는 만물 중에는 좋은 문학에 대한 기준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좋은 문학이란 어떤 것인지 이 자리에서 단언할 순 없지만 적어도 문단의 획일화된 기준 보다는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끊임없는 시도를 하고 있는 가브리엘 혹은 베르베르이 그 진실에 가까운 위치에 있을 거라 확신한다.


사람은 어릴 때 받은 사랑만큼 사랑할 수 있는 거라고 말했어요우리가 어릴 때 부모한테 받은 뽀뽀가 마치 포커 칩과 같아서어른이 되어 사랑이라는 포커 게임을 할 때 그걸 쓸 수 있다고 했어요어릴 때 받은 포커 칩이 많을수록 게임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1권 94)


가브리엘이 마지막으로 깨달은 것은 모든 삶은 유일무이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완벽한 것이며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지금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며 오직 이 삶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었다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 된다그러한 순간순간들이 모여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베르베르의 소설을 읽고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주말 저녁 행복한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힘겨운 삶 속에서 내가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것 이상의 응원이 있을까각자가 가진 삶의 조각들이 가족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조각(One Piece)으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행복 아닐까? 아직 한창 어리광 피울 나이의 딸에게 보내는 내 진심과 사랑이 아이의 앞으로의 삶에 큰 자산이 되길 바란다그리고 딸과 함께 베르베르의 소설들을 읽고 토론하게 될 가까운 미래를 상상한다벌써부터 그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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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1-24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특히 마지막 두 문단이 참 와닿아요.
가족과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분위기도요. 배르베르의 이 소설은 제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리뷰 참 좋아 댓글 드리고 책도 담아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잭와일드 2021-11-28 19:02   좋아요 0 | URL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Book] 3 1 운동 새로 읽기 [개정판] - 이 땅의 젊은이들을 위한
3.1문화재단 지음 / 예지(Wisdom)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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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내에서 적대적으로 공존하는 하나의 민족, 두 개의 한국, 이 민족적 비극의 기원은 무엇일까? 오늘날 북한이 왜 악의 축 (axis of evil), 악당국가 (rouge state)로 불리게 되었고, 남한은 반공주의 속에서 군사 쿠데타에 이은 군부독재를 겪게 되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겪은 고통스러운 기억과 그 이후의 역사적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민족적 비극의 근원인 동시에 올바른 현실인식을 기반으로 한 통일 민주국가 수립이라는 민족사적 과제 달성의 단초이기 때문이다.

 


하나.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존엄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하나.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질서를 최우선으로 하여, 우리들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광명정대하게 하라.

3·1 운동 기미독립선언서 - 공약 삼장

 


집회 횟수 1,548, 집회 인원 2,046,938, 사망자 7,509, 부상자수 15,849, 수감자수 46,306.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기록된 3·1운동의 규모와 피해상황이다. 일본의 폭압적 진압도 독립을 향한 우리 민족의 열망을 막을수는 없었다. 만세운동의 열기는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도, 황해도, 평안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로 퍼져나갔다.

 


내 손톱 빠져나가고, 내 코와 귀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운동에 참여해 순국한 유관순 열사가 남긴 말이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단편적 사건들의 단순 합이 아니라 시대를 구성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요소들의 총체인 동시에 이들이 빚어낸 유기적 결합물이라고 할 수 있다. 3·1 만세운동의 진정한 주역은 어쩌면 민족과 국가를 위한 진심을 보이고 사라져간 민중들,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유관순들이었다. 민중이란 특정 계급이나 계층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국가와 사회를 이 루며 역사를 구성하는 유동적인 계급, 계층의 연합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민중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학생, 노동자, 농민, 상인들은 당시 시대상황을 정확히 꿰뚫어보지는 못했지만, 민족의 앞날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행동하였고, 이를 통해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위대한 힘의 존재기반은 민중에게 있으며, 이는 핍박과 분열, 갈등이 빚어낸 시대의 소음 속에서 일순간에 타오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오늘날의 3·1 운동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하나의 그림이 있다. 바로 윌리엄 터너의 명화 <전함 테메레르>.

 


영화 <007 스카이폴>에는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뒤로하고 나이가 들어 노쇠한 스파이 제임스 본드가 한 점의 그림을 응시하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쓸쓸한 뒷모습을 여과 없이 노출하며 그가 바라본 그림은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였다. 테메레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순간에 조국을 구하고 영국의 전성기를 이끈 영웅이었다. 1805년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의 유럽제패를 저지하고 자국을 수호하기 위해 트라팔가 해전에 임한다. 전장에서 테메레르는 위기에 처한 영국의 기함 (flagship) 빅토리호를 구하고 두 척의 배까지 나포하는 전적을 올린다. 이를 기반으로 한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는 19세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

 


윌리엄 터너의 그림에 표현된 테메레르는 찬란하게 빛났던 트라팔가에서의 모습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구시대의 유물로 쇠락한 모습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빛낸 존재였지만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덩치 큰 범선은 작은 증기선에 의해 예인되며 해체되기 전 마지막 항해를 하고 있다. 은퇴의 기로에 선 스파이는 그림 속 범선을 보며 세월의 무게와 시대의 변화를 읽었던 것일까? 인간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서도 이렇게 처절하고 애잔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새삼 놀라고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다.

 


윌리엄 터너와 그의 대표작 <전함 테메레르>'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를 대신하여 2020년부터 영국 20파운드 지폐의 새로운 모델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전함 테메레르>BBC에서 선정한 가장 위대한 영국 그림으로 꼽히기도 했다. 터너와 그의 작품 <전함 테메레르>가 영국인들에게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라팔가 해전 승리후 런던에는 트라팔가 광장이 조성되었고 광장의 중앙에는 승장 넬슨 제독의 동상이 세워졌다. 넬슨이 승선했던 기함 빅토리호는 포츠머스 해군기지에 영구 보존되고 있다. 반면 1838년 영국 해군은 테메레르호를 런던의 운수업자에게 팔아넘겼고 배를 산 운수업자는 배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템즈 강가로 산책을 나간 터너는 이 위대한 선박의 마지막 항해를 그림으로 남겼던 것이다.



트라팔가에서 테메레르는 넬슨 제독의 생명을 구하진 못했지만 조국 영국을 구했다. 테메레르의 빅토리호 구원이 없었다면 19세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아닌 저물어가는 일몰이었을지도 모른다. 윌리엄 터너는 시대를 빛내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영웅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를 보냈다. 모두가 기억하는 넬슨 제독, 빅토리호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테메레르도 있었다고그것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라고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최대의 찬사는 그를 오래도록 기억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1919년 고통스럽고 핍박 받는 현실 속에서도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고 응답했던 사람들, 그들의 정신, 투쟁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까지도 기꺼이 감수한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이들이다. 그들은 일제에 협력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고 집안을 일으켰으며, 해방후에도 단죄되지 않고 살아남아 우리 사회의 주류를 형성했다. 진정한 역사 바로잡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간 이름 없는 민중들, 수많은 유관순들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역사의 페이지에 그녀의 몫도 있을까? 우리는 윌리엄 터너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그들을 기억해주어야 한다. 그들의 정신과 투쟁, 숭고한 희생은 <전함 테메레르>가 되기 충분하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희생해가며 세상의 진보를 위해 고독한 걸음을 내디딘 이름 없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201610월 광화문을 밝힌 촛불은 20174월까지 이어졌고, 오히려 전국 150여개 시군으로, 전세계 31 개국 71개 도시로 퍼져나갔다. 누군가는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했지만, 1,700만여개의 빛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내며 찬란하게 빛났다. 독일의 공익정치 재단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에 참여한 우리 국민을 2017'에버트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특정 국가의 국민이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상이 제정된 이래 최초의 사례였다. 재단은 민주적 참여권의 행사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는 생동하는 민주주의의 필수적 요소이기 때문에 집회에 참여한 모든 분들을 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3·1 운동의 정신은 아직 살아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그들의 후손으로서 꺼지지 않는 촛불로 세상의 진보를 이루어나아가고 있다. 쉽사리 변하지 않는 사회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사람'''이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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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천 개의 고원을 만나다 - 들뢰즈-가타리와 만난 대중지성 청년의 철학-생활 에세이
고영주 지음 / 북드라망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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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천개의 고원을 만나다>의 저자 고영주는 <천개의 고원>을 읽고 이를 자신의 삶과 연관하여 글을 쓰고, 이를 묶어 책으로 펴냈다. <천개의 고원>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쓴 철학서다. 이들은 무의식과 욕망의 관점에서 사회 배치를 분석하고 절대불변하는 진리를 부정하고 다양체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행위도 이러한 관점으로 분석될 수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언제나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을 포착해내고 그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 그를 가려낸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집단이더라도, 가족이든 다른 뭐든 간에 나아가 그 사람에게 고유한 무리들을 찾아내고 그가 자기 안에 가두어 놓고 있는, 아마 완전히 다른 본성을 가졌을 그의 다양체들을 찾아낸다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오랫동안 기다려 온 둘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들 또는 딸로 세상에 태어난다. 또 가족의 보살핌 아래 성장하고 마침내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또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 가정이란 단어를 정의한다면 한 가족이 함께 살아가며 생활하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 가정은 인간이 태어나 하나의 인격체로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회적 동물로 진화하기 위한 최소 단위의 생활 공동체인 것이다. 가정은 정형화할 수 없기 때문에 형태와 구성은 제각각이자만 하나의 가정은 저마다의 사연과 추억으로 하나의 우주적 세계를 이룬다.

 

내 아이가 눈을 뜨고 나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친 순간, 처음으로 지은 미소, 첫 걸음마, 처음으로 말을 한 순간... 이는 내가 자식으로서 부모님과 공유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부모로서 앞으로 내 딸과 공유해갈 기억들이기도 하다. 앞으로 나와 내 가족은 삶의 어떤 순간순간들을 공유하며 추억을 만들어나갈까?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사랑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지 결코 빠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또한, <청년, 천개의 고원을 만나다>을 읽으며 아이가 성장하면서 더 많은 기회와 선택을 통해 더 많은 고유한 본성을 찾아내주는 것 또한 부모의 역할이자 진정한 사랑을 이루는 행위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인간이 자기 마음속에 자신만의 특별한 부모, 양육자의 상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현실의 부모가 부재하거나, 부모와 아이가 너무 달라서 서로 이해하기 어렵거나, 부모가 정신적, 정서적 자원이 부족해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자신들 내면의 양육자 상을 통해 에너지를 보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양육자 상이 주로 모성의 이미지인 것은 기술적이고도 역사적인 한계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개의 고원>의 저자들의 주장처럼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돌봄과 육아의 이론은 존재하지 않듯이 그것은 모성의 이미지도, ‘부성의 이미지도 될 수 있고 그보다 훨씬 더 기상천외하고 다양한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 고영주가 추석에 직접 장작을 피우고, 돌판을 옮겨 고기를 구워 제사를 준비하면서 명절의 딱딱한 환경이 낭만적인 캠핑의 리듬으로 재탄생되었던 사례를 보며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제사의 본질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은 것아닐까? 그 사람이 현재는 죽고 없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제사를 지내는 행위도 많은 부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혼 이전에 돌아가셔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시댁 어르신들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수많은 음식을 준비하는 것, 제사를 지내기 위한 준비는 대부분 여성들이 도맡아서 하는 것들 말이다. 삶의 다양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는 <천개의 고원>을 읽고 나서 제사를 지내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 생각났다. 얼마 전 읽었던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에 등장하는 사례가 마침 떠올랐던 것이다.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 시선으로부터 중 -

 

<시선으로부터>에서 제사는 고인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었던 가족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제사를 지내며 추모를 하는 행위로 묘사된다. 이것이 저자 고영주가 언급한 리토리넬로아닐까? 바로 차이반복을 통한 시공간의 재구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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