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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천 개의 고원을 만나다 - 들뢰즈-가타리와 만난 대중지성 청년의 철학-생활 에세이
고영주 지음 / 북드라망 / 2020년 11월
평점 :
<청년, 천개의 고원을 만나다>의 저자 고영주는 <천개의 고원>을 읽고 이를 자신의 삶과 연관하여 글을 쓰고, 이를 묶어 책으로 펴냈다. <천개의 고원>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쓴 철학서다. 이들은 무의식과 욕망의 관점에서 사회 배치를 분석하고 절대불변하는 진리를 부정하고 다양체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행위도 이러한 관점으로 분석될 수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언제나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을 포착해내고 그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 그를 가려낸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집단이더라도, 가족이든 다른 뭐든 간에 나아가 그 사람에게 고유한 무리들을 찾아내고 그가 자기 안에 가두어 놓고 있는, 아마 완전히 다른 본성을 가졌을 그의 다양체들을 찾아낸다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오랫동안 기다려 온 둘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들 또는 딸로 세상에 태어난다. 또 가족의 보살핌 아래 성장하고 마침내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또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 가정이란 단어를 정의한다면 한 가족이 함께 살아가며 생활하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가정은 인간이 태어나 하나의 인격체로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회적 동물로 진화하기 위한 최소 단위의 생활 공동체인 것이다. 가정은 정형화할 수 없기 때문에 형태와 구성은 제각각이자만 하나의 가정은 저마다의 사연과 추억으로 하나의 우주적 세계를 이룬다.
내 아이가 눈을 뜨고 나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친 순간, 처음으로 지은 미소, 첫 걸음마, 처음으로 말을 한 순간... 이는 내가 자식으로서 부모님과 공유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부모로서 앞으로 내 딸과 공유해갈 기억들이기도 하다. 앞으로 나와 내 가족은 삶의 어떤 순간순간들을 공유하며 추억을 만들어나갈까?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사랑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지 결코 ‘빠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또한, <청년, 천개의 고원을 만나다>을 읽으며 아이가 성장하면서 더 많은 기회와 선택을 통해 더 많은 고유한 본성을 찾아내주는 것 또한 부모의 역할이자 진정한 사랑을 이루는 행위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인간이 자기 마음속에 자신만의 특별한 부모, 양육자의 상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현실의 부모가 부재하거나, 부모와 아이가 너무 달라서 서로 이해하기 어렵거나, 부모가 정신적, 정서적 자원이 부족해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자신들 내면의 양육자 상을 통해 에너지를 보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양육자 상이 주로 ‘모성’의 이미지인 것은 기술적이고도 역사적인 한계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개의 고원>의 저자들의 주장처럼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돌봄과 육아의 이론은 존재하지 않듯이 그것은 ‘모성’의 이미지도, ‘부성’의 이미지도 될 수 있고 그보다 훨씬 더 기상천외하고 다양한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 고영주가 추석에 직접 장작을 피우고, 돌판을 옮겨 고기를 구워 제사를 준비하면서 명절의 딱딱한 환경이 낭만적인 캠핑의 리듬으로 재탄생되었던 사례를 보며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제사의 본질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은 것’ 아닐까? 그 사람이 현재는 죽고 없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제사를 지내는 행위도 많은 부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혼 이전에 돌아가셔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시댁 어르신들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수많은 음식을 준비하는 것, 제사를 지내기 위한 준비는 대부분 여성들이 도맡아서 하는 것들 말이다. 삶의 다양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는 <천개의 고원>을 읽고 나서 제사를 지내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 생각났다. 얼마 전 읽었던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에 등장하는 사례가 마침 떠올랐던 것이다.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 시선으로부터 중 -
<시선으로부터>에서 제사는 고인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었던 가족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제사를 지내며 추모를 하는 행위로 묘사된다. 이것이 저자 고영주가 언급한 ‘리토리넬로’ 아닐까? 바로 ‘차이’와 ‘반복’을 통한 시공간의 재구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