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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의 맛! - 우리 문화유산 무엇을 볼 것인가
홍지석 지음 / 모요사 / 2017년 7월
평점 :
이 책 '답사의 맛'은 표지에 등장하는 질문 "우리 문화유산 무엇을 볼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고민의 결과물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문화유산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저자가 고민 끝에 이 책에 담아내고자 한 우리 문화유산 답사의 방향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산해진미가 아닌 정갈하게 차려진 한 그릇의 김치찌개와 같은 답사이다. 저자는 본 도서를 통해 느린 호흡의 여유로운 답사 형식, 차분한 호흡의 사색과 치유의 시간을 누리는 답사여행을 지향한다. 거창한 답사가 아닌 작품 한 두 점을 보아도 수십 점의 작품을 보는 것 못지 않은 충만감을 느끼는 산해진미로 풍성한 밥상이 아닌 매콤한 김치찌개 한 그릇과 같은 답사기… 매력적이지 않은가?
둘째, 현장에서 만나는 유물들을 하나의 미술작품으로서 향유가 가능한 답사이다. 우리가 지역 답사에서 만나는 문화유산들은 역사의 발전, 선인들의 기억과 경험, 지혜를 반영하는 유물이자 사료이며 동시에 인간의 감성과 지성에 호소하는 '예술작품'이다. 따라서 저자는 본 도서를 통해 오직 답사를 다녀본 사람만이 알고 있는 각별한 즐거움을 제공하고자 한다. 작품의 실제 규모, 미세한 색감, 재료의 질감, 광택이 주는 자극, 작품이 주변환경과 어울려 자아내는 미묘하고 독특한 분위기 등은 오로지 답사 현장에서만 체감할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한 각별한 즐거움을 오롯이 아우른 감각적인 답사기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의 큰 방향성을 두고 저자는 세부 기준을 정함으로써 구체적 답사지를 선정하였다. 구체적인 세부기준은 다음과 같다.
이 세가지 세부 기준 중 저자는 2번째 기준을 주요하게 검토한 듯 하다. 저자가 언급하는 두 번째 세부기준, 독특한 매력을 지닌 빼어난 작품이란 한국 미술사에서 갑자기 익숙한 미의 표준이나 관습적 형식을 벗어난 파격적인 작품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의해 선택된 작품들은 4등신의 강렬한 외양을 지닌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 성덕대왕 신종으로 대표되는 한국 종의 위대한 전통에서 벗어난 보신각종 등이 있다. 구체적인 각각의 답사의 소제목은 다음과 같다.
결론적으로 이 책 '답사의 맛'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한국의 규범적 걸작들에서 벗어난 독특한 매력을 가진 작품 몇 가지에 주목하고 이를 여유로운 호흡의 느린 답사, 그리고 그러한 답사를 수행하는데 있어 현장에서만 체감할 수 있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가이드와 같은 답사기이다.
본 도서를 읽으며 미(美)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미(美)의 세계에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까?'하는 생각… 단순하게 생각해보아도 미(美)의 기준은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절대적이지 않다. 미의 기준은 본 도서에 등장하는 '종'이나 '불상', '석탑'의 사례처럼 시대에 변화에 따라 발전하기도 혹은 퇴보하기도 하며, 때로는 빅뱅 방식처럼 파격적인 형태로 갑자기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같은 시대라 하더라도 문화권의 차이에 따라 미의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다. 문명의 교류에 의해 그 격차는 많이 좁혀졌지만 동양과 서양의 미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또한, 시대와 문화권이 동일하더라도 미의 기준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서로 다른 예술관, 가치관, 미적 취향 속에서 옳고 그름의 문제, 우열관계가 성립될 수 있을까? 여기에 본 도서의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예술작품들을 통해 독자들은 가치의 교차로, 취향의 갈림길에 서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저자가 제시하는 작품들은 한국미술사의 규범적 걸작들이 아닌 오히려 그 규범에서 벗어나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맛보기로 도서에서 언급한 가치의 교차로, 취향의 갈림길의 사례를 든다면 화순 운주사의 천불천탑을 들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함께 언급된 작품이 이탈리아 로렌초 베르니니의 <아폴로와 다프네>이다. 베르니니라는 최고의 조각가의 최고 걸작에 속하는 작품이지만 이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은 어디에서 작품을 찍을지 몰라 당황하게 된다. 이 작품은 작품을 대표할만한 결정적인 지점, 이미지를 찾기 힘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람객들은 어느 쪽에서 봐도 극적이고 아름다운 이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손쉽게 확보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품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이 있다. 부분과 전체의 균형과 비례, 안정감을 중시하는 고전주의자들이다. 힐데브란트는 조각가들에게 '환조 (3차원의 입체조각)를 만들 때는 부조 (평면상에 입체적으로 조각하는 것)처럼 만들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환조를 만들 때 입체성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억눌러 전체성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이는 환조의 360도 방향 모두를 존중하기보다 부조처럼 어느 한면에 에너지를 집중해 전체를 제시하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균형과 안정감이 예술이 중시해야 할 가치인가? 아니면 다양성과 역동성을 더 추구해야 하는가? 다양한 불상과 탑들이 일정한 규칙 없이 존재하는, 부분과 전체간의 균형과 통일성이 없는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평가절하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와 같이 이 책에는 미적 가치를 탐구하는 질문과 사색들이 역사적 사실과 맞물려 흥미로운 지점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최초의 근대 조각가 김복진의 거대 불상 도전기, 최초의 전형석탑의 기원을 찾아 떠나는 왕년의 답사광들의 경주 순례기, 1942년 옛것을 좋아하는 호고(好古) 일당의 조선백자 유람기를 현 시점에서 추적하는 이야기 등은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우리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당신의 관점은 무엇인가? 저자의 가이드에 따라 답사를 진행하며 당신이 추구하는 미적 가치와 취향을 토대로 TV 오디션 프로그램의 평가위원처럼 평가를 해보는 건 어떨까?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가? 당신의 점수는 몇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