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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요테의 놀라운 여행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3
댄 거마인하트 지음, 이나경 옮김 / 놀 / 2021년 4월
평점 :
“딸아이 하나와 단둘이 집에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머지 가족들의 귀갓길에 그들에게 끔찍한 일이 생긴다면 나와 이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인생이 고꾸라지는 것은 막을 수 없을 텐데, 그 무너진 인생을 과연 돌릴 수 있을까? 남은 우리는 어떤 가족이 될 것인가? 과거와 상실을 잊어버리지 않은 채로 과연 우리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코요테의 놀라운 여행>은 어느 날 밤 작가 댄 거마인하트의 머리를 스친 우울한 상상에서 탄생했다. 작가는 소설 속 코요테의 원래 가족 구성원과 마찬가지로 아내와 세 딸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불현 듯 머릿속을 스친 생각에 대한 답으로서 이 소설을 쓰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소설을 읽는 동안 자연히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한번쯤 떠올려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에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어떠한 형태로든 그들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책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마음을 완전히 산산조각 냈다가 3백여 쪽의 페이지에 걸쳐 그것을 조금씩 단단히 이어 붙여주는 책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라는 소설의 홍보문구에 누구나 공감하게 될 것이다.
소설은 엄마와 자매를 잃고 그 비극적인 상실을 기억하지 않기로, 그들이 존재했던 것조차 마음속에서 잊기로 아빠와 함께 다짐한 열두 살 소녀의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 코요테는 일곱 살 때부터 5년째 아빠 로데오와 함께 스쿨버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미국 방방곡곡을 누비눈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여정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5년 전 코요테는 자동차 사고로 사랑하는 엄마와 언니와 동생을 잃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견딜 수가 없었던 아빠와 딸은 비극적인 상실과 마주하지 않기를 택하여 집을 떠나 움직이는 버스를 집으로 삼았다. 자연히, 이별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코요테의 일상에도 깊이 심어진다. 캠핑장에서 사귄 마음 맞는 친구와도 지금부터 영영 헤어질 것을 알면서 작별 인사 대신 내일 만나자고, 말뿐인 약속을 하는 식이다.
“나는 작별이 뭔지 안다. 그리고 작별이 싫다. 가장 좋은 작별은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P. 57)
“과거를 돌아보는 건 아무 소용 없는 일이야 코요테. 안돼 아가. 거기로 돌아가지 마. 네 행복은 여기. 지금에 있어. 예전 일은 다 잊어야 해.” (P. 72)
코요테와 로데오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과거를 직면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그들만의 규칙을 따른다. ‘아빠를 아빠라고, 딸을 딸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 떠나보낸 가족이나 과거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을 것. 미국 어디든 달려갈 수 있으나 워싱턴 주의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은 것.’ 등이 바로 부녀간의 규칙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코요테에게 걸려온 할머니의 전화 한 통은 이 모든 규칙을 무시해버릴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이건 추억상자야.” 엄마가 말했다. 여자아이 셋과 엄마는 그 상자를 채웠다. 사진이랑 편지, 추억과 머리카락과 작은 보물들로. 그들 자신과 상대의 일부, 함께한 삶의 조각들을 모아서.” (P. 65)
코요테는 할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5년 전에 엄마와 자매와 함께 추억 상자를 묻은 고향의 공원이 사라질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 코요테는 절대로 그 상자를 잃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위치한 플로리다 주로부터 집은 5,793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불도저가 공원을 밀어버리는 건 고작 나흘 뒤다. 게다가 규칙에 의지해 삶을 지탱해온 아빠는 행선지를 알면 당장 브레이크를 밟을 것이다. 상자를 찾으러 가기로 결심한 코요테는 나름의 방도를 찾는다. 아빠가 알면 절대로 가지 않을 거란 말은 곧, 아빠가 행선지를 모르는 채로 자기를 데려가게 만들면 되는 것이니까...
코요테는 자신의 계획에 길가의 승객들을 동참시킨다. 이상과 현실 속에서 갈등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음악가 레스터, 가정 폭력을 겪다 떠나온 에스페란사 부인과 추후 코요테의 친구가 되는 부인의 아들 살바도르, 동성애자임을 고백했다가 가족에게 거부당하고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가출한 밸, 그리고 우연히 코요테의 삶에 들어오게 된 세계에서 제일 귀여운 고양이 아이반까지...
“고양이와 내가 서로 마주 본 그때 뭔가가 달라졌다. 아주 거대한 뭔가가. 아주 오랫동안 우주에 가만히 있었던 것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거나 움직이고 있던 것이 드디어 멈추었거나. 무슨 일이었든. 중대한 사건이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P. 14)
추억 상자를 향한 그들과의 동행에서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며 코요테는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우정을 느끼고 작별에 대한 심정의 변화도 겪게 된다. 결국 여정을 거치는 동안 코요테의 작별에 대한 생각도 다음과 같이 변하게 된다.
“알고 보니 작별에 대한 내 생각도 틀렸다. 최고의 작별은 상대를 두고 떠나지 않는 것이다.” (P. 190)
여정의 시작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아픔을 잊기 위해서 과거를 돌아보지 않기로 한 약속부터 였다. 따라서, 여행을 시작하면서 ‘아빠’는 ‘로데오’로 딸은 ‘엘라’라는 예쁜 이름 대신 ‘코요테’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새로운 삶인 만큼 새 출발 한다는 느낌으로 성도 ‘선라이즈’로 바꿨다. 하지만 여정을 이어가면서 코요테는 기억한다는 건 과거에서 사는 게 아니라, 지금 현재 기억하고 있다는 것임을, 현재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엄마랑 언니랑 동생을 오늘 지금 기억하는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엄마랑 언니, 동생 없이는 하루도, 일분도, 일초도 더 살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게 된다. 또 자신이 필요한 것은 여행의 파트너가 아니라 ‘아빠’임을 당당하게 외친다.
“그럴 수 없어.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지금 보고 싶어. 오늘 이 순간에. 사랑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엄마랑 언니, 동생을 지금 사랑해. 오늘 이 순간에.” (P. 281)
아빠와 딸은 여행을 하며 ‘히피’의 삶을 지향한다. 소설을 읽으며 오늘날의 우리는 히피운동을 어떻게 봐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히피(Hippie 또는 Hippy)란 196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 LA 등지 청년층에서부터 시작된, 기성의 사회 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 자연으로의 회귀 등을 주장하며 탈사회를 지향했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히피운동은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 속에서 현실을 거부하고 이상을 추구했던 젊은이들의 치기 어린 반항에서 비롯된 실패한 혁명에 불과한 것일까?
“삶은 그들을 계속 쓰러뜨리지만 그들은 계속 일어나서 싸웠다. 두 사람이 한 번쯤은 이기면 좋을 것 같았다. 그들에겐 그럴 자격이 있었다. 세상이 그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P. 207)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여행의 동반자가 되지만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도 달랐고, 그들 각자가 도달하는 진리도 저마다 달랐다. 1960년대 히피들은 현실적 제약에서 벗어나 더 나은 세상을 갈망했고,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추구해나갔다. 바로 반권위주의와 사회변혁의 분위기는 같았지만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정치와 환경운동에 집중했던 이들이 있던 반면 테크놀로지에 주목했던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테크놀로지를 통해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홀 어스 카탈로그 (Whole Earth Catalog)>라는 잡지가 바이블이었다.
<홀 어스 카탈로그>는 당시의 첨단기술 또는 아직은 기술로 구현되지 않았지만 히피사상을 현실화시킬 빛나는 아이디어로 무장된 제품과 서비스들이 소개된 잡지였다. 자유와 공생, 공유와 개방의 히피문화는 이들의 존재로 인해 오늘날의 PC와 인터넷, SNS로 구체화될 수 있었고,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과 트위터라는 글로벌 혁신기업들도 탄생할 수 있었다. 시대의 화두로 남아 있는 스티브 잡스의 말 "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살아가라)"도 <홀 어스 카탈로그>의 폐간호에 등장한 세상과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10대의 잡스가 읽고 기억하고 있다가 세월이 흘러 재인용한 것이다. 잡지의 창시자 스튜어트 브랜트는 1995년 타임지 기고문을 통해 PC와 인터넷 혁명은 모두 대항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의 기고문의 부제는 "우리는 모두 히피에게 빚을 졌다."였다.
삶은 인간의 예측 가능한 영역을 벗어나서 자리해 있다. 우리는 삶에 대한 진실의 한 조각이라도 얻기 위해 간절히 매달리지만, 진실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 언저리에서 표류하며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삶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날 일을 선택할 수 없지만 그것에 대처하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저마다 삶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와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진지하게 탐구해나가는 것, 또 그러한 과정에서 나름의 대안과 답을 찾아가는 것이 히피문화라 한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한명의 히피로서 저마다의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래서 우린 지금 여기 있다. 아직도 달리고 있지만,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건 아니다. 방랑하고 있긴 하지만 찾고 있기도 하다.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여자아이의 숨결에 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햇빛과 함께 날아 다니지만 흙을, 뿌리를 내릴 곳을, 꽃을 피울 곳을 찾고 있다. 그게 우리다. 그게 나와 로데오다. 그게 나와 아빠다.” (P. 357)
가족의 소중함, 관계의 각별함을 일깨워주는 코요테의 놀라운 여정은 우리가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 동안 얼마나 더 사랑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스쿨버스 안에서 진실된 삶을 향한 여정의 동반자로 만난다. 그들은 왜 스쿨버스를 타고 여정을 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세상이라는 교실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여정을 해야만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건 아닐까? 그러면서 소설은 우리에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에 떠밀리지 말고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비록 속도를 조금이라도 올리는 순간 차체가 덜덜 떨리고, 때론 브레이크도 말을 잘 듣지 않는 구식 스쿨버스라 할지라도 그 방향만 정확하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뭔가를 향해 달려가는 건 뭔가로 부터 달려가는 것보다 낫다. 훨씬 낫다.” (P. 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