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유럽 - 도시와 공간,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여행
조성관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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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작가님의 <언젠가 유럽>의 부제는 “도시와 공간,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다. 사실 작가님 책을 접한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몇 년전 우연히 찾게 된 <런던이 사랑한 천재들, 찰리 채플린에서 버지니아 울프까지>를 읽으며 작가님의 책을 처음 접했다. 당시 나는 학창시절부터 고대해온 런던여행을 준비하면서 관련정보들을 찾아보던 중이었는데, <런던이 사랑한 천재들>은 단순히 여행지에 대한 정보와 추천코스만을 나열하는 여타의 여행서적과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매력을 가진 책이었다. 도시를 대표하는 6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구성하여 런던이라는 도시에 대해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런던이 사랑한 천재들>의 독특한 접근방식에 매료되어 런던에까지 가져가서 여행중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본격적으로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책 날개를 보면 간략한 저자 소개가 있는데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천재 연구가”라는 작가님을 대표하는 수식어가 있다. 이는 ‘도시를 사랑한 천재들’ 시리즈에 기인한 것이다. 15년전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하던 중 조성관 작가님은 모차르트와 교감을 나눈 진귀한 경험을 하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도시 공간에 남겨진 천재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기획했다. 2007년 <빈이 사랑한 천재들>이 처음으로 출간되었고, 뒤이어 프라하, 런던, 파리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올해 시리즈의 마지막인 서울편이 출간된다고 하니 이 또한 기대가 크다.

<언젠가 유럽>의 서문에는 이 책의 집필 동기가 서술되어 있고, 이를 통해 왜 이 책에 “도시와 공간,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라는 부제가 붙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유럽의 대표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나는 예상치 못한 많은 부수적인 스토리들을 수확했다. 그것은 천재들의 기나긴 삶의 여정에서 수습한 이삭이었다. 그러나 천재 시리즈에서는 이 같은 주변적인 이야기들은 부득이 생략할 수 밖에 없었다. <언젠가 유럽>은 이를 여행기의 형태로 쓴 것이다.” (p. 6 ~ 7)

‘도시를 사랑한 천재들’은 거장들의 삶과 작품에 대해 전문적 식견을 쌓은 조성관 작가님의 안내를 받으며 거장들의 삶을 깊이 파고드는 '책으로 하는 여행'이라는 독특한 컨셉을 가진 시리즈다. 이는 거장의 삶과 작품에 매료된 사람들은 물론 문학기행 등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현재 여름휴가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태로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없는 대부분의 독자들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좋은 여행 안내서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언젠가 유럽>은 ‘도시를 사랑한 천재들’ 시리즈에서 담아내지 못했던 점들을 다루며 뭔가에 쫓기듯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알레그로 (allegra)’가 아닌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는 ‘안단테 (andante)’ 여행을 지향하고 있다.

“코로나 창궐 이후 세상은 달라졌다. 유럽 여행도 더 이상 코로나 이전과 같은 양상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패턴이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나는 이 변화를 ‘지적인 개인주의 여행’이라고 정의한다.” (p. 8)

<언젠가 유럽>은 유럽의 6개 도시 (파리, 빈, 런던, 프라하, 베를린, 라이프치히)를 다루고 있다. 작가님은 천재 시리즈가 정장 차림으로 빈 필하모닉의 말러 교향곡을 듣는 것이라면, <언젠가 유럽>은 캐주얼 차림으로 쇤브룬 궁전 마당에서 앙드레 류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감상하는 것이라는 책의 컨셉을 기가 막히게 설명하는 비유를 서문에 남겼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서두에서 각 도시를 대표하는 영화를 소개함으로서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며 도시에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는 부분이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통해 파리를 소개하고, 연인의 낭만을 담은 영화 <비포 선라이즈>로 빈이라는 도시에 대한 첫인상을 독자들에게 강렬하게 심어주고 있다.

런던을 여는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 <노팅힐>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영화이고 개인적인 추억이 깃든 영화이긴 하지만 뒤이어 등장하는 트라팔가 광장과 넬슨 제독, 내셔널 갤러리 등을 고려하면 런던을 소개하는 영화로 <007 스카이폴>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007 스카이폴>을 보면 인상 깊은 하나의 장면이 등장한다.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뒤로하고 나이가 들어 노쇠한 제임스 본드가 한 점의 그림을 응시하고 있는 장면… 쓸쓸한 뒷모습을 여과 없이 노출하며 그가 바라본 그림은 윌리엄 터너의 명화 <전함 테메레르>였다.

테메레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순간에 조국을 구하고 영국의 전성기를 이끈 영웅이었다. 책에도 소개하고 있지만 1805년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의 유럽제패를 저지하고 자국을 수호하기 위해 트라팔가 해전에 임한다. 전장에서 테메레르는 위기에 처한 영국의 기함 (flagship) 빅토리호를 구하고 두 척의 배까지 나포하는 전적을 올린다. 이를 기반으로 한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는 19세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윌리엄 터너의 그림에 표현된 테메레르는 찬란하게 빛났던 트라팔가에서의 모습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구시대의 유물로 쇠락한 모습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빛낸 존재였지만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덩치 큰 범선은 작은 증기선에 의해 예인되며 해체되기 전 마지막 항해를 하고 있다. <007 스카이폴>에서 은퇴의 기로에 선 스파이는 그림 속 범선을 보며 세월의 무게와 시대의 변화를 읽었던 것일까? 인간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서도 이렇게 처절하고 애잔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새삼 놀라고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다.

<언젠가 유럽>이 다루고 있는 6개의 도시 중에서 나는 지금까지 3개의 도시만을 방문했다. 작가님의 체계적인 큐레이션을 받으며 예전 여행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예술가들의 성지 몽마르트르는 파리 여행 중 들렸던 곳이지만 모딜리아니와 피카소의 단골 술집이었다는 ‘라팽 아질’이나 ‘몽마르트르 미술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과 관련이 있는 곳이라는 ‘카트린 아줌마 식당’은 미처 알지 못했던 곳이다. 추후에 다시 파리를 방문하게 된다면 방문해보고 싶다. 또한 아직 가보지 못한 도시 중에서는 프라하를 가장 먼저 방문하고 싶다. 그 이유는 책에서 작가님이 모든 해외여행 경험을 통틀어 지구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간이라고 강력 추천하신 프라하의 구시가 광장을 가보고 싶어서다.

2020년 8월 현재, 예년과 같을 경우 한창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을 기간이지만, 해외여행은 커녕 예전과 같은 자유로운 여행 자체를 생각할 수 없는 요즈음의 분위기로 인해 나는 이른바 ‘코로나 블루’로 지칭되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조성관 작가님의 신작 출간 소식을 듣게 되었고 바로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서점을 통해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언젠가 유럽>이라는 책의 제목은 조만간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렇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있다. 또한, 다시 해외여행을 떠나게 될 근미래의 어느 날을 연상시키는 반가운 제목이기도 하다. 더더욱 마음을 설레게 한 건 책 표지에 쓰여있는 “우리는 언제나 떠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였다. 내게 <언젠가 유럽>은 예전 여행의 추억과 다가올 여행의 설레임을 동시에 주는 책이었다. 마스크와 방콕 생활로 지친 당신, <언젠가 유럽>을 통해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지난 여행의 추억과 새로운 여행에 대한 설레임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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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울립 2021-11-29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에 소개된 도시 중 3개도시만 가 봤어요..조만간? 다시 유럽에 갈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