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페미니즘 선언
낸시 프레이저.친지아 아루짜.티티 바타차리야 지음, 박지니 옮김 / 움직씨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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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정말 육아휴직 갈꺼니?"

세상에 태어난 딸에 대한 축하인사 다음으로 회사의 경영지원부문 임원이 내게 건넨 말이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해 회사는 남성육아휴직을 일정기간 의무화하기로 하였지만 아직 안정적으로 정착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의 인사와 복지정책을 총괄하는 경영지원부문 임원의 농담인 듯 진담인 듯 건넨 말 한마디는 내게 항거할 수 없는 압박이었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 약속,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는 걸 일상에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평범한 남자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것의 고충을 느끼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이는 내가 ‘페미니즘‘이라는 화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가시화되고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 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누적된 결과가 아닐까?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Feminism is for Everybody)>에서 벨 훅스는 페미니즘을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한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같은 정의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의 주체에 대해 주목할 뿐 그것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하지 않는다. 즉 페미니스트가 반대하는 것은 '남성'이 아니다.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남성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또 여성도 때론 성차별주의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주장이다. 벨 훅스는 페미니즘을 궁극적으로 모든 형태의 성차별을 지양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자유와 평등, 해방을 위한 운동으로 정의하며 페미니즘을 한단계 진화시켰다고 생각한다.

<99%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을 때, 궁금했던 것은 “99%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의 의미였다. 사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에는 관점에 따라 수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따라서, 페미니즘이 대중화되고 보편화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페미니즘 운동이 어떤 것이고 무엇을 지향하는 것인지 분명히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브레히트의 말처럼 구체적이지 않은 진리는 인간을 모호한 주관적 확신으로 이끌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이어야 한다. 영화배우 메릴 스트립은 한 인터뷰에서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요?’라는 질문에 ‘저는 휴머니스트입니다. 균형을 추구하죠.’라고 대답하였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가를 연기하고 영화판 밖에서도 성차별 문제를 끊임 없이 제기하고 여성 시나리오 작가들을 위한 펀딩을 진행하는 등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명확히 선을 그은 것이다. 성차별주의에 반대하면서도 페미니스트임을 부정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비단 메릴 스트립 뿐만이 아니다. 레이디 가가와 켈리 클락슨도 같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99% 페미니즘“의 지향하고 있는 바는 무엇일까?

“이 페미니즘은 전통적으로 규정된 대로 스스로를 ‘여성의 쟁점women’s issues’에 한정 짓지 않는다. 혹사되고, 지배당하며, 억압받는 모두를 위해 서 있는 인류 전체의 희망이 되기를 목표한다. 우리는 이를 99퍼센트의 페미니즘이라 부른다.“ (p. 57)

“99% 페미니즘“은 젠더 뿐만 아니라 인종, 계급, 생태 등 인류 사이에서 상호교차되며 착취와 억압과 갈등을 유발하는 모든 것들에 대항하는 운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99% 페미니즘“은 분리된 운동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협력적인 연대적 움직임이며, 벨 훅스가 제시한 페미니즘 보다 더 광범위하고 더 급진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인류 보편적인 고민과 고질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적 공감을 바탕으로 한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해당 이슈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이들만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기 때문에 이슈 자체가 대중의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마이너한 이슈로만 남아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싸우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젠더이슈를 살펴보면,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인류의 지적 전통을 자연스레 전수 받으며 세계를 조망하는 남성에 비해 여성은 끊임 없이 자신을 단속해야 하며 아버지의 어깨 위로 올라가 세상을 조망하지 못한다. 남성 중심의 역사와 세계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혜택을 받아온 남성들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젠더이슈를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이슈 해결에 동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99% 페미니즘“은 특정 이슈 해결에 집중하기 보다 상호교차적인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인류 보편적인 이슈에 의해 피해를 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권리와 기회의 평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미약한 힘을 모아 연대하자는 외침인 것이다.

조금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99% 페미니즘“의 광범위한 사회적 연대는 장점인 동시에 단점으로 작용할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또한 추구하는 방식이 너무나 급진적이라는 측면에서다. “99% 페미니즘“은 폭력은 모든 국가, 계층, 인종, 민족 집단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통틀어 발견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구조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 모든 급진적 움직임이 공동의 반자본주의 혁명에 함께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페미니즘은 지배와 복종, 강압, 억압과 차별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고 대등한 입장에서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고 상호성장과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다. 더군다나 “99%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광점위한 사회적 연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보다 온건하고 점진적인 접근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가정에서,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페미니즘의 비전을 현실화하는 노력을 충분히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첫 걸음은 페미니즘이 가진 부정적 이미지를 종식시키고 그것이 가진 비전을 제대로 알리고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유리 천장을 부수고, 그래서 대다수가 바닥에 쏟아진 유리 조각들을 치우게끔 만드는 일에 관심이 없다. 전망 좋은 사무실을 차지한 여성 CEO 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게 아니라 CEO와 전망 좋은 사무실이란 것을 없애 버리길 원한다."(p. 48)

물론 페미니즘으로 가는 길은 하나일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과 삶이 다르므로 각자의 삶에 말을 걸고 삶의 사소한 부분부터 변화에 대한 의지를 불어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작은 순간들이 누적되어 한 사람의 일생을 구성하듯 세상의 변화도 생각보다 작은 부분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착취와 억압 없이 삶 그 자체가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이 책을 펴낸 ‘움직씨’라는 다소 생경한 출판사명은 ‘동사’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출판사명에 말글만 앞선 진보, ‘위선’을 경계하며 사회적 차별과 혐오에 맞서 움직이고 행동하는 출판사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99% 페미니즘“을 읽으며 출판사의 모토와 여러 면에서 잘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행동주의 페미니즘 그 첫걸음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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