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단경로 - 제2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강희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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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엣스허르 데이크스트라는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가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경로를 찾는 알고리즘을 만들어냈다. 당시 26살이었던 그는 약혼자와 쇼핑을 마친 후 지친 상태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 문제에 대해 숙고했고, 그가 답을 찾는데 걸린 시간은 20분이었다.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최적경로를 찾는 데이크스트라 알고리즘은 이렇게탄생했다. 데이크스트라는 이론물리학, 전산학, 정보학 분야에 많은 연구를 남겼지만 대중들은 그가 남긴 그 어떤 심오한연구들 보다 젊은 시절 그가 잠시 생각해 얻은 최적경로 알고리즘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 그 이유는 현재까지도 네비게이션 시스템이나 구글 지도에 그의 알고리즘이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GPS 위성으로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수는 있어도 26세 청년의 그 20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차를 타고 원하는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어떤 경로를 선택해야할지 매번고민에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최단경로를 추적하는 원리는 간단하다. 그것은 시작점과 도착점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교차점 마다 거리 값을 부여하고, 가장 짧은 거리의 경로만을 남겨둠으로서 최단거리를 계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동일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다양한 네비게이션들이 다른 경로를 제시하는 이유는 저마다 고유한 알고리즘으로 변경하여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고유한 알고리즘에는 실시간 교통정보나 유료도로 사용여부, 교통신호나 과속 단속구간 등이 포함된다. ‘최단경로의 문제에 직면한 프로그램과 어플리케이션들은 이 같은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여 그것들의 영향도와 가중치를 부여하면서 저마다의 최적경로를 산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요. 이건 배우지 않아도 아는 거죠. 아이가 엄마한테 뛰어가는 걸 보면 저렇잖아요. 중간에 차도가 있건, 횡단보도가멀리 있건, 신호등이 빨간불이건, 그런 건 다 무시하고 그냥 엄마한테 직진하는거죠. 기계들도 마찬가지예요.” (P. 31)

 

 

강희영의 <최단경로>을 읽으며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최단경로에 대해 생각했다. <최단경로>는 소설 자체의 서사 이면에 존재하는 다른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독특한 구성을 가진 소설이다. 그렇게 이야기들을 만나며 마치 혜서가 맡고 있는 새벽의 라디오 프로그램 애청자들의 사연을 듣는 것 같았다. 혜서의 새벽 라디오 프로그램을 청취하는 사람들은 주로 응급실 당직을 서는 간호사나 물류창고를 나서는 화물 기사, 도심을 파고드는 환경미화원들이었다. 그들의 노동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듯 그렇게 그들은 낮을 사는 사람들이 잠든 시간 속을 헤맸고, 나도 진혁이 남긴 궤적을찾아나서는 혜서의 뒤를 쫓으며, , 그러한 혜서를 바라보는 민주에 주목하면서 조용히 소설이 던지는 물음에 몰입할 수 있었다.

 

 

라디오 피디인 혜서는 전임 피디의 방송에서 알 수 없는 소리를 발견하고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떠난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왜 쉬운 일을 이렇게 어렵게 풀려고 하는 건지, 왜 생각을 단순하게 하지 못하는 건지 고민한다. 그렇게 떠난 여정에서 혜서는 우여곡절 끝에 교통사고로 아이와 엄마를 잃은 애영을 만나고, 서로에게 또, 상대방의 삶에가닿기 위한 최단경로에 대해 생각한다. 한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첫번째 단계는 그의 행적과 삶의 궤적을 따라서 걸어보는 것일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삶의 단면들과 불편한 진실들을 만나게 된다. 이는 상대방을 이해해가는 과정인 동시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진실한 삶에 눈을 뜨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해란 타인과의 온도를 맞춰가는과정이며 이는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착각과 오해로 지도에는 존재했었지만 실존하지 않는 사라진 섬 샌디섬과 실존하지만 지도에 반영되지 못한지도에 누락된 길이 등장한다. 이는 상실과 결핍이 누적된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은유이다. 상실과 결핍의 경험은 삶의 온도를 변화시킨다. 상실과 결핍의 경험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공간 감각을 둔화 시키기 때문이다. ‘최단경로'가 항상 '최적'일 수 없는 이유는 삶의 상실결핍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삶 자체에 내재된 모순과 부조리 때문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삶 중에서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삶 그 자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기 보다 삶이 던지는 질문에 적절히 응답하면서 대처해나가는 것에 더 가깝지않을까? 이러한 개별적인 삶들이 모여 이루는 세상을 과학적으로, 객관적인 데이터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이건 되고, 저건 안된다는 걸 가르쳐주는 일. 이걸 잘 할 수 있을까?” (p. 32)

 

 

데이크스트라는 최단경로 알고리즘을 발명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묻는 인터뷰에서 가장 단순한 방법을 생각해야만 하는상황이 되면 그렇게 되더라.”라는 간략한 소감을 밝혔다. 종이와 펜이 없는 카페에 있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모든 복잡한조건과 수식을 배제시키고, 놀랄만큼 간결한 형태의 최단경로 알고리즘을 산출해낸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은 다미안이낸 숙제를 혜서의 조언대로 완성한 애영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애영이의 과제에 대해 다미안은 평가와는 별도로 다음과 같은 피드백을 주었다.

 

 

애영씨 코드대로 경로를 설정하면 낯선 길이라도 좀 마음 편하게 즐기면서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순하잖아요. 가까운운하를 찾아서 물길을 쭉 따라간다. 재미있었어요.” (p. 154)

 

 

애영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최단경로 알고리즘은 가장 빠른 지름길을 찾는 것이라기 보다는 가능한한 효율적 우회로를 찾는 공식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한다. 여기서의 방점은 효율 보다 우회로에 찍혀야 한다. 어쩌면 한 인간이다른 인간에게 가 닿기 위한 것도 이러한 형태에 가깝지 않을까상대의 마음에 가닿기 위한 최단경로는 상대의 삶을이해하려는 노력의 기반 위에서 간결하게 진심을 다해 건네는 한 마디 말에서 비롯될 수 있다. 마치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서로를 한참 마주본 후 혜서애영에게 던지는 한 마디 말처럼 말이다. 어차피 서로를 향하는 최단경로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효율이라는 잣대는 그 두사람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늘 같아도 늘 새로울 수 있는것은 매번 같은 곳을 다른 경로로 가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진심의 무게를 느끼고 나서야 가능한 것일테니까 말이다.


 

둘은 그렇게 한참 서로를 마주보았다. “어디 가지 말아요.” (p.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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