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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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전세계약이 만료되어 이사를 했다. 이사 당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마지막 점검을 하고 부동산에 가서 임대차계약 정리를 했다. 집으로 돌아와 포장되어 옮겨지는 짐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소파 밑으로 흰색 종이가 툭 떨어졌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는데 순간 울컥 눈물이 나왔다. 그것은 오카리나 구조와 운지법에 대한 설명서였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갑자기 등장한 설명서를 보고 나는 지난날의 어느 순간을 떠올렸던 것이다. 재작년 내 생일날 온 가족이 모였을 때, 어머니는 요즘 구청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며 생일축하노래를 오카리나로 불어주셨다.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행성 시력장애를 가지고 계신 어머니는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아들의 생일에 특별한 축하를 해주시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괜히 쑥스러운 마음에 생일날 자리에서는 그냥 넘겼었는데, 후에 오카리나 연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아보았고 그 기억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한 장의 종이에 의해 다시 떠올랐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내 마음 속에도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그것은 그리 크지 않은 나 혼자 쑥 내려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다. 들여다보면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깊이도 알 수 없다. 한동안은 그 구멍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슬펐다. 그것은 추억의 구멍이었다. 구멍 주위에 침입방지 철책이 있어서 안으로는 도저히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얼마간 서 있다가 침입방지책을 넘어서 구멍 속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런 일도 있었지, 저런 일도 있었지. 한 칸 한 칸 내려가면서 그리워하고, 후회한다. 그리움과 후회를 반복하며 조금씩 깊이 내려가면 한동안 구멍 속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게 된다." (155쪽)




기억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마법이다과거에 대한 기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고동치는 두번째 심장이기 때문이다우리는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들을 기억하며 살아간다이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행복한 기억들을 화석화하여 영원과 불멸의 세계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생일날 어머니가 오카리나를 불어주었던 추억은 내게 있어 언제나  햇살의 온기가 가득한 행복했던 한때로 기억될 것이다프랑스의 정신의학자 민코프스키는 '체험되는 시간 (Le temps vecu)'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다인간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같은 시공간을 공유할  있지만공존을 위한 노력이 존재할때만이 '체험되는 시간' 만들어갈  있다는 것이다단순히 시공간만을 공유하며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을  사람 사이에 흐르는 시간은 '체험되는 시간' 아닌 '죽은 시간'이다노력하는  사람만이 같은 장소에서 체험되는 시간을 공유할  있다.




민트코프스키의 주장처럼 사랑은 시간을 쌓아나가는 일이다. 상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시간을 그의 곁에서 보내며 그 시간 속에 함께 했던 경험을 담는 일이다. 당사자들만이 기억하는 '체험되는 시간'을 만들고, 한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지금 이 순간이 손가락 사이로 슬그머니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오카리나를 매개로 한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나는 체험되는 시간을 구성하는 것은 멋진 대화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만은 아니라고 느꼈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 앞에서는 평소 모습으로 처신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 즉 상대방이 나를 온전히 포용하고 있고 내가 타인에게 온전한 나 자신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받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인생의 퍼즐 조각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퍼즐 조각을 맞춰 가든 항상 빈자리가 남아있게 마련이다. 마치 우리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세계가 있듯이." 제프리 유제니데스 -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라는 찬사와 함께 등장하여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작가 제프리 유제니데스는 삶이란 퍼즐을 맞춰나가다 보면 누구나 부딪치게 되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미지의 세계로 인한 공백과 한계, 삶의 조각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쩌면 제프리 유제니데스의 이 말이 우리 삶의 핵심적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인생이란 불확실성의 공간 안에서 불완전한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잔인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도덕성은 선입견도 편견도 없이 공정한 운(Chance)밖에 없다는 영화 <다크 나이트>의 검사 하비 덴트,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을 살인의 대상으로 선택하고 동전 던지기를 통해살인 여부를 결정하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살인마는 안톤 시거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삶의 불확실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들 또는 딸로 세상에 태어난다. 또 가족의 보살핌 아래 성장하고 마침내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또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 가정이란 단어를 정의한다면 한 가족이 함께 살아가며 생활하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가정은 인간이 태어나 하나의 인격체로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회적 동물로 진화하기 위한 최소 단위의 생활 공동체인 것이다. 가정은 정형화할 수 없기 때문에 형태와 구성은 제각각이자만 하나의 가정은 저마다의 사연과 추억으로 하나의 우주적 세계를 이룬다. 어쩌면 가정은 불확실한 삶 속에서 '체험되는 시간'을 공유하면서 그들만의 문법으로 조각난 삶을 치유하고 삶을 재정립할 수 있는 유일한 공동체 아닐까?




로버트 노직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에서 사진과 초상화의 차이를 통해 한 사람을 바라보는 행위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한다. 사진이 인물의 순간적 속사(速寫)로 한순간의 단면을 담는 것이라면, 초상화는 긴 시간 동안 각각 다른 빛 속에서 일련의 특징, 감정, 생각을 가진 개인의 다양한 모습, 동시에 발현될 수 없는 여러 부분을 깊이 있게 담아낸다. 그림에는 한 사람을 일정 시간 이상 바라본 만큼의 시간성이 농축되어 있어, 한 사람의 형상이 오랜 시간 그 사람을 겪으며 포착해낸 세부사항들로 구성된 입체적 이미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시간과 빛을 거치며 덧입혀진 개인적 삶과 역사가 녹아 있는 초상화가 순간의 단면을 정확히 포착한 사진 보다 더 풍부하고 깊은 맛을 낼 수 있음을 가장 잘 체감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정의 구성원들 아닐까? 초상화의 매력은 초상화의 대상이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좌우되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훌륭한 화가일수록 사진의 매력을 넘어서는 대상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포착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체험되는 시간'과 삶을 공유한 한 가정의 구성원들은 하나의 세계를 탐구하는 역사가이자 훌륭한 화가이다.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가지만,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다. 이 세상에 완전한 어른은 없다는 말처럼 우리는 자신의 시대에 존재하는 일렁임을 경험하고 극복하면서 서서히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렵고 상충되는 욕망들로 얽혀 있는 삶과 고통과 환희로 점철된 복잡한 인생 속에서 힘겹게 견뎌내야 할 때, 내가 살아 있고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즉,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것 이상의 응원이 있을까? 괜찮지 않은 세상 속에서도 '괜찮아', '괜찮아 질거야.'란 위로를 들으며 하루를 마칠 수 있는 것, 우리 각자가 가진 삶의 조각들이 가족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조각(One Piece)으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행복 아닐까?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세요?" 운전사가 물었다.

"생각하지 않아요. 도쿄를 좋아하니." 나는 바로 대답했다.

운전사는 "오호" 감탄한 뒤, "그럼 괜찮네요."하고 웃었다.

나는 그가 그렇게 말하리란 걸 염두에 두고 "생각하지 않아요. 도쿄를 좋아하니."라고 했던 것이다.

"괜찮네요."라는 말을 듣고, 하루를 마치고 싶었던. 그런 밤의 이야기다.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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