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리커버 특별판)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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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51일은 근로자의 날이다. 1890 5 1일 미국 시카고에서 첫메이데이 (May day) 대회가 개최된 이래로 전세계에서 이 날을 노동자의 날 (May day)’로서 기념해오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노동자의 저항을 기념하는 날에 한국에서는 저항의 주체인 노동자가 빠져 있는 것이다. 한국은 왜 노동자의 날이 아닌 근로자의 날일까?



이에 대한 역사적 근원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일제 치하였던 1923 5 1일 조선노동총연맹 주최로 2,000여명의 노동자가 모인 것이 한국에서 열린 노동절 최초의 행사였다. 이후 1958년부터는 대한노동조합총연맹의 창립일인 310일을 노동절로 정해 행사를 치러오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3년 노동법 개정과정에서 명칭을 '근로자의 날'로 바꿔 기념해왔다. 이후 노동단체들은 ‘5 1일 노동절을 되찾기 위한 투쟁을 해오다 문민정부 시절인 1994년부터 3 10일에서 다시 5 1일로 옮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름은 노동절로 바뀌지 않고 근로자의 날 그대로 유지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사실 사전적인 정의를 살펴보면 근로자노동자라는 용어는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상의 정의에 따르면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의미한다. ‘노동자는 사전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근로와 노동의 사전적 차이와는 달리 사회적 심리적인 거리는 너무나도 크다. 우리는 흔히  노동자라는 단어에서 능동적’, ‘저항’, ‘권리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리고근로자라는 단어에서는 수동적’, ‘안정’, ‘사무직등의 긍정적 이미지를 떠올린다. 심지어 범죄 피의자의 외모를 묘사하는 전단에 노동자풍의 외모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 당신은 근로자풍의 외모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는 정부차원에서 노동근로로 대체시키며 이데올로기화해온 한국의 역사적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페미니즘 관련 발언과 행동이 언론을 통해 화제가 되면서 셀리브리티 페미니즘 (Celibrity feminism)이 이슈화되고 있다. 엠마 왓슨은 히포시 (HeForShe) 캠페인에서 인상적인 연설을 보여주었고, 애슐리 주드는 ‘여성 행진 (Women's March)’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여성비하 발언에 대해 강력한 문제제기로 주목을 받았다.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가진 유명인사들의 이 같은 행동은 분명 대중이 페미니즘을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페미니즘을 어려운 철학이나 정치적 운동으로 여겼던 많은 대중들이 페미니즘이 제기하는 문제가 바로 자신들의 문제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근로가 한국에서 갖는 이데올로기적 모호함과 오해와 마찬가지로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에는 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페미니즘이 대중화되고 보편화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페미니즘 운동이 어떤 것이고 무엇을 지향하는 것인지 분명히 해야할 필요가 있다. 영화배우 메릴 스트립은 한 인터뷰에서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요?’라는 질문에 저는 휴머니스트입니다. 균형을 추구하죠.’라는 대답을 하였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가를 연기하고 영화판 밖에서도 성차별 문제를 끊임 없이 제기하고 여성 시나리오 작가들을 위한 펀딩을 진행하는 등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명확히 선을 그은 것이다. 성차별주의에 반대하면서도 페미니스트임을 부정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비단 메릴 스트립 뿐만이 아니다. 레이디 가가와 켈리 클락슨도 같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이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벨 훅스는 본서 모드를 위한 페미니즘 (Feminism is for Everybody)에서 페미니즘을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한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같은 정의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의 주체에 대해 주목할 뿐 그것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하지 않는다. 즉 페미니스트가 반대하는 것은 '남자'가 아니다.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남성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다. 또한 여성도 때론 성차별주의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궁극적으로 모든 형태의 성차별을 지양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자유와 평등, 해방을 위한 운동인 것이다.



페미니즘을 위협하는 적은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이다. 페미니즘이 반대하는 것은 성 그 자체가 아닌 성차별을 가져오는 행위이다. 여성도 자신의 성차별주의적 행동을 직시할 수 있고 성차별주의를 반대하는 남성과 연대할 수 있어야만이 페미니즘 운동은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셀리브리티 페미니즘은 그 대중적 파급력으로 볼 때 큰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엠마 왓슨과 비욘세 팬들간의 페미니즘과 여성적 섹슈얼리티의 활용에 대한 논쟁은 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가부장제적 패선업계와 화장품업계의 이익 반영하는 성차별주의적 미의 기준이 페미니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관련하여 중요한 이슈라고 본다. 하지만 페미니즘 용어 자체가 가지는 고정관념과 편견 등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고 긍정적 페미니즘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가부장제 대중매체에게 이를 빌미로 페미니즘 운동이 사랑 보다는 증오를, 평등 보다는 차별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떠들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지배와 복종, 강압, 억압과 차별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고 대등한 입장에서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고 상호성장과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가정에서,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페미니즘의 비전을 현실화하는 노력을 해나갈 수 있다. 물론 페미니즘으로 가는 길은 하나일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과 삶이 다르므로 각자의 삶에 말을 걸고 변화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개개인의 구체적인 관심사와 전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의 개혁이 중요하다. 이를 위한 첫 걸음은 페미니즘이 가진 부정적 이미지를 종식시키고 그것이 가진 비전을 제대로 알리고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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