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직지 1~2 세트 - 전2권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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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의 제목 <직지(直指)>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의미한다. 소설을 접하기 전부터 <직지>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민족적 가치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정확한 명칭과 의미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알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학창시절 의무교육을 통해 <직지><직지심경>이라는 불교의 경전으로 오인될 수 있는 이름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직지>의 정확한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로 이는 '백운화상이 편찬한 마음의 실체(근본)를 가리키는 선사들의 중요한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직지>는 백운화상이라는 고려시대 고승이 역대 선승들의 선문답을 정리한 '요절(要節)'로서 부처의 말씀을 아난존자가 옮겨 적은 걸 의미하는 '불경(佛經)'이 아니다. (직지 151)

 

앞의 것이 이미 사라지는가 하더니 뒤의 것이 다시 생기고... 앞과 뒤가 이어져 진리에 닿을지니.(직지 191

 

소설을 접하기 전에는 고려시대 불경의 보전을 위해 청주의 작은 사찰에서 탄생한 현존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이라는 것이 <직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주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직지>의 정확한 명칭과 의미에 대해 알 수 있었고, 나아가 <직지>가 담고 있는 가치도 새롭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은 앞과 뒤가 이어져 진리에 닿는다.<직지>의 문구처럼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과 새롭게 깨달은 진리의 파편들을 완전한 것으로 착각하는 데서 벗어나 끊임없이 진리를 향하여 다가설 것을 독려하는 <직지>의 위대한 통찰,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진실에의 접근을 시도하는 소설 <직지>와도 그 맥을 같이 하는 듯 했다.

 

2권으로 구성된 소설 <직지>는 창으로 심장을 관통당한 채 귀가 잘리고 목에 흡혈의 흔적까지 남아있는 참혹한 살인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된다. 1권은기자인 '기연'이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잔혹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 <직지>와의 연관성을 발견하게 되고, 이렇게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의 진실은 <직지>의 미스터리로 연결된다. 2권에서는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역사적 사실에 작가적 상상력이 가미되어 탄생한 조선의 여인 '은수'<직지>와 구텐베르크의 연결고리가 되어 조선과 유럽을 무대로 펼치는 활약을 다룬다.

 

저자는 '최고의 목판본 다라니경에서부터 최고의 금속활자 직지, 최고의 언어 한글,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로 이어지는 흐름을 언급하며 지식의 전파와 보급의 측면에서 인류의 지식정보혁명에 기여해온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직지 17) <직지>와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의 직접적인 관련성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지식과 정보를 전파하고 공유하려는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알파벳과 문장부호 등을 포함해서 약 60자 정도만 주조하면 되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술에 비해 <직지>는 수많은 한자를 주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금속활자 인쇄의 장점은 수많은 활자를 미리 주조해두고, 필요한 것만 가져다 조판하여 빠르게 인쇄할 수 있다는 것인데 <직지>는 한자가 갖는 언어적 특징 때문에 장점을 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탄생하기 이전에 세종대왕은 한글을 반포했다. 한글은 만든 목적이 분명하고 만든 사람과 만든 시기가 분명한 세계 유일의 언어이다. 글을 모르고는 지식을 습득할 수 없고 정보의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생활의 향상, 문화의 향상을 도모할 수 없다는 애민정신과 실용주의를 기반으로 탄생한 한글은 오늘날 우리가 학문적,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소설 속에서 과거의 '은수'와 현재의 '기연'<직지>의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연결된다. 그들이 닿고자 했던 진리, 애써 전하고자 했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은수는 목에 걸린 은십자가 목걸이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목걸이에 새겨진 글귀를 되뇌었다. '템푸스 푸지트 아모르 마네트 (Tempus fugit Amor Manet)', 은수는 라틴어를 깨우치면서 이 글귀가 '세월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는 뜻인 걸 알게 되었다.(직지 2157

 

인간이란 무엇일까? 욕망을 품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규정하고 그 욕망을 어떻게 조절하고 통제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가장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이었다. 이는 진리는 감각으로 경험하는 현실이 아닌 이성으로 인지하는 이데아(idea)에 있다는 플라톤의 주장이나 사사로운 욕심에서 발생하는 마음인 '인심(人心)'과 인의예지라는 본성에서 기인하는 '도심(道心)'과 관련한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사단칠정론 논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소설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인간에게는 행복이 최고의 목표가 아니야. 인간은 때때로 행복보다 불행을 택하기도 해. 그게 더 의미가 있다면...(직지 289)

 

소설에서 과거에서 또 현재에서 진리를 추구했던 두 여인이 깨달았던 것은 부처의 지혜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받아들여져 온 우주가 연꽃같은 장엄함으로 가득찬 세계가 된다는 '화엄경'이 말하고자 하는 진리 아닐까? 연약하기 짝이 없는 작은 싹이 혼신의 힘을 다해 그 무거운 흙의 무게를 이겨낸 후 땅 위로 몸을 내미는 순간의 장엄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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