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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경제사 - 돈과 욕망이 넘치는 자본주의의 역사
최우성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현대 아동문학의 기틀을 닦았다고 평가 받는 안데르센은 사실 다방면에 걸쳐 활동한 문학가였다. 『 미운오리새끼 』,『 인어공주 』, 『 성냥팔이소녀 』 등 빛나는 그의 동화들은 그의 수많은 작품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시와 소설, 기행문을 남겼고 작가이기 이전 연기자를 꿈꿨던
자신의 청년시절을 대변하듯 극작가로서도 재능을 드러냈다. 안데르센이 자신이 아동문학가로만 인식되는 것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일화는 유명하다. 말년에 자신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상을 세우려는 사람들에게
안데르센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내가 쓴 이야기들은 어린이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은
단지 내 이야기의 표면만을 이해할 수 있으며,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야 온전히 내 작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날 그의 모국 덴마크에 있는 안데르센의 동상들은 모두 오롯이 그 혼자만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동화를 단순하게 정의한다면 동심을 바탕으로 어린이를 위하여 지은 산문문학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광범위하게 본다면 동화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어린이들만을 위한 이야기를 넘어 인간 보편의 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인생의 의미를 전달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안데르센이 아동문학가라는 평가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이유도 동화의 의미를 좁게 보는 당대 사람들의 인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저자가 『 동화경제사 』라는 이름의 이 책을 저술하게 된 것은 부모가 되고 나서 어린 아들과 동화 함께 읽기를
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첫 번째 동화 읽기가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행복한
세계로 인도해주었다면, 어른이 되어 텍스트 뒤에 숨겨진 컨텍스트를 찾아낸 두 번째 동화 읽기는 동화야말로
시대와 사회의 중요한 기록이자 증거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음을 저자는 고백하고 있다. 동화경제사란 책의
이름이 대변하듯 저자가 두 번째 동화읽기를 통해 주목한 것은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이다. ‘돈과
욕망이 넘치는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책의 부제처럼 저자는 동화 탄생의 역사적 기원이 된 자본주의의 민낯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에서 가난, 장시간 노동 등 산업혁명 속
어두운 시대상을,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달콤한 초콜릿 속에 숨겨진 착취와 불공정 거래관행을,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에게서는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질서 앞에 저물어가는 수공업과 새롭게 자리잡은 산업화시대의
노동질서를 읽어내었다. 동화 탄생의 역사적 배경을 탐구하는 과정은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를 침범 당하는
것 같아 약간의 거부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쥘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가 가능했던 이유를 역사적 사실을 통해 분석하고, 꿀벌 마야의 모험에 표현된 개인의 합리적 행동과
공익의 놀라운 조화를 아담 스미스 보다 60년 앞서 자유시장과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을 보여주었다고 해석해낸 것, 빨간머리 앤이
타는 자전거에서 자유주의와 페미니즘을 읽어내는 등 동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초창기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비밀스런 장치들을
색다른 시각을 통해 발견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경제사’라는 제목에
걸맞게 작가가 사회변화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상반된 형태로 표현된 작품의 메시지를 분석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가 현실 속 구원보다 상징적이고 종교적 구원으로 결말을 맺은 이유와 오스카 와일드가
행복한 왕자를 통해 개인의 선행이나 인간애 보다는 사회구조적 해법을 찾으려고 시도한 이유를 저자는 시대정신에서 찾고 있다.
와일드 시대 (1880년대)의
해법은 안데르센 시대 (1840년대)의 그것과 달라야 했다. 빈부 격차와 불평등은 더 이상 개인 혹은 단체의 선이나 시혜로 다룰 문제가 아니라, 엄연히 국가의 책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행복한 왕자는 동화라는
외피를 입었으나 1880년대를 풍미한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색채가 짙게 배어있는 문학작품이다 (p. 240)
결국 저자가 동화탄생의 역사적 배경에 주목한 이유는 동화의 재해석에 있다. 숲
속을 노닐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하나 둘씩 눈떠가는 사랑스런 아기 노루 밤비의 이야기의 기저에는 반유대인 정서와 전체주의 비판이 깔려 있었고, 덩치 큰 말벌들의 침략에 단결하여 맞선 꿀벌들의 이야기에서는 자연과 삶을 예찬하는 낭만주의적 코드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를 강조하는 전체주의적 코드와 1차 세계대전에서 병사들의 사기와 전의를 북돋우는 정훈도서의
이미지도 찾아볼 수 있었다.
어른을 위한 동화와 표면적 의미를 넘어선 동화의 재해석을 언급한 것은 비단 안데르센만이 아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친구 레옹 베르트를 위한 헌사로 시작된다. 이
유명한 헌사를 통해 작가는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치는 것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그 나름의
헌정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그가 작가에게 있어 최고의 친구라는 것, 이해심이 깊어 아이들을 위한 책도 이해한다는 것, 또한 현재 그가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이런 모든 이유들로도 부족함이 있다면, 한때는 어린 아이였을 자신의 친구에게 이 책을 헌정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있다.
모든 어른들은 처음에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작은 소년이었을 때의 자신의 친구 레옹 베르트에게 자신의 책 『 어린 왕자 』를 헌정한 것이다.
피노키오의 모험은 19세기 자유주의 시대, 20세기 산업사회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기나긴 세월을 거치는 동안 빈민층 자녀의 자유분방한 모험담에서
산업화 시대 새로운 노동의 기준으로, 또, 디즈니에 의해
재생산된 중산층 신화로 재해석되었다.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 본격화되는 미래 세상에서 피노키오는 또
어떤 새로운 모험을 하게 될까? 시대를 거슬러 우리 곁에 있는 동화처럼 동심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모든
“어른 아이”들을 위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