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 인류를 사로잡은 32가지 이즘, 개정증보판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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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 작가의 『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의 부제는 인류를 사로잡은 32가지 이즘이다. 작가는 정치, 철학 및 예술, 국가, 경제, 사회라는 5가지의 카테고리 안에서 인류를 매혹시키며 발전해 온 32가지 사상들을 다루고 있다. ‘사상또는 이즘 (Ism)’이란 사고와 행동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신념의 체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즘은 역사적, 사회적 입장이 반영된 현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즘은 현실 속 욕망들이 투영되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이론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이즘은 현실의 문제들을 온전히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조국독립, 경제성장, 민주화를 거쳐 발전해 온 우리의 역사 속에서 사회주의는 개인의 욕망을 대변하지 못하고 오히려 욕망실현을 억압하였고, 개인을 이상사회 건설이라는 이념에 종속시켰다. 또한 자유주의는 원칙과 기준을 잃고 표류하였다. 그것은 비정상적 과정을 통한 성장이었고 이는 결국 자유의 부재로 이어졌다. ‘이즘의 존재 이유는 현실에서 살아 숨쉬는 가치를 지키며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것이지만 은 역설적으로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충돌 과정에서 빛을 잃어갔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은 사상의 생몰(生沒)을 잘 표현하고 있다.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는 당시 오만의 읍민들 중 팔할이 농민이었고, 그 농민들 중에서 구할이 소작인이었다. 벌교뿐만이 아니라 해방 당시 한국은 전 농가의 86%가 소작농이었고, 전농지의 64%가 소작지였을 정도로 농업은 핵심적 경제기반이었고 인구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갑오농민혁명, 일제하의 소작쟁의에 이어 토지제도의 모순이 당시 주요 사회갈등의 원인으로 등장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민중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농민들은 지식을 통해 현실의 모순구조를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삶을 통해, 체험을 통해 그 문제상황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고, 시대 상황 속에서 이데올로기 대립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개인적 동기는 사회갈등으로 구체화되었고 이는 다시 집단적 이념으로 확장되었다. 소설 속 문서방의 한 맺힌 외침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가난허고 무식헌 것들이 믿고 의지헐 디 웁는 판에 빨갱이 시상 되먼 지주 다 처웁애고 그 전답 노나준다는디 공산당 안헐 사람 워디 있겄는가요. 못헐 말로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들이 빨갱이 맹근당께요." (소설 태백산맥 中)

 

어떤 면에서 보면 이즘이라는 것은 모순투성이고 부정확한 존재인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의 본질적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새로운 구속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인간이 이념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념의 실현을 위한 도구가 된, 이데올로기란 이름으로 인간이 희생되었던 사례를 많이 지켜봐 왔다. 작가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칭송 받는 민주주의도 이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현실적이지 않은 제도로 여겨져 주목 받지 못했고, 소크라테스도 민주주의의 핵심인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희생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사상에 매혹되고, 우리는 왜 사상에 주목해야 하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대로 이념은 현실의 순수한 열망이 빚어낸 결정체다. 각각의 사상에는 열망의 실현을 약속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욕망을 꿰뚫고 있는 시대적 사상들에 인류가 매혹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사상의 발전사는 인류의 욕망과 희망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사상은 인류를 위해서’, ‘인류에 의해탄생하였지만, 사상 중에서는 인류의 사상이 되지 못하고 스러져간 것들이 많았다. 사상이 현실의 일면만을 반영하거나, ‘인간을 담지 못하고 변질되고, 때론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인류를 사로잡았던 사상들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처럼 사실에 대한 냉철한 이해야말로 좋은 변화의 출발이다. (8)

 

사상은 늘 갈 길 모르는 인류에게 앞날을 비추는 횃불이 되는 덕분이다. 맹목적으로 하나의 횃불만 따라가지 않는다면, 여러 방면에서 타오르는 불빛들을 냉정한 눈으로 가늠할 수 있다면, 사상은 우리를 정말 희망의 나라로 데려갈 수 있.” (7)

 

절절하고 뜨거운 사랑, 생생하게 살아나는 나의 감정, 삶에 대한 열정, 완전한 자유와 해방감, 삶에서 이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 냉정한 과학은 이 모든 것을 절제하고 억눌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다운 순간은 사랑과 감정, 열정과 자유를 한껏 꽃피웠을 때가 아니던가? (102)

 

 

독일 시인 헤르더의 말처럼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사람들에게 통하는 단 하나의 사상이란 없다. (105) 때로는 계몽주의에 기반한 냉철한 이성과 과학적 판단이, 때로는 낭만주의의 열정과 의지가, 또 어느 순간에는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시대를 발전시켜왔다. 해체주의는 인간이 절대적으로 옳고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다만 인간의 생각과 언어로서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또한 실존주의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내 인생을 스스로 만들고 개척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매순간의 결단이 어느 누구도 빼앗지 못할 내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123) 오늘날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해체주의의 교훈을 수용하면서, 실존주의적 실행력을 갖추는 것 아닐까? 초점이 맞지 않은 한장의 시진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 여러 장이 쌓이고 모이면, 본연의 의미가 입체적으로 형상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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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보이 2019-02-22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매혹된 위대한 사상들에 대한 개론서이자 간략한 역사서의 느낌이네요.

잭와일드 2019-02-22 23:03   좋아요 0 | URL
네 사상의 흐름을 개괄할수 있는 흥미로운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