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도를 기다리며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평점 :
과대평가1
저의 독서 습관은 장르소설, 특히 일본 추리소설로 편중되어 있습니다. 이런 책들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한쪽으로 치우쳐진 독서 습관이 나쁜건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독서의 범위를 넓히면서 그 수준도 조금 높여보기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유명 고전 작품'읽기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달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한번씩기웃거리곤 하는데요. 이번에는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좀 부끄럽지만 그 이유로는 1. 얇다. 2. 희곡의 구성이라 읽기 쉬운듯하다. 3. 제목이 친숙한 꽤나 유명한 작품이다. 정도가 되겠네요. 다이어트 할 때 닭가슴살 한덩어리 먹으라고 하면 편법으로 꼭 그 중에서 제일 큰 것 찾으려고 애쓰는 것 처럼, 아직까진 고전이 읽기 버거워서인지 요령을 부려버렸습니다.
허나 이번에는 뒤통수를 맞아 버렸습니다. 특히 1번의 경우, 책의 두께와 소요시간이 비례치 않는다는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3달전이었던가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명예'라는 작품. 고작 백여쪽밖에 되지않아 만만히 봤다가 크게 고생하고도 또 당했네요. 책의 내용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등장인물들이 하는 이야기가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요새 책 좀 읽었다고 우쭐했었는데, 저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나봐요.
과대평가2
책에서 소개하는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수식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대극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
영국 연극계 선정, '20세기 최고의 희곡'
전통적인 사실주의극에 반기를 든 전후 부조리극의 '고전'
온통 칭찬 일색입니다. 그리고 그 칭찬의 정점은 노벨상으로 귀결됩니다.
줄거리는 굉장히 간단합니다.
시골길, 나무 한그루가 황량히 서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무 아래에서 두 남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틀동안 이 기다림의 두 주체(혹은 중반부에 두 사람이 더 나와서 네 사람의 주체)는 알수없는 혹은 무의미한 행위(신발을 벗는다던가, 목을 맨다던가)들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들에게 확실한 것은 하나입니다;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
질문의 형식으로 제 문학적 무지함을 조금 솔직히 드러내 보이자면
Q1. 등장인물들의 대사 -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인과관계도 파악하기 힘들다.
Q2. 이 극이 그만큼의 인정을 받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Q3. 고도가 누군지 도통 모르겠다.
제가 확실히 이해한 것은 하나입니다. ;그들은 고도를 기다려야한다.
저도 소설속 두 인물과 같은 처지입니다. 저를 과대평가 하고 있었나봐요
가이드북
이 소설의 문학사적 가치는 이미 검증되었고, 나는 그 의미를 모르겠고. 에라 이번에는 그냥 서평이 아니라 공부를 해보렵니다. 일종의 '고도를 기다리며 가이드북' 되겠습니다.
1. 이 책의 장르인 부조리 극이란?
현대문명속을 살아가는 현대 인간의 존재와 삶의 문제들이 무질서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소재로 삼은 연극 사조
부조리극은 고대 그리스극의 전통을 파괴한 사실주의 극 그 이상으로 사실주의 극을 철저히 파괴해 반연극적 특성을 보여준다. 사실주의는 과학의 발달과 논리적 합리주의 사상의 진전으로 시작되지만, 이것이 가져온 결과는 1 · 2차 세계대전과 이로 인해 생긴 가공할 만한 파괴와 무질서한 혼란뿐이었다. 니체가 신의 사망을 진단한 후 새로운 신은 탄생되지 않았다. 가치 기준이 될 신의 부재로 인해서 인간은 물질적인 풍요와는 대조적으로 정신적으로는 끊임없이 방황하게 되었다.이러한 극한 상황에서 생기는 것이 부조리극이다. 그래서 이 부조리극은 지금까지의 전통극의 유산을 파괴하는 데서 시작된다.
부조리극의 주제는 불합리 속에서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부조리극은 인간의 고독과 소통의 부재를 드러내어 인간에게 존재의 부조리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사회적 위치나 역사와 연관을 지을 수 없는, 환경에서 단절되어 버린 인간이 자기 존재의 근원적 상황과 대결하고 또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절박한 행위나 행위의 부재이다. 극구성의 개념인 도입→상승→절정→반전→하강→파국 등의 논리성이 무시되고 극이 진행되다가 끝나지 않을 곳에서 갑자기 끝난다. 대사에서는 언어가 해체되고 등장인물들 간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단순한 몽타주(Montage)와 천편일률적인 모조어(Klischee)가 지속될 뿐이다. 이러한 언어는 모든 이데올로기의 허황함과 불합리성을 보여준다.
-네이버 백과사전
- 1,2차대전의 비참한 결과는 그 당시를 지배하고 있던 사실주의에 대한 회의로 이어집니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서 현실에 대한 근원적 의문은 물론, 사실주의와는 정 반대되는 성향인 '불합리성', '무의미함', '무질서함'을 연극으로 표현해 냅니다. 이를 부조리극 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2. 소설 속의 '고도'는 누구인가?
미국에서의 초연 때 연출자 알랭슈나이더가 베케트에게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남아있다. 작가 자신이 그와 같은 대답을 한 이상 관객들 사이에 물음은끊이지 않았고, 그 해답 역시물음만큼이나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고도는 신이다, 자유다, 빵이다, 희망이다.... 고도Godot가 영어의 God과 프랑스어의 Dieu를 하나로 압축한 합성어의 약자라는 해석도 있다. 어쨌건 고도에 대한 정의는구원을갈망하는 관객 각자에게 맡겨진 셈이다. - p.164 작품 해설 중
- 고도를 알 수 없었던 것. 당연했었나 봅니다. 작가도 모른다고 했으니 말이지요.
과소평가.
아까 제기했던 질문 세가지가 문득 떠오릅니다.
Q1. 등장인물들의 대사 -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인과관계도 파악 하기 힘들다.
Q2. 이 극이 그만큼의 인정을 받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Q3. 고도가 누군지 도통 모르겠다.
그 답이 다 나온 것 같네요.
A1. 이해를 못하고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힘든게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그 대사들은 의미가 없으며, 인과관계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부조리극'이라는 형식이 취하는 성격이지요.
A2. 사실주의가 정설로 굳어지던 세대였던 때
전엔 볼수 없었던 혁신적이라고 여길 수 있는 형식(부조리극)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당시에는 굉장히 충격적이고 참신하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이는 '현대극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라는 수식어와 일맥 상통하겠지요.
A3. 고도가 누군지 모르는게 당연했습니다.
작가마저 모른다면 어느 누구든 모르는 것이지요.
바꿔말하면 어떻게 해석해도 좋다는 이야기랄까요.
제가 처음에 접했던 감상.
거기에 '부조리극'이라는 배경지식을 조금만 덧붙이면 되었네요.
과대평가 할 것도 없지만,
저를 심하게 과소평가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