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악의 교전 1 악의 교전 1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혹자는 선악과를 통한 아담과 이브의 인지에서, 혹은 판도라의 상자의 틈바구니에서 악(惡)의 근원을 더듬곤 한다. 세대가 이어지며 악의 기준과 성질은 조금씩 변모하기는 했지만 근간을 이루고 있는 악의 전형 - 타인의 동의를 전제로 하지 않은 채 타인의 권리를 자의적으로 박탈하는, 예컨대 살인이나 강간, 절도 등의 것 - 들은 여전히 범세계적으로 규탄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있다. 그러한 악의 유형의 정점에 위치한 것은 단연 타인의 생존권을 빼앗는 살인이라 할 수 있을 터. 허나 현대에 이르러서 살인은 악의 정점이라는 무게감에 어울리지 않게, 난잡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비일비재하게 체현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느샌가 사이코 패스라는 새로운 범주의 인간상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모리타트 : 살인 행위를 의미하는 독일어 Mordtat에서 유래한 것으로 살인이나 공포 사건을 소재로 한 떠돌이 가수의 발라드풍 노래.

잔혹한 모리타트의 선율이 소설 전체를 지배한다. 그리고 이 곡을 흥얼거리며, 함께 소설을 이끌어가는 이는 마치다 고등학교의 교사 하스미이다. 뛰어난 판단력과 문제 해결 능력으로 교내의 크고 작은 일들을 능숙하게 처리하며 선생님들의 신뢰를 사로잡은 것은 물론, 수려한 언변과 세심한 관심으로 학생들의 인기까지 얻고 있어 소위 인기강사의 전형이라 할 수 하스미. 허나 그의 모든 면모는 철저한 계산에 입각한 위선이다.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인물은 가차없이 처단해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비뚤어진 가치관의 소유자인 하스미. 소설 속 그의 말 한마디가 그의 비뚤어진 가치관을 모두 설명한다.

살다보면 누구나 여러가지 문제에 직면하잖아? 문제가 있다면 해결해야 하지. 나는 너희들과 비교해서 그런 순간에 선택의 폭이 훨씬 넓은 거야. 살인이 가장 명쾌한 해결방법임을 알아도 보통 사람은 주저하지. 그러나 나는 달라. X-sports 애호가들처럼 할 수 있다는 확신만 생긴다면 끝까지 해내거든. - 2권 p.52

살인은 살인을 부른다고 했던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대처로 사태를 해결하려 하지만, 점점 수렁에 빠지게 되고, 이는 또 다른 살인으로 이어진다. 결국 하스미의 비정상적인 가치관에 의한 참혹한 악의 극한을 보여주면서 소설은 종국에 이른다.
 


교전(敎典) : 교육의 기본이 되는 법칙. 또는 그런 법칙을 기록한 책.

작가 기시 유스케는 전작 '검은 집'을 통해 사이코패스라는 새로운 악인의 유형을 제시하였다. 살인이라는 단어의 중압감과 무게감이 무색할 만큼, 무덤덤하게 살인을 자행하는 사이코패스라는 존재. 이번 책은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단순히 악을 체현해내는 것에서 좀 더 나아가 악의 근본까지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스미가 품는 생각 자체도 충분히 악독하다. 허나 더욱 섬뜩한 것은 하스미의 관념이 행위로 체현된다는 점이다. 도저히 용납되지 못할 만큼 잔혹한 발상이지만 작가는 이를 텍스트로 체현하고야 만다. 지극히 반인륜적이고, 도덕적으로도 저어되는 발상은 급기야 하스미의 행위 자체가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에 이른다. 그만큼 섬뜩한 발상을 기시 유스케는 '악의 교전'이라는 제목을 빌미로 삼아 텍스트로 실어놓은 것이다. 현실에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라는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소설 내내 울려퍼지는 모리타트의 선율. 살인의 서곡으로 시작된 선율은 소설 내내 장송곡처럼 죽음을 끊임없이 몰고 온다. 소설의 절정에 이르면서 모리타트는 점점 빈번히 들려오게 되고, 그 끝은 비현실적으로 잔혹한 악의 교향곡으로 마무리된다. 압도적인 악을 대면한 것 같아 마음 한켠이 편치 못하고 여전히 버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전연애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8
마키 사쓰지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연애소설과 수수께끼 풀이의 결정판! 은밀한 '완전연애'를 엮어낸 연애소설, 전후사를 개관하는 연대기. 대담한 취향을 집약한 본격 미스터리까지 모든 면에서 놀랍도록 완성도가 높다! - 책의 소개글 中

이 소설은 화단의 거장 나기라 다다스의 삶을 연대기의 형식으로 엮어졌습니다. 크게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그의 삶에서 일어난 세 가지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사건들은 본격 팬인 저의 기대치를 꽤나 높일 만큼 기묘합니다.
시대착오적 흉기 - 작은 온천마을에서 발생한 미군대위의 시체.
지상최대의 밀실 - 도저히 불가능한 거리상에서 벌어진 예고살인.
궁극의 부재증명 -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허나 그 시간에 다른 곳에서 발견되는 용의자.
세 가지 사건과 함께 나기라 다다스의 사랑과 인생까지 담기면서 본격미스터리, 연애소설 그리고 연대기라는 세 가지 장르를 선보이게 되는 셈입니다. 
 


전체적인 판은 상당히 잘 짜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각의 요소가 잘 표현되었느냐를 떠나서 셋의 조화가 상당히 자연스럽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단 연대기라는 큰 틀을 가지고 나기라 다다스의 일생을 생각보다 큰 스케일로 펼쳐냅니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본격물로서의 미스터리적 요소와, 연애물로서의 요소가 잘 섞여서 틀을 채워나가는 것입니다. 각각의 사건의 발생과 진상이 나기라 다다스의 삶과 사랑과 유기적으로 잘 짜여져 있다고 하면 되겠네요.

그렇다면 세 가지나 되는 욕심을 부린 이 책은 과연 각각의 요소를 잘 살렸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본격물로서는 약간 아쉬웠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꽤나 수작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본격 팬으로서 기대감이 너무 높았다'라는 것이 아쉬움의 이유라고 생각하는데요. 꽤나 크게 벌려놓은 사건들의 판과는 비교되어 그 진상은 생각보다 충격적인 요소가 적었습니다. 마치 엄청난 마술과 비견되는 초라한 해법을 본 후의 심정이랄까요. 특히 소설 결말부에, 달나라로 가는 듯한 엉뚱한 진상은... 그냥 웃고 넘겼습니다.

허나 소설의 다른 요소들은 꽤나 만족스러웠는데요. 사실 시작부터는 이정도의 스케일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치가 없었기 때문에 그 만족감이 배가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기술하면서 그와 관련된 사랑, 배신, 복수 등 다양한 감정들, 그리고 이로 인해 촉발되는 사건들이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감정적으로는 물론 논리적으로도요.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연대기라는 큰 틀을 잘 짜놓았기 때문에 그 곁가지격인 연애소설적인 요소와 미스터리적 요소가 빛을 발할 수 있는 셈입니다. 
제목에서 보듯이 가장 욕심을 부린 요소는 연애소설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던 사랑을 마지막에 다소 억지로 뒤엎어버리면서 '너무 반전만을 겨냥한 작위적 장치'라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의도가 다분히 보였지만 이게 웬걸,  자꾸 생각나고 그렇습니다. 계속 책장을 앞뒤로 넘겨보게 되고요. 여운이 남네요. 말미의 완전연애의 주인공들 간의 심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상대가 죽을 때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서글픈 연애이니까요.

기발한 밀실이네, 깜짝 놀라는 반전이네, 완전 연애네하는 부분적인 것에 너무 기대하시지 마시고 큰 틀에서 보신다면
분명 잘 짜여진 한편의 인생을 다룬 이 소설에 만족을 느끼실 겁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된 뒷이야기

---------------------------------------------------------------------------------------------------------------

과연 완전연애는 성공했을까요?


아아, 이사람은 끝끝내....... 마스코는 새삼스레 생각했다. 이사람은 평생토록 그날 밤의 오해를 깨닫지 못했어.
기와무씨는 아무 의심 없이 도모네 씨의 환상을 평생 사랑할 수 있었어.
당신처럼.... 어자 마음을 알려고도 않는,..... 어리석은 남자가 죽었다고..... 누가 울 줄 알아요...... 누가. 말해두겠는데, 나는........ 기와무 씨를 좋아한 적, 단 한번도 없다고요! p.438
평생 좋아한 적 없다던 마스코의 공허한 대답은 오히려 더욱 비참하게 느껴집니다.
기와무의 사랑을 위해 담담히 완전연애를 감행해온 마스코의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한숨을 쉬고나서 기와무는 화가에 걸맞는 맑은 눈으로 미와쿠를 바라보았다.
"내가 속았는지도............ 모르지." p.434
기와무는 어쩌면 미와쿠의 정체를 알았을지도, 마스코의 사랑을 눈치챘을지도 모릅니다.
과연 완전연애는 성공했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GOTH 夜の章 (角川文庫) (文庫)
오츠이치 / 角川書店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오츠 이치하면 두개의 작품이 떠오릅니다. GOTH와 ZOO. 두 작품 모두 추리소설 팬들 사이에서는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ZOO를 통해서 오츠 이치라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했고요. 그래서 이번 책 GOTH를 위해서 방방곡곡을 헤맸습니다. 끝내는 학교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어렵게 찾아냈어요. 많은 사람들의 손을 오갔는지 표지가 문드러져 있고, 테이프도 칭칭 감겨 있었습니다. 그만큼 유명세를 탄 모양일까요?
 


이번 소설은 단편의 주된 등장인물은 정해져 있고 사건 자체만 달라지는, 일명 연작 소설입니다.
주인공인 '나'와 모리노는 인간이 지닌 어두운 면에 대한 공통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있어요. 인간을 처형하는 도구나 고문 방법 등 엽기적이고 잔혹한 일들에 대한 흥미가 그들의 공통분모가 됩니다. 단지 나는 능숙한 위장으로 타인과의 원활한(해 보이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모리노의 경우는 그녀의 관심사와 관계없는 타인들을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는 차이를 보입니다.

두 주인공의 독특한 취향 덕택인지 각종 잔혹한 사건들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한 사건들이 하나의 단편을 이루고 있습니다. 
잔혹한 살인 일기가 적힌 수첩을 주우면서 시작되는 '암흑계', 손목을 절단하여 모으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리스트 컷 사건', 조그마한 개의 연쇄실종사건과 관련된 충격적인 진상을 보여주는 '개', 주인공 모리노의 죽은 쌍둥이 동생의 이야기인 '기억', 구덩이를 파고 관을 넣은 후 그 안에 사람을 가둬버리는 괴상한 습관을 다룬 '흙', 참혹하게 살해된 언니. 그리고 그 범인이 동생에게 조심스레 접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목소리'. 
 

 
18세 미만 구독불가 표지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잔혹한 어둠을 그려낸 오츠이치. 도덕적 허용치를 넘나드는 아찔한 발상에 마음 한 편이 불편합니다. 하지만 강도 높은 섬뜩함의 뒷면에 있는 신선함이 못내 눈에 밟혀요. 도덕적으로는 저어되지만, 접하기 힘든 과감한 발상이기에 참신한 이야기를 갈구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못 본 채 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는 거예요.

사건의 신선함이 아깝지 않게 흡입력 있고 긴장감 넘치는 서술로 단편을 이끌어 갔습니다. 또한 단편의 다양한 부분에서 각종 장치를 설치해둠으로서 예상치 못한 재미까지 추가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놀랐던 점은 각 단편들을 연작으로 묶어냈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사건들이 워낙 강렬했던지라 독립적인 단편으로 구성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거든요. 오히려 개별적 사건에 공동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정도를 가지고 연작이라고 떼를 썼을 바에는 차라리 독립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나았을 지도요 - 사실 이 정도는 동일한 인물로 연결되었다 뿐이지 각 사건들은 독립적으로 펼쳐지므로 '연작'이라는 수식어도 조금 쑥스럽지요. -  허나 GOTH는 두 주인공을 각 단편의 피해자, 관찰자, 탐정, 단편 내의 주인공 등 다채로운 방법으로 배치시켜 둠으로써 연작의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추리소설을 그래도 남들 읽는 것만큼은 읽었다고, 그래서 웬만한 장면에서는 충격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소설 외적인 잔인함(과 함께 참신함), 그리고 소설 내적인 완성도. 두 가지 부분 모두에서 놀랐던 소설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방정식 살인방정식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한희선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보고 싶은 책이 출간 되면 페이지를 꼭 확인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리고 두께가 얇다면 '서점에서 보고 오기'라는 비겁한 작전을 짜기 시작합니다. 책을 사고 싶은데로 사기엔 금전적으로 부담스러운 탓에 시작했던 이 짓이, 지금은 저만의 작은 취미가 되어버렸어요. 시간이 중간에 휑하니 남을 때 혹은 마음이 내킬 때면 서점이나 가볼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니까요:) '살인방정식'은 무려 두 곳의 서점에 걸쳐서 작전을 수행하는 대장정을 펼쳤습니다.


소설은 한 신흥 종교 교주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한 신흥 종교 교주가 열차에 깔려 죽게 되었다는 내용의 신문기사. 교주의 죽음이 자살인가 타살인가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몇개월 후 교주의 남편이 새롭게 교주로 올라섭니다. 허나 그의 행실이 예전 교주와 비교될 만큼 문란하여 이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팔과 머리가 잘린 상태로 교주의 시체가 발견 되는 되요. 허나 교주가 종교의식 관계로 집에서 한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는 점, 시체가 발견된 건물의 보안 상태, 그리고 우연히 연루된 공안형사까지. 사건은 2중 3중으로 미궁에 빠지게 됩니다.

책 소개글 구석구석에서 본격 미스터리 팬인 저의 구미를 당기는 요소가 눈에 띱니다. 일단 아야츠지 유키토라는 반가운 이름. 전작 미로관의 살인에 대만족한 후 인지라 당연히 이번 책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구요. 한가지 더 있습니다.

『주인공 형사 아스카이 교의 수사 노트를 챕터가 끝날 때마다 보여준다. 실제 형사의 노트처럼 정확한 그 날의 상황, 용의자들의 신상명세와 취조 내용, 아스카이 자신의 추리 등이 담겨 있다. 읽는 이는 자신도 모르게 수사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

보통 독자에게 추리의 여지를 열어두는 추리소설의 경우, 소설 속에서 제시된 내용 안에서 모든 해결의 실마리가 있습니다. 즉, 탐정과 독자가 공평해진 셈이지요.

이 책에서는 거기에 독자들을 배려하여 한 장(章)이 끝날 때마다 '아스카이 형사의 노트'를 삽입하여 사건에 관한 정보들을 개괄적으로 보여줍니다. 독자들을 위해 사건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주는 배려를 해줌으로써 오히려 탐정이 불공평함을 느낄 지경입니다.  

 


"기대한 만큼 얻어갔니?" 하고 책을 읽은 후 물어봅니다. "전혀 다른 곳에서 재미를 찾았지" 하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일단 제 기대의 요점이었던 트릭은 기발한 편입니다. 허나 그 참신함에 대한 만족보다는 오히려 두가지 정도의 불만이 먼저 들었어요. 일단 이기적인 불만 하나. 과연 실현 가능한 트릭일까? 추리소설이란 장르의 성격 자체가 트릭의 현실성을 따지는 설명문이 아닌, 트릭 자체의 참신함으로 독자를 놀라게 하려는 허구이므로 굳이 현실성을 따질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첫번째 불만은 말 그대로 제 욕심이었구요.- 이왕이면 실현 가능한게 좋잖아요 - 그럼 다른 불만. 트릭의 핵심이 잘 설정되었는가? 작가가 공들여 설명한 트릭의 핵심이 과연 그만큼의 페이지를 할애해야 하는 부분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같아 이 정도만 해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재미를 찾았는가? 일단 소설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생각 외로 매력적이었어요. 약한 비위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경찰이 되어버린 동생, 한가지 일에 푹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성격의 형. 이 두 사람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은근히 재미납니다. 탐정 하나가 사건 현장에서 시체와 조우하고, 단서를 채취하고, 용의자를 좁히는 (덤으로 약간의 추격전을 섞는) 본격물의 상투적인 사건 해결부보다는 훨씬 활력있고 다채롭습니다. 또한 사건 초반에 벌여놓은 각종 복선들을 결말부에 잘 정리해서 빈틈없이 소설을 끝내는, 완결성도 좋아요.

트릭 자체만 기대했다가 오히려 제3의 요인에 매료되는 의외의 결과. 그래도 만족의 합계는 동치를 이뤘으니 흡족합니다 :D

아참, 이번 만큼은 정말로 탐정과 한판 해봐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마세요. 여태껏 그래왔던 것 이상으로 힘드실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회귀천 정사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읽는 내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소설. 그리고 읽고 난 후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소설. 전자의 소설은 흥미롭고 감정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매력을 발산 한다면 후자의 소설은 머릿속으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는 소설속의 메시지를 통해 매력을 펼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만족스러운 소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소설을 좀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전자의 경우가 더 편하고 재밌지만, 읽은 후에 몇 백 쪽의 서술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읽어내는 맛이 좀 더 매력적이랄까요. 
 


회귀천정사는 두 가지 매력 즉 이야기의 매력과 읽은 후에 전해지는 여운의 매력 모두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서평을 쓰는 이유는 후자의 매력 때문이겠지요. 책은 다섯 가지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연쇄살인사건과 그 범인으로 지목된 대필가의 이야기를 다룬 '등나무 향기', 하나의 살인사건에 연루된 형사, 용의자 그리고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도라지꽃 피는 집', 조직 내의 두목과 심복. 그리고 두목의 여자 사이의 기묘한 관계를 그린 '오동나무 관',  어머니의 진실을 더듬어가는 '흰 연꽃 사찰' . 천재 가인 소노다 가쿠요의 2건의 정사 미수 사건의 진실을 다룬 '회귀천정사'까지요.

추리소설답지 않은 표지의 우아함은 소설 속까지 이어집니다. 일단 소설을 구성하는 문장 하나하나가 굉장히 서정적입니다. 사건자체를 직선적으로 제시하기 보다는 유려한 문장으로 묘사에 좀 더 치중합니다.

『후미오와 아야코의 공통점이라면 피부가 하얗다는 점이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후미오는 어떤 남자의 더러운 손도 튕겨낼 것만 같은 결벽증이 느껴지는 하얀색이었다면, 아야코는 남자의 손에 따라 피부색이 변하기를 기다리듯, 남자의 생생한 물방울이 스미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촉촉한 하얀색이었다. 후미오의 피부가 더럽히고 싶지 않은 흰색이라면 아야코의 피부는 더럽히고 싶은 흰색이었다. p. 295』

또한 추리소설답잖게 꽃이라는 장치가 중요한 장치로 삽입이 되었습니다. 기묘한 사체나 밀실, 총이나 칼 같은 흉기가 아니고요. 꽃이랍니다. 그리하여 잔인한 살인 사건조차도 고급스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범죄물에서 종종 등장하는 무차별적으로 총질해대고 휘두르고 차고 짓밟는 격정적인 액션이 아닌 벚꽃이 휘날리는 벌판에서 서로 합을 주고받는 무사의 싸움이랄까요?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염두 해야 할 부분은 이 책은 장르소설. 즉 추리소설이라는 점이에요.

문체나 분위기 같은 요소를 예찬했지만 겉멋만 잔뜩 든 소설은 또 아니에요. 짧은 분량속에서 내용을 빈틈없이 매듭짓는 완결성,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효율성. 단편소설의 진정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두 요소 - 물론 제가 생각하는 두 요소에요 - 는 물론 사건의 진상, 동기의 변주, 그리고 거기에 따른 소소한 반전까지 이야기를 다채롭게 짜왔습니다. 
 


더욱 마음에 든 부분은 일부 단편에서 느꼈던 여운이에요. '왜 이런 행동을 해야 했나'하는 사건의 서글픈 진상과 이에 연관된 인물의 심리에 대해 아련함과 연민이 느껴졌어요. 그 알싸함은 소설을 읽은 후에 마음속으로 되뇌고 곱씹어볼수록 더욱 잔잔히 퍼져나갑니다. 잘 짜여진 이야기 몇 편과 그 이야기들이 전해주는 소소한 울림. 거기에 그 울림에 공명하여 주인공들의 심상을 오롯이 느껴보기까지. 이야기가 주는 울림에 한번 귀 기울여 보시는건 어떤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