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요정
김한민 글.그림 / 세미콜론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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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동화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얇고 큼지막한 글자들에(일반적인 소설과 비교해 볼 때 말이지요.) 그림의 이해를 돕는 삽화 등은 책을 처음 접함에 있어서 부담이 없습니다. 잘 안 읽히는 책을 보다 중간에 지루함과 매너리즘을 느낄때면 동화를 꺼내보면서 다시 책에 대한 애정을 되살리기도 합니다.  동화를 조금 무시하는 듯한 발언일 지도 모르겠습니다.ㅋㅋㅋ 여튼 이런 편한 존재이지만서도 전해주는 메세지들은 생각보다 묵직합니다.(물론 어른들을 위한 동화 이야기이겠지요. 저는 어른이니까요ㅋㅋ) 일반 소설책처럼 5~600쪽을 할애하여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세지와 울림의 깊이와 비교한다면 당연 조금은 역부족인 것도 당연하겠지요. 문제는 효율성의 측면입니다. 페이지당, 독자가 투자하는 시간, 노력 당 전달되는 메세지의 비율은 아마 동화가 가장 높을 것입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네 독자들은 재미와 전달되는 메세지의 절대치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일반 소설에서 더 큰 재미와 의미를 느끼겠지요.

 

 쓰고보니 뭔가 서평이 산으로 가는 듯한 모양인데, 여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1. 이번 서평의 대상 도서는 동화이며
2. 이 동화는 효율적이다. 즉 생각거리를 꽤나 던져줬다.
이정도로 간추릴 수 있겠습니다.
이번 책은 바로 <공간의 요정>이라는 책이며 제목에서 보이는 듯이 요정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책에서는 공간의 요정이라는 새로운 생명체(?)를 고안해냅니다. 이녀석들이 어떤 녀석인고 하니

그들은 낮고 낡고 작고 좁고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곳, 썩는 재료나 자연 재료로 만들어진 장소를 선호하고 음악은 즐기지만 소음은 못 견디며, 계절이 바뀌는 것을 제외한 모든 외부 변화를 싫어하고 오래되고 변하지 않는 것들을 숭배한다. p.28

요정의 유일한 식량은 시지렁이이다. 요정들은 지렁이를 통째로 먹는 게 아니라 '지렁이가 쓴 시'를 먹는다. 시지렁이가 지나간 자리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미세하고 입자가 고운 가루 물질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시다. 그렇게 부르게 된 이유는 지렁이에게 시를 읽어주어야 생기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p.30

인간이 공간과 사랑에 빠지면 반드시 하는 일이 두가지 있다. 1. 그 공간을 자주 방문해 오래 머물게 되고... 2. 그 공간과 잠을 자게 된다. 오래 자지 않아도, 아주 잠시만 졸아도 충분해. 그 짧은 틈에도 생명은 잉태되지. 공간의 요정은 그렇게 태어나는거야. p.47 ~48
 

 
이 책은 공간의 요정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시대를 견뎌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송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공간의 요정, 송이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조수 우고가 요정들의 생존을 돕습니다. 과연 요정들은 살아나갈 수 있을까요?

 

 이 책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은 공간, 시지렁이, 요정 등으로 나열될 수 있겠습니다. 요정은 왜 없어지고 있을까요?

 

요정들이 번번이 번식에 실패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공간과 사랑에 빠지는 인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2. 그나마 새로 태어난 요정이 있어도 먹을 시가 없어 굶어 죽기 때문이다. 시지렁이 서식지를 파괴하는 도시 성형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p.67

 

요정을 잉태하려면 공간에서 잠시만 졸아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에게는 잠깐의 여유도 없습니다.
요정의 식량인 시지렁이는 우리가 시를 읽어주어야 시를 만듭니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들은 시같은 것은 거들떠도 보지 않습니다.
요정들은 낡고 변화가 없는 공간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들은 끊임없이 새롭고 세련된 도시를 건설하려 애씁니다.
이 책은 조금의 여유도 갖지 못하는 우리를 질책합니다. 시를 읽지 않는 우리를 꾸짖습니다. '기억의 장소'를 파괴해버리고 현대식의 '표준 외모의 도시'를 꾸며내는 우리를 꾸짖습니다. 시, 나만의 공간에서 즐기는 잠깐의 달콤한 잠, 낡았지만 운치있는 옛 공간. 이 모든 것은 낭만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을 수 있습니다. 요컨대, 요정들은 낭만을 잃어가는 우리들을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씁쓸했던 것은 책이 주는 메세지에 대해, 책의 질책과 꾸짖음에 대해 저는 조심스레 변명만을 늘어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도 내가 꿈꾸는 낭만적인 것들이 있어. 하지만 지금은 내 미래를 위해선 낭만은 잠시 접어두고 코앞에 닥친 공부와 일부터 하는 것이 맞겠지. 지금 낭만을 찾아 떠나는 건 위험요소가 너무 많아.'
사실 이렇게 살다간 제 안의 낭만을 잃어버릴 것만 같습니다. 낭만을 위한 시간을 쪼개기는 점점 더 힘들어 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현실에 약간은 우울하고 씁쓸하고 다 때려치고 싶고 그럽니다.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정말 '효율적인' 동화였습니다.

 

 

 스포일러가 있는 약간의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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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이의 아버지는 결국 '연구'라는 그의 낭만을 버려버립니다.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낭만을 버리고 싶지 않은데 어떡해야 할까요?

2. 요정들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시지렁이도 모두 잡아 먹혔습니다. 요정들을 위한 공간은 모두 개조되었습니다. 단 하나 콘돌만 남았습니다. 낭만이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낭만을 잃고 싶지 않은데 어떡해야 할까요?

사실 이 두가지 이야기가 와닿았는데 스포일러가 될까봐 적기도 그래서 아래쪽에 몰래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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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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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들 여 다 보 기 

 

한국현대소설 - 어렵다?

 한국현대소설을 꽤나 좋아하지만, 시작하기도 전에 덜컥 겁을 먹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로 작품 자체의 수준이 제 독서 이해력의 정도를 벗어난 것에 대한 불안인데요. 한국현대소설이 던져주는 심오한 주제라던가 그 주제를 이끌어가는 이야기의 추상적 요소들에 익숙치 못해서지요. 시작은 창대하여 재밌게 읽어나가지만 끝에 가서는 이 소설의 주제가 뭔지, 결말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 하는 류의 의문으로 책장을 덮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숲 전체를 보지 않고 눈 앞의 나무만 좇아가다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랄까요. 읽고 있는 부분에만 집중 가능한 수준낮은 독서력(?) 탓이겠지요(아직 멀었네요 ㅠㅠ) 특히 이번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처럼 제목부터 메타포를 한껏 머금은듯 힘을 꽉주고 들어오면 그 불안감이 배가가 되지요. 


 


베스트셀러 - 쉽다

 허나 베스트셀러는 괜히 되는게 아니었나봅니다. 물론 작가 '최인호'의 네임벨류도 기여를 했겠지만, 그것도 어느정도의 일단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을때의 이야기이겠지요.

 이야기는 주인공 K가 주위의 사물을 낯설게 느끼면서 시작됩니다. 당연하게 존재한다고 느끼던 주위의 물건들에 자신의 것이 아닌듯한 위화감을 느낍니다. 심지어 아내마저 낯설게 느껴집니다. 전날밤 술에 거하게 취한후 끊겨버린 1시간 30분의 기억에 그의 낯섦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어제의 동선을 따라나갑니다.

 자신의 주변에 대한 낯섦의 인식..... 시작부터 범상치않은 사건으로 덜컥 부담을 줍니다. 기억과 망각의 심리작용, 그로인한 정체성의 침식, 자아분열, 인지장애..... 온갖 심리적 관념을 총동원해야할 줄 알았습니다. 허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술술 잘 읽힙니다.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한 권의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K라는 탐정이 기억의 공백을 메우기위해 주변인물을 탐문하기도 하고 직접 해결을 위해 행동합니다. 띠지에 소개한 '빠르고 흥미로운 전개'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소설의 가독성을 도와주는 또다른 장치로는 직설적인 비유법들도 한몫을 합니다. 상황을 온갖 은유와 상징을 이용해 추상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적절한 단어를 던져줌으로써 한결 이해가 빨라졌습니다. 

섀도 박스
같은 종이를 여러 겹 오려 필요한 조각을 만든 후 실제 상황에 맞춰 입체감 있게 재배ㅣ해서 만든 전위적 예술 공간..... 그 상자속에 K가 갇혀 있는 것이 아닐까. K가 겪고 있는 이 수수께끼의 상황은 섀도 박스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 3의 입체 공간일지도 모른다. - p.55
- 낯이 익지만 어제의 것이 아닌 주변의 모든 것들. K의 주위에 들이닥친 혼란의 공간을 섀도 박스라는 단어로 정리해줍니다.

중간중간에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삽입되어 있지만 오히려 이런 소재들이 미스테리함을 가중시킵니다. 도대체 어느정도길래?? 궁금하시다면 일단 읽어보시길!

여기서 부터는 소설의 내용 및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 어렵다

 책장이 쉽게 넘어간다고 책이 쉽다고는 말 못합니다. 갑작스러운 낯선 느낌의 이유를 수사해나가는 탐정 K. 허나 주위 상황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K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주변 인물들의 중첩이 점점 가중되면서 주변 사람이 정말로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인가 하는 의심이 피어오릅니다. 빅브라더라는 초월적 존재의 장난에 놀아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K는 소파에 앉았다. 두 사람이 앉기에도 좁은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던 사내가 흘깃 K를 보았다. 얼핏 보기에 어제 처제의 결혼식에서 만났던 장인이자 좀 전에 JS집에서 본 매형과 닮아 있었지만 분명히 그 사람인지, 복제인간인지, 닮기만 한 다른 사람인지는 분간이 가지 않았다. - p.258
- 똑같이 생긴 사내와 장인과 매형. 과연 누가 진짜이고 누가 거짓일까. 혹은 모두 진짜일까. 모두 가짜일까.

 그리고 그 의심의 범위는 신이라는 시원적 존재에까지 뻗어나갑니다.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한 창조주인가, 아니면 하느님으로 위장한 거짓 하느님의 헌신인가. 내가 믿는 예수는 과연 인류를 구원한 구세주인가, 아니면 살아 있는 사람처럼 실리콘으로 정교하게 만든 인형 리얼돌과 같은 적 그리스도인가, 아니면 리얼돌과 같은 모조품이 아니라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관능까지 지닌 살아있는 악신인가 - p.289

그리고 그 의심의 원인이 주변상황의 왜곡이 아닌
자신의 왜곡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모든 가상현실에서 바뀐 사람은 다름 아닌 K다.
 K 본인이 가짜이며, 짝퉁이며, 복제인간이자, 추적자이며, 위조인간이다. 이러한 기현상은 다름 아닌 K의 탓이고, K의 탓이며, K의 큰 탓 때문인 것이다.....K는 K가 아니다. 그러면 지금의 k는 누구인가. -p.296

 이후 K가 자신과 똑같지만 다른 K를 만나게 됩니다. 이정도가 되니 서평을 쓰면서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책장이 잘 넘어간다고 책이 잘 이해되지는 않는 노릇이지요. 누가 실제 존재하는 현실이고 누가 환상인지 그 경계가 점차 허물어집니다. 이러한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사건들이 소설후반부가 되면서 극단적으로 배치됩니다. 특히 마지막 3장에서 주인공이 지난 앞의 모든 등장인물들과 재회하고 이후 K2와도 만나 합일을 이루는. 진정한 K가 되는 부분에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즐겁게 읽은 소설이었지만 또 한번의 한계가 다가온 듯 하네요.
K1과 K2는 합쳐짐으로써 그들의 의문을 푼 것 같습니다.
저의 의문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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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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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로 말하자면>

'성장소설이고 청춘소설이며 연애소설이기도 한'이라는 설명이 탁월한 신경숙의 장편소설

 

<줄거리>

8년만에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와의 일들이 떠오릅니다.  윤교수와의 첫만남도 떠오릅니다. 어머니도 생각이 납니다.
나, 정윤의 청춘과, 좁다면 좁을 주위 인물들과의 소통, 성장, 그리고 헤어짐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간단한 몇줄 평>

예전이나 지금이나, 소설속 주인공들이나 나를 비롯한 젊은이들이나 청춘이라는 시절은  미래를 불안해하고 상처에 끙끙대면서도 서로를 보듬기도 하는 때인가봐요.
다만 조금 다른 점은, 지금의 나는 소설속 정윤처럼 먼길을 돌아 옥탑방에 돌아가보기도 하는 여유가 없다는 거네요.

 

<그리고 읽고나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 마련입니다.
제가 아는게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제 관점이 이러한 것인지
거두절미하고 저에게 가장 인상깊게 다가온 구절은 바로 정윤과 그와의 대화 한부분입니다.

   

-누군가 약속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말이야. 믿을 만한 약속된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쫓기고 고독하고 불안하고 이렇게 두려움 속에서 보내고 나면 다른 것들이 온다고 말이야. 이러느니 차라리 인생의 끝에 청춘이 시작된다면 꿈에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 p.107

 

문득 소설속 주인공들의 생각들과 행동들이 '정말 소설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제각기 나름의 고민과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름의 상흔을 치유하기 위해 혹은 이로 말미암아, 다양한 버릇이나 생각가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먹은 음식을 매일 기록한다거나, 집에서 일부러 먼 길을 택해서 귀가한다거나 하는 것입니다.
같은 20대인 소설속 주인공과 독자인 제가 비추어 졌습니다.
먼길을 돌아가는 여유보다는 토익 문제풀이 시간 몇초를 단축시키려 하는, 혹은 칼로리 계산을 위해 섭취한 음식들을 기록하는 제 모습.
분명한 건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에 있어서 저와 정윤을 비롯한 소설속 인물들은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 또한 다르고, 그들이 가진 아픔의 크기와 깊이 또한 저와 다르겠지요.
어느 모습이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안심이 되는 것은 상황이 어떠하든 20대라는 시절은 항상 성장을 고민하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어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군인의 신분인 단이부터, 언니의 기억속에서 항상 머물고 있는 미루, 연인 사이인 정윤과 명서, 그리고 시국에 견디지 못해하는 윤교수까지(20대는 아닙니다만). 모두들 저마다의 입장에서 고뇌를 항상 품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왠지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되었습니다. 소설속 결말부는 20대를 지난 후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비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새로워진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작가님은 그들의 대응 방식에 평가를 내리는 것이 아닌것 같습니다. 그저 그들의 대응 과정 자체를 보여주려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에 대응하는 방법을 매력적으로 느꼈던 저는 나름대로의 성과가 있는 셈이지요.
 

소설의 일부분만을 주목하는 저의 짧은 감상에, 그리고 서평이라기보다는 넋두리에 가까워져가는 이 글에 살짝 노파심이 들긴 하지만
간만의 생각거리를 제공해준 책에 대해 솔직한 감상만이 예의라고 합리화 하며 글을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책의 또다른 한 구절로, 허점투성이인 제 글로는 표현하지 못한 저의 감상을 조금이라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나의 삶이 어디까지 이를지
그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폭풍 속을 거닐고 있는가.
물결이 되어 연못속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나는 이른 봄 추위에
얼어붙은 창백한 자작나무일 뿐인가?
-릴케.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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