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천 정사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읽는 내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소설. 그리고 읽고 난 후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소설. 전자의 소설은 흥미롭고 감정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매력을 발산 한다면 후자의 소설은 머릿속으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는 소설속의 메시지를 통해 매력을 펼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만족스러운 소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소설을 좀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전자의 경우가 더 편하고 재밌지만, 읽은 후에 몇 백 쪽의 서술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읽어내는 맛이 좀 더 매력적이랄까요. 
 


회귀천정사는 두 가지 매력 즉 이야기의 매력과 읽은 후에 전해지는 여운의 매력 모두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서평을 쓰는 이유는 후자의 매력 때문이겠지요. 책은 다섯 가지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연쇄살인사건과 그 범인으로 지목된 대필가의 이야기를 다룬 '등나무 향기', 하나의 살인사건에 연루된 형사, 용의자 그리고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도라지꽃 피는 집', 조직 내의 두목과 심복. 그리고 두목의 여자 사이의 기묘한 관계를 그린 '오동나무 관',  어머니의 진실을 더듬어가는 '흰 연꽃 사찰' . 천재 가인 소노다 가쿠요의 2건의 정사 미수 사건의 진실을 다룬 '회귀천정사'까지요.

추리소설답지 않은 표지의 우아함은 소설 속까지 이어집니다. 일단 소설을 구성하는 문장 하나하나가 굉장히 서정적입니다. 사건자체를 직선적으로 제시하기 보다는 유려한 문장으로 묘사에 좀 더 치중합니다.

『후미오와 아야코의 공통점이라면 피부가 하얗다는 점이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후미오는 어떤 남자의 더러운 손도 튕겨낼 것만 같은 결벽증이 느껴지는 하얀색이었다면, 아야코는 남자의 손에 따라 피부색이 변하기를 기다리듯, 남자의 생생한 물방울이 스미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촉촉한 하얀색이었다. 후미오의 피부가 더럽히고 싶지 않은 흰색이라면 아야코의 피부는 더럽히고 싶은 흰색이었다. p. 295』

또한 추리소설답잖게 꽃이라는 장치가 중요한 장치로 삽입이 되었습니다. 기묘한 사체나 밀실, 총이나 칼 같은 흉기가 아니고요. 꽃이랍니다. 그리하여 잔인한 살인 사건조차도 고급스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범죄물에서 종종 등장하는 무차별적으로 총질해대고 휘두르고 차고 짓밟는 격정적인 액션이 아닌 벚꽃이 휘날리는 벌판에서 서로 합을 주고받는 무사의 싸움이랄까요?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염두 해야 할 부분은 이 책은 장르소설. 즉 추리소설이라는 점이에요.

문체나 분위기 같은 요소를 예찬했지만 겉멋만 잔뜩 든 소설은 또 아니에요. 짧은 분량속에서 내용을 빈틈없이 매듭짓는 완결성,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효율성. 단편소설의 진정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두 요소 - 물론 제가 생각하는 두 요소에요 - 는 물론 사건의 진상, 동기의 변주, 그리고 거기에 따른 소소한 반전까지 이야기를 다채롭게 짜왔습니다. 
 


더욱 마음에 든 부분은 일부 단편에서 느꼈던 여운이에요. '왜 이런 행동을 해야 했나'하는 사건의 서글픈 진상과 이에 연관된 인물의 심리에 대해 아련함과 연민이 느껴졌어요. 그 알싸함은 소설을 읽은 후에 마음속으로 되뇌고 곱씹어볼수록 더욱 잔잔히 퍼져나갑니다. 잘 짜여진 이야기 몇 편과 그 이야기들이 전해주는 소소한 울림. 거기에 그 울림에 공명하여 주인공들의 심상을 오롯이 느껴보기까지. 이야기가 주는 울림에 한번 귀 기울여 보시는건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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