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교전 1 악의 교전 1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혹자는 선악과를 통한 아담과 이브의 인지에서, 혹은 판도라의 상자의 틈바구니에서 악(惡)의 근원을 더듬곤 한다. 세대가 이어지며 악의 기준과 성질은 조금씩 변모하기는 했지만 근간을 이루고 있는 악의 전형 - 타인의 동의를 전제로 하지 않은 채 타인의 권리를 자의적으로 박탈하는, 예컨대 살인이나 강간, 절도 등의 것 - 들은 여전히 범세계적으로 규탄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있다. 그러한 악의 유형의 정점에 위치한 것은 단연 타인의 생존권을 빼앗는 살인이라 할 수 있을 터. 허나 현대에 이르러서 살인은 악의 정점이라는 무게감에 어울리지 않게, 난잡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비일비재하게 체현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느샌가 사이코 패스라는 새로운 범주의 인간상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모리타트 : 살인 행위를 의미하는 독일어 Mordtat에서 유래한 것으로 살인이나 공포 사건을 소재로 한 떠돌이 가수의 발라드풍 노래.

잔혹한 모리타트의 선율이 소설 전체를 지배한다. 그리고 이 곡을 흥얼거리며, 함께 소설을 이끌어가는 이는 마치다 고등학교의 교사 하스미이다. 뛰어난 판단력과 문제 해결 능력으로 교내의 크고 작은 일들을 능숙하게 처리하며 선생님들의 신뢰를 사로잡은 것은 물론, 수려한 언변과 세심한 관심으로 학생들의 인기까지 얻고 있어 소위 인기강사의 전형이라 할 수 하스미. 허나 그의 모든 면모는 철저한 계산에 입각한 위선이다.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인물은 가차없이 처단해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비뚤어진 가치관의 소유자인 하스미. 소설 속 그의 말 한마디가 그의 비뚤어진 가치관을 모두 설명한다.

살다보면 누구나 여러가지 문제에 직면하잖아? 문제가 있다면 해결해야 하지. 나는 너희들과 비교해서 그런 순간에 선택의 폭이 훨씬 넓은 거야. 살인이 가장 명쾌한 해결방법임을 알아도 보통 사람은 주저하지. 그러나 나는 달라. X-sports 애호가들처럼 할 수 있다는 확신만 생긴다면 끝까지 해내거든. - 2권 p.52

살인은 살인을 부른다고 했던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대처로 사태를 해결하려 하지만, 점점 수렁에 빠지게 되고, 이는 또 다른 살인으로 이어진다. 결국 하스미의 비정상적인 가치관에 의한 참혹한 악의 극한을 보여주면서 소설은 종국에 이른다.
 


교전(敎典) : 교육의 기본이 되는 법칙. 또는 그런 법칙을 기록한 책.

작가 기시 유스케는 전작 '검은 집'을 통해 사이코패스라는 새로운 악인의 유형을 제시하였다. 살인이라는 단어의 중압감과 무게감이 무색할 만큼, 무덤덤하게 살인을 자행하는 사이코패스라는 존재. 이번 책은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단순히 악을 체현해내는 것에서 좀 더 나아가 악의 근본까지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스미가 품는 생각 자체도 충분히 악독하다. 허나 더욱 섬뜩한 것은 하스미의 관념이 행위로 체현된다는 점이다. 도저히 용납되지 못할 만큼 잔혹한 발상이지만 작가는 이를 텍스트로 체현하고야 만다. 지극히 반인륜적이고, 도덕적으로도 저어되는 발상은 급기야 하스미의 행위 자체가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에 이른다. 그만큼 섬뜩한 발상을 기시 유스케는 '악의 교전'이라는 제목을 빌미로 삼아 텍스트로 실어놓은 것이다. 현실에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라는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소설 내내 울려퍼지는 모리타트의 선율. 살인의 서곡으로 시작된 선율은 소설 내내 장송곡처럼 죽음을 끊임없이 몰고 온다. 소설의 절정에 이르면서 모리타트는 점점 빈번히 들려오게 되고, 그 끝은 비현실적으로 잔혹한 악의 교향곡으로 마무리된다. 압도적인 악을 대면한 것 같아 마음 한켠이 편치 못하고 여전히 버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