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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의 시학> "서론" 읽다가 내용 노트했던 

한 대목을 다른 것 찾다가 발견했다. 

.

.


상상력을 통해, 상상력이 가능케 하는 비현실 기능을 통해,

우리는 자신감의 세계로 재입장한다. (*현실을 견디는 힘.)

 

몽상 속에서 슬픈 기억은 멜랑콜리라는 평화의 옷을 입는다.

여기에 밤의 꿈과 몽상의 차이가 있다. 밤의 꿈엔 낮동안 잘못 살아낸 열정이 우글거린다.

밤의 꿈 속에서 고독은 적이다/적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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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친 문장, 이런 게 바슐라르 읽으면서 체험할 수 있는 

감사... ;;;; 구원....;;; 의 문장들. 맞다 이 문장, 바슐라르의 이 문장. 영어판에서 14쪽. 

찾아보았다. The dream remains overloaded with the badly lived passions of daytime life. 


상상력, 상상력의 비현실 기능이 인간을 "confident being"의 세계로 진입하게 한다. 

여기에도, 깊고 강력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보니까 <몽상의 시학>은 한편 메를로-퐁티의 <지각 현상학>에 

대한 반론으로 쓰여진 책인 것같기도 하다. 책 내용을 적은 이런 노트가 있다: 셸리의 현상학적 공리. 상상력은 "우리가 보는 것을 우리가 창조할 수 있게 한다." Shelley gives us a veritable phenomenological theorem when he says that imagination is capable of "making us create what we see." 셸리와, 아니 그 말고도 시인들을 우리가 따른다면, 지각의 현상학은 창조적 상상력의 현상학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공간의 시학>도 알고 보면 하이데거와 하는 논쟁일 것같기도 한 걸 보면 

바슐라르 식의 반론법...... 이런 것도 발견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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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핏언더에서 f-word는 

아주 자주 대단히 자유롭게, 무수히 쓰이긴 한다.  

그래도 그 단어 쓰면서 강력했던 대사, 장면들을 꼽아보라면 

바로 떠오를 장면 중 클레어가 미대 가서 만나는 남친, 러셀. 러셀과 싸우는 장면이 있다. 

러셀의 찌질함, 그 전모를 알고 난 클레어가 러셀에게 이별을 고하자 러셀이 클레어 집으로 

찾아와서 이러쿵저러쿵, 너와 나는 연인이어야할 운명이다...... 요지로 고함치기 시작함. 그러다 하는 말이: 


"너와 나 사이에 무엇도 

fucked-up이지 않았어. 

너와 내가 공유했던 것, 

그건 fucked-up의 정반대였어."


What we had between us was the opposite of fucked-up. 대략 이런 문장이었다. 

실제 장면으로 보면 소름이 ㄷㄷㄷ 돋을 정도로 위력적인데, 무엇보다 벤 포스터의 명연이 핵심. 

유툽에서 식스핏언더 관련 검색을 아주 많이 해봤음에도 지금까지 이 장면은 본 적이 없는 걸 보면 

아마 이것도 소수 취향인가 보다. ; 


벤 포스터는 80년생인데 요즘 모습을 보면 이미 흰머리에 거의 40대 초반, 완전 아저씨 되었다. 

식스핏언더 여러 장면에서, 정말 독특하게 미친 뭔가 보여주었던 "어린" ;;; 소년이었던 벤 포스터인데 말이다. 




*아이고, 그만 폭-포스팅 하고 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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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ord 

정말 영어의 자산 아닌가. 

영어가 다른 모든 어휘들을 내놓더라도 이것만은 끝까지 지켜야할 단어.  

특히 fucked up, 형태로 쓰일 때 대신할 다른 말들이 없을 것같단 생각도 든다. 


식스핏언더에서 두 개 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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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2살 위 오빠가 있는데 

내가 초등 5학년 쯤까지 오빠보다 키가 컸고 

그래서(?;;;) 욕을 많이 먹었다. 밥 잘 먹는다, 

오빠는 안 먹는데 저는 먹는다, 뭐 등등. 등등. 


그때도 이건 불의다.... 는 의식이 있었지만 

아무리 호소해도 누구 한 사람 들어주는 사람이 없단 걸 

일찌감치 알았으므로 (....) 침묵했다. 


공부는 둘 다 잘했는데 

내가 공부를 못했다면 얼마나 더 부당한 일들이 일어날까... 

(저렇게 '워딩'하진 않았겠지만) 불안했던 날들도 많았다. 


고등학교부터 20대의 끝무렵까지 

그 사이 오빠는 대입에 성공했고 나는 실패했음에도 

내내 미묘한 오빠의 견제가 있었다. 혹시 저 아이가 공부를 잘할까봐. 더 잘하면 어쩌나. 

ㅋㅋㅋㅋㅋㅋㅋㅋ 혹시 저 아이에게, 공부가 진짜로 재밌는 거라면. 혹시 자기 정신에 놀라며 

인식의 전사가 되더니 무려 유명한 작가라도 된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다. : 이런 게, 이게 다는 아니긴 한데 있었다. 


이런 일들을 

조금 더 냉정한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되던 때부터 

이게 우리집의 fucked up 사정인 건가 아니면 보통 흔히 일어나는 일인가 

묻고, 알고 싶은 적이 많았다. 사람들이 가족사, 역학 이런 얘길 쉽게 아무렇지 않게 하지는 않는 편이기도 하고 

한국엔 dysfunctional family를 탐구하는 드라마나, 뭐 기타 그게 우리 현실의 분명한 일부.. 임을 알게 하는 것들이 없다 보니 지금도 이 점에 대해서 '실감' 같은 건 없다. 어떤 기준으로든, 망가진 가족은 예상 외로 많을 것이다... 정도 모호하게만. 


그렇긴 한데 

17대 (인가, 현대통령 선출된 게) 대선의 결과엔 

내 가족이 살았어야 했던 삶. 내 가족이 겪지 말았어야 했던 실패(비극). 

이것들에 대해 분명히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그 점에서 역부족인 사람들이 

그 지점에서 그들 선택을 하면서, 크게 기여한 거 아니냐....... 혼자 여러 번 생각했다. 

내 생각이니 아마 틀리겠지. ;;;; 한 친구에게, 이 대선의 결과는 자기 가족의 fucked-up 역사를 

똑바로 보지 못하는 이들이, 이것이 그 역사를 바로잡는 길이라며 했던 선택이 가져온 것.... 같은 얘길 했더니 

뭐라고 이 미친 *아? : 같은 표정이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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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오직 증오할 수 있는 적만을 가지라. 경멸해야 한다면 적이 아니다. 

너의 적은 너의 자랑이어야 한다. 그 때 너의 적의 성공은 곧 너의 성공이다. 


You may have only enemies whom you can hate, not enemies you despise. 

You must be proud of your enemy: then the successes of your enemy are your successes too. 

















이 책 30쪽에서 인용된다.  

출전은 <짜라투스트라> "전쟁과 전사들에 대하여". 


펭귄판에서 인용하려고 찾아보니: 

"그대들은 미워해야 할 적만 가져야지, 경멸해야 할 적은 갖지 말아야 한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적의 성공이 그대들의 성공이 되기도 한다." 


독어 원문에서는 어떤가 모르겠지만 영어로 저 첫문장에서 쉼표는 

실은 거의 마침표에 가깝단 생각이 드는데 (라고 쓰다가 독어판이 집에 있으니 찾아보았다. 

독어 모르면서 막연히 느낌으로, 독어 문장에도 쉼표가 있지만 마침표처럼 느껴지는 쉼표는 아니고 

단호한 단절이기보단 조금 유장한? 옮겨 오려니 움라우트도 있고 버거워서 통과.....) 해서 내 맘대로 

"경멸해야 한다면 적이 아니다"는 정확하지도 않지만, 옮겼다. 


요즘 주제는 니체라고 했을 때 

니체의 한 권을 읽어야 한다면 혹은 제일 먼저 읽을 만한 니체 책이라면 뭐가 있냐는 

질문 받은 적이 있다. 바로 떠오른 건 <우상의 황혼>이었는데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하니 

카우프만에 따르면 니체 자신이 쓴 최선의 니체 입문서라는 이 책도 실은, 그리고 니체의 무슨 책이든 

이게 그러니까 '각오'가 필요한 책들인 것 같았다. 카우프만이 "플라톤 이래 사람들이 즐기며 읽는 유일한 철학자"

니체가 그렇다고 하기도 하지만, 실은 아니지 않나. "책 읽는 게으름뱅이"면 읽을 수 없게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나. 

하긴 카우프만이 말한 즐거움이, 게으름뱅이의 즐거움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각오, 헌신이 필요한 저자가 주는 (압박과 함께 하는) 즐거움이겠다. 플라톤도, '캐주얼하게' 읽을 수 있는 건 아닐 테니. 


질문한 분은 인문학 독자가 아니었고 인문학만이 아니라 그리, 독자가 아니어서 

니체 책들이 좀 이상한 재미가 있긴 한데 실은 꽤 고달프기도 하다...... 쯤 웅얼웅얼 답함. 


<차라투스트라>에서 위와 같은 구절들은 

모두 한번씩 이모저모 생각하고 한편 삶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구절이 아닌가 함. 인용해 드릴 수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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