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 나갈 때 영하 7도. 

오늘은 영하 4도. 영하 10도 정도까지는 

그 쨍하게 차가운 공기 들이마시면서 걷는 매력이 있어서 

춥다고 나가길 망설이지는 않는데 문제는 미끄러지기.  

어제 비탈길에서 세게 미끄러졌고, 오늘 동네 산책인데 아이젠 하고 나가야 되나. 

하다 조심조심 천천히 5천보만 걷기로 하고 나갔다. 그런데 많지 않지만 눈이 쌓여 있고 

눈 위로 한 사람의 발자국. 한 고양이의 발자국. 고양이 발자국 따라서 길 걷다보니 

(내가 걷는 구역 전부에 점점이 놓인 고양이 발자국. 그 발자국 따라가도 고양이는 없지만. 사람 발자국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눈이 왔고 춥고 눈 위를 걸은 사람은 아직 한 사람 뿐이거나 없고 어둡지만 가로등이 켜져 있고 


하여튼 이게 너무 좋아서 오래 걸었다. 

새벽에 조용히 오래 산책할 수 있기. 이거 정말 행복의, 적어도 정신건강의 가능성의 조건. 


Writer's Almanac에서, 12월 27일이 생일이며 미국의 에세이스트라는 사라 보웰의 위의 문장을 인용했다. 

아 얼마나 옳은가. 감탄함. "너드라는 것, 한 주제에 대해 너무 멀리 가고 너무 많이 좋아한다는 것. 이것이 친구를 사귀는 최선의 방법." 


그런데 너드는 "덕후"와 같은가 다른가. 

조금 다르지 않나. 너드에도 사회적 낙인(social stigma) 찍힐 수 있지만 

그것을 쉽게 떨칠 수도 있고 (보웰의 말이 그 한 예가 되겠고), 어쨌든 찍힌다 해도 희미하지 않나. 

그런가하면, 덕, 오덕, 덕후... 는 solitary existence가 필히 정의의 일부가 되어야 하지 않나. 아닌가. 

덕알못이면서 저런 생각을 잠시 해보았는데, 아마 아닐 것이긴 하다. 밀덕들의 연합 같은 것이 있다고 

어디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긴 하나, nerd, geek, 이 두 단어가 영어에서 쓰이는 것처럼 쓰이는 

한국어 단어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영어에 비해 한국어가 인간의 정신에 관심없는 언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냐며, 오늘도 새벽부터 정신의 삶을 껴안으라 한국어에 청해 봄. 사실 위의 저 말에서 "care about (something)" 이것도 순순히 번역되지는 않는 말 아닌가. 거의 "먹다" 수준으로 인간의 기본, 필수 활동을 가리키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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