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와 중간, 기말시험에서 

영어 작문이 거의 전부인데, 문법이 일관되게 정확하고 좋은 문장 쓰는 학생은 

(당연히도?) 아주 드물다. 다수 학생들에게, 문법의 모든 면모가 약하지만 특히 읽는 사람에게 어려움 안기는 건 

시제, 그리고 수. 내 수업 들었던 학생들 중 어쩌면 "시제 시제 시제 복수 복수 단수, 단복수 단복수..." : 수업이 이랬다고 기억하는 학생들도 있을지 모를만큼, 이 두 가지만 일단 맞게 해보자고 나는 여러 번 강조하지만 


퀴즈나 시험지를 받아보면 

다른 것 떠나서 저 둘만이라도 정확한 답안지는 소수. 


이 점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시제를, 시제를 정확히 이해하기를 게을리 함은 

혹시 영원히 현재 시제로 쓰여진 책이 있다면 (있을 수 없지만, 하여튼 어떤 종류의 학술서들이 그렇게도 보일 수 있겠으니 그런 책을 상상하면서), 그런 책도 실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 아닌가. 시제, 이것이 실은 인간을 (이 체제에, 자본주의에 적합하게) 길들이는 기제다......... 같은 얘기를 <미니마 모랄리아>에서도 볼 수 있긴 하다. 그런데 그러니까 무엇보다 이런 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시제를 명확히 알고 명확히 표현해야 하지 않나. 영어를 공부하면 영어의 시제를. 다른 언어는 그 언어만의 시제를. 


저런 생각도 해보았고, 이러니 저러니 어쩌니 저쩌니 해도 외국어 교육의 핵심은 문법이다... 는 생각도. 

아니 외국어에 특히 그런 게 아니라 무슨 언어든 그렇다. ; 하여튼, 한국어의 문법, 한국어의 어법에 대해 

자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한국어가 모어인 사람이 외국어를 잘 공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같은 생각도. 


시제는 영문법에서 아주 큰 부분이고 어떤 문법책에서든 중요하게 다루겠지만, 수는 짧고 쉽게 넘어가는 부분일텐데 

그런데 이것도 실은 아주 중요하다는 것. 거의 관사 정도로 중요하지 않나. 영어만이 아니라, 서양 언어 전부에서 그렇지 않나. 명사의 수는 관사와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 이해 없이, 일상생활에서 인간의 사유, 상상력의 최고 고차원까지, 정확한 이해는 불가능하지 않나. 아닌가? 아닐 리가?


며칠 전 아마 주제가 animal rights 였을 텐데, 어떤 팟캐스트를 들었다. 

저 주제 하에, rights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는 존재들에 대해 말하면서 '인간의 아기를 인간으로 봐야 하는가'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던 중 한 게스트가 "A baby is a human being, but a non-person" 이런 말을 했고, 이 말이 생각을 자극했다. 이 말, 한국어로 쓴다면 주석 필요하지 않나. 가령, "아기는 사람이지만 인간은 아니다"고 쓴 다음 주석으로: "여기서 사람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생물학적 차원을 강조하며, 인간은 (한자 "간"이 말해주듯이) 그것의 사회적 차원을 중심에 둔다". 이 문장의 경우엔, 시제도 성도 의미의 중요한 부분이 아니지만 그런데 이런 문장도, 정확히 알아보고 이해하고 한국어로 번역하려면 시제와 성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어느 시점부터 이 포스트는 그냥 횡설수설같아 보이겠. ;;;; 내일은 내일의 횡설수설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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