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공친 하루. 

저녁 먹고 나서, 망가져가는 세계에 대해 토니 주트는 뭐라 썼을까 보자고 

Reappraisals: Reflections on the Forgotten Twentieth Century 펴서 마지막에서 두번째 장 

"양들의 침묵: 리버럴 아메리카의 기이한 죽음" 조금 읽다가 토니 주트의 말로 구글 이미지에서 어떤 게 찾아질까 검색해 봄. 


위의 말이 순간, 작지만 현실적인 위로 주었다. 

"역사는 언제나 우리에게 일어나고, 변하지 않는 그 무엇도 없다." 음.

그 위로의 정체는 뭘까. 그것 분명 반동적인 무엇일 거 같단 불안이 든다. 

부시 주니어 재선한 다음 <식스핏언더>에서, 클레어 이모 사라가 하던 말. 

"우주는 그리도 광막하고, 무엇도 우리 통제 하에 있지 않다는 것." 이런 방향 위로였나. 






"작정하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그것이 역사학자의 임무는 아니다. 하지만 역사학자는

사람들에게 거의 언제나 불편한 이야기를 들려 주어야 하고 

어째서 그들이 느낄 불편함이, 우리가 좋은 삶을 옳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진실의 한 부분인가 설명해야 한다. 잘 조직된 사회는, 우리가 집단으로서의 우리에 대한 

진실을 아는 사회지, 우리 자신에 대해 기분 좋은 거짓말을 하는 사회가 아니다." 


좋은 삶, 옳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진실엔 반드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불편함이 있다. 

이 정도 아이디어도, 대부분이 견디지 못하지 않나. 진짜로는. 


며칠 전에, 쓰다 만 페이퍼를 열어봤더니 (그러니까 근 한 달 냅뒀던 건가) 

일단 길이로 거의 반은 썼고 그 중 좋다 할 대목들이 없지 않아서, 그래 이어서 쓰면 돼. 

이거 쓰고 이어 하나 더 쓰면 정규직 될거야. 정규직 되어야 책을 쓰지. ;; 이런 생각과 함께 잠시 

낙관했었다. 사실 주로 늘 낙관하는 편이긴 하다. 그런데 오늘은 좀 아니었고, 우울하고 힘들고 졸리던 하루. 


이런 독서 모임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는데 

참여 인원은 다섯 명 정도. 독서 대상은 철학이나, 아니면 본격 인문서 (피터 게이의 <계몽> 같은). 

각자 다섯 개의 질문을 가져와서 그 질문들을 놓고 무겁고 진지하게 천천히 얘기하기. 그 질문들은 

책 내용에 직접 관련되는 것이기보다, 바깥으로 많이 확장되는 종류로. 책을 읽지 않더라도, 책 주제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종류. 


같은 주제 하에 다섯 권의 책을 고르고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읽은 다음, 다섯 권 전부에 관해 가져온 질문들을 놓고 얘기하기. 

얘기의 방향이 자기가 읽은 책과 직접 연관되고 해설이 필요하다면 읽은 사람이 책임지고 해설하기. 

토니 주트의 <재평가>도 그렇게 읽어보고 싶어진다. 질문 다섯 개를 고심하며 작성해 보고 싶어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