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하기 며칠 전 그는 편지에서 최종 원고를 위해 "아직 절박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제 남은 건 구성의 문제지 책의 알맹이(substance)의 문제가 아니다"고 썼다. 

그 알맹이와 관련해, 아도르노 자신에 따르면 "있어야 할 모두가 거기 있다." 최종 원고를 위한 개고를 

아도르노는 1970년 여름에 끝낼 계획이었고, 본문 안에서 대목들을 옮기는 일과 줄이는 일이 여기 포함될 예정이었다. 지금 이 책에 "보유 Paralipomena"로 묶인 단편들은, 이 최종 개고 과정을 위해 남겨졌던 것들이다. 또 이 책에서 "서론 초고"로 묶인 부분은, 아예 새로 쓰여질 수도 있었다. 아도르노는 문장의 세부들을 더 낫게 고치기도 했을 것이다. 이 책은, <부정 변증법> 그리고 아도르노가 쓰고자 했던 도덕 철학에 관한 저술과 함께, "내가 저울 속으로 던져 넣을 그것"을 보여줄 그의 주저였지만 미완으로 남았다. 


영어판 "편집자 서문"의 첫 문단에 있는 얘기다. 

나는 여기서 인용부호로 묶인 아도르노의 말, <미학 이론>이 "will show what I have to throw into the scale" 이 구절도 좀 사무쳤었다. 아 나의 무게는? 몸의 무게 말고! : 이런 방향으로. 몸은 헤비웨이트. 정신은 초경량급. 


무게로(체급으로) 정신의 힘을 말하는 영어 표현들. intellectual heavyweight. intellectual lightweight. 

이런 표현들이 정확하고 진실하다 새삼 생각함. 거의 같은 말을 해도, 그가 헤비급이면 강력한 펀치. 경량급이면 '어디서 주워 들은 건 있어가지고.' 이런 일들 일어나지 않나. 


존 롤스 <정의론> 한국어판 역자 서문에 이런 대목 있다: "<정의론>을 번역한답시고 떠벌이던 옮긴이에게 "정의의 이론이 없어 세상에 정의가 부재하나"라고 꼬집던 어떤 험구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하지만 정의의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것은, 구조적 부정의의 요인을 분석, 처리하는 능력 내지는 명백한 부정의를 척결하겠다는 우리의 실천적 의지가 부족한 데에 그 일단의 이유가 있겠으나 정의에 대한 설득력 있고 타당한 기준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데도 일말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철학자의 미련만은 아닐 것이며 바로 이 점에서 철학자의 기여가 요청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 험구의 말을 했던 사람이, 역자의 동료 교수라면 

그의 지적 역량은 깃털 급 아닐까. (저 말을 심오한 아이러니와 함께 말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하지만 여긴 아이러니가 죽으러 오는 곳이니...) 아도르노 같은 헤비급이라면, 저 말을 어떻게 박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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